소설리스트

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화 (1/138)

1화



 

애독자 특전으로 최애작에 빙의한 줄 알았다.

당연히 등장인물, 서사, 반전까지 전부 씹어먹고 무난하게 탈출할 거라 생각했다. 비록, 최애작이 여느 로판의 법칙에서 벗어난 망작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이제 알아버렸다. 빙의한 소설이 최애작의 본편이 아니라 미출간 외전이라는 걸!

“이러니 외전 출간이 안 됐지…… 주인공 없는 외전이 팔리겠냐고요. 프리퀄도 아니고! 작가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외전을 준비하신 거예요! 으아아아!”

으레 소설의 완결 이후를 그리는 외전이라 함은, 주인공 커플의 알콩달콩한 연애물, 육아물, 서브 커플의 뒷이야기 같은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국룰이다.

그런데 주인공 커플은 모두 죽었고, 2세도 없고, 서브 커플도 없는 이 외전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주인공이 누군지라도 알아야 스토리를 진행할 텐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푸라기는커녕 잡을 실오라기도 없다.

리나는 자신의 몰골을 내려다봤다. 피투성이의 누더기 같은 옷차림, 거칠게 잘려나간 머리카락….

그리고….

-쨍그랑!

피가 잔뜩 묻은 세검까지.

“젠장! 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하잖아!”

***

그날은 리나의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날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최애 웹소설에 빙의하기 전까지는.

[펜싱 여제 탄생! 고리나 파리 올림픽 펜싱 사브르 개인전, 단체전 2관왕!]

오늘 아침 신문 1면 헤드라인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 없이 ‘고리나’였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펜싱 여자부의 간판선수이자 천재로 불리는 소녀.

일찌감치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제패하고, 차근차근 여자 세계선수권 타이틀까지 모두 거머쥔 그녀는, 그녀의 첫 번째 올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펜싱 경기 일정은 어제로 모두 끝이 났다. 오늘부터 올림픽의 폐막식 날까지 펜싱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관광객으로서 파리를 즐길 예정이었다.

“난 사실 오늘 사격팀 지민기랑 둘이 시내 돌아다니기로 했거든.”

대표팀 동료 은지가 들뜬 목소리를 했다. 선수촌에서 두 사람의 기류가 심상치 않더니, 결국 썸이라도 타는 모양이었다.

“난 그럼 숙소에서 쉬고 있을게.”

“너 또 웹소설 보려고 그러지? 하여간 파리까지 와서 웹소설만 보고 있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연애에도 관심 없는 그녀의 유일한 낙은 고된 훈련이 끝나고 침대에 누워 웹소설을 읽는 것.

그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완결된 지 족히 수년은 된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 〈여기사 오스칼〉, 속칭 〈여스칼〉이다.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진 소녀 오스칼은 남장을 한 채 왕실 근위대의 일원이 된다. 그러던 중 국왕의 동생이 일으킨 반역으로부터 국왕과 왕자를 구하는 영웅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줄거리지만, 〈여스칼〉은 웹소설의 성공요소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로맨스가 실종된 로맨스 판타지, 남장한 여주의 성장에만 집중한 스토리라인, 작가의 유치한 설정, 구구절절한 세계관, 무엇보다 주인공을 사망으로 처리하는 꽉 닫힌 결말까지.

그런 탓에 독자 수는 한 줌이요, 외전은 꿈도 못 꿀 소설이 바로 〈여스칼〉이었다. 한마디로, 망작이라는 것.

하지만 리나는 어린 시절부터 소설의 연재본, 단행본, 완전판, 독점판까지 버전이라는 버전은 죄다 소장하며 작가에게 주기적으로 팬레터까지 보내는 〈여스칼〉의 넘버원 팬이었다.

리나가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는 익숙하게 메일함을 열었다.

[발신메일 : 작가님, 저도 오스칼처럼 펜싱을 시작했어요.]

[발신메일 : 작가님,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어요. 근데 주인공들 사귀긴 하나요?]

[발신메일 : 작가님, 최종화 너무 감동적이에요. 외전 출간 계획은 없으신가요?]

답장이 없는 지난 메일을 훑으며, 오늘도 리나는 작가에게 팬레터를 보내는 참이었다.

[발신메일 : 작가님, 드디어 제가 올림픽 금메달을 땄습니다.]

띠링-

[RE : 독자님…….]

“헉! 뭐야 답장?”

리나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수많은 팬레터를 보냈지만, 작가의 답장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신메일 : 독자님, 세계 최고의 검사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여스칼〉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독자님이 저보다 제 작품을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독자님 성원에 힘입어 오래전부터 외전도 출간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뜻대로 잘 안되네요.]

“세상에! 여스칼 외전이라니! 분명 프리퀄이겠지?”

올림픽 금메달에, 최애작 작가의 메일 답장까지! 리나는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도움을 받고 싶었던 독자님의 손을 빌리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 손을 빌리겠다니…. 설마, 내가 달았던 댓글 반영?!”

‘덕후는 계 못 탄다’라는 클리셰가 박살 나려는 그 순간.

꽝-

귓가에 벼락같은 굉음이 들렸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과 함께 리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띠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독자님-]

***

“으… 방금 무슨 소리가.”

꽝-

두 번째 굉음이 리나의 귀를 울렸다.

의식과 함께 잃어버린 감각이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청각이 돌아온 후에는 후각과 통각이 돌아왔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몸을 일으켜 앉은 리나는 잠시 자신의 시각이 제대로 돌아온 것이 맞는지 두 눈을 몇 번 껌벅거렸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고풍스러운 태피스트리로 가득한 벽면, 화려한 자수가 수놓아진 벨벳 커튼, 바닥에 깔린 융단 같은 카펫, 화려한 무늬의 팔걸이 소파, 섬세한 조각의 가구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려하게 반짝거렸을 공간은 방금의 폭발 때문인 듯 흙먼지와 나무 파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는 유럽 고전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화려한 의복을 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리나는 잠시 멍해진 채로 주위를 응시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조차 여지없이 그들과 같았다. 레이스와 리본이 잔뜩 달린 붉은색 드레스.

리나는 지금 꿈을 꾸나 하고 뺨을 꼬집어보았다.

“아얏.”

조금 전에 돌아온 통각은 제구실을 하고 있었다. 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과 비슷한 드레스를 입고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윽.”

리나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여자는 눈을 뜬 채 죽어있었다. 아마 폭탄을 정통으로 맞은 모양이었다.

근처에 함께 쓰러져 있던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남자 역시 무사하진 못한 것 같았다. 실내에 있는 예닐곱 남짓한 사람 중 살아남은 이는 리나뿐인 것 같았다.

‘젠장. 이게 꿈이야 생시야.’

속으로 욕을 중얼거린 리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치렁치렁한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잡아 들고,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문까지 걸어갔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낮고 느릿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용없어, 폭발 전에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누가 밖에서 출입구를 막아 놨더라고.”

“으악!”

리나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남자의 음성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경첩이 반쯤 부서져 문이 달랑달랑해진 캐비닛 장식장 뒤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감싼 채 간신히 몸을 지탱한 남자가 리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드모아젤은 아까 이교도들이 튈르리 감옥을 습격했다는 페기 부인의 말을 듣지 못했나? 부인이 그 말을 하자마자 창문으로 폭발물이 날아와서 다들 빠져나가려고 우왕좌왕했는데, 출입문이 잠겼더군. 그놈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 놓고 싶었던 모양이야.”

리나는 순간 자신이 미친 것인가, 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하는 말은 틀림없이 한국어가 아닌데, 난생처음 듣는 그 언어를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기 멍하게 있지 말고 날 좀 부축하지.”

남자는 리나에게 반쯤은 명령조로 말했다.

리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한 손으로는 남자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의 허리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끌어안듯 붙잡은 남자의 몸이 탄탄했다. 리나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인가요?”

말을 내뱉자, 아찔한 기분에 현기증이 났다. 입에서 나온 언어는 한국어와 완벽히 다른 말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부서진 캐비닛 장식장에 달려있던 거울을 무심코 바라보자, 맑게 빛나는 초록색 눈이 그녀를 응시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건… 대체…?”

거울에 비친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는 영락없는 서양 귀족 영애의 것이었다. 리나는 평소보다 우뚝 솟은 콧날을 더듬어 만졌다.

곧이어 손을 내리니 옅은 밤갈색 머리칼이 손끝에 걸렸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가락이 보드랍고 어여뻤다. 훈련으로 굳은살투성이였던 그녀의 손은 온데간데없었다.

멍한 표정의 리나를 보던 남자가 대답했다.

“폭발의 충격이 꽤 큰가 보군. 여긴 페기 부인이 운영하는 살롱이야.”

‘조금 전 이 남자가 이교도들이 튈르리 감옥을 습격했다고 했지….’

튈르리 감옥은 이미 수백 번은 읽어 달달 외우다시피 한 〈여스칼〉에 등장하는 장소였다. 소설의 남자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갇혔던 감옥의 이름인데….

“혹시, 설마, 여기가 라인하트……?”

리나가 말하면서도 차마 믿지 못하겠다는 듯 천천히 그 단어를 소리내어 말했다.

자신의 최애작 〈여스칼〉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나라 ‘라인하트 왕국’을.

“혹시 폭발에 기억이라도 잃은 건가? 맞아, 여긴 라인하트의 수도 시에나에 있는 살롱이야.”

맙소사. 때론 현실이 소설 같아질 때도 있는 법이다.

리나의 인생이 스포츠물에서 일도 많고 말도 많은 험난한 책빙의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리나는 지금 자신의 최애작, 〈여기사 오스칼〉의 세상 속에 있었다. 물론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여느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클리셰처럼 최애작에 빙의하는 상상은 수백 번도 더 해본 리나였다.

최애작에 빙의하면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주연에서 엑스트라까지 소설 속 등장인물은 물론, 모든 에피소드를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고 있으니까.

하지만 페기 부인의 살롱을 배경으로 하는 이교도의 폭탄 테러에 대한 내용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침착하자 고리나. 〈여스칼〉에서 내가 모르는 내용은 없어.’

이교도는〈여스칼〉세계관에서 ‘악의 축’을 맡은 자들로, 웬만한 악역이라면 그들과 연이 닿아 있었다.

특별히 떠오르는 것은 없지만, 이교도의 습격은〈여스칼〉에 자주 등장하는 상황 중 하나이니, 원작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사건 중 하나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은 리나는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죠. 혹시 다른 문을 알아요?”

웹소설 마니아 리나에게 빙의물은 빠삭한 장르였다. 웹소설에 빙의해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빙의물의 첫 번째 법칙, 원작을 바꾸든, 원작을 따라가든 일단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역시 뭐니 뭐니해도 빙의물의 핵심은 첫째도 생존, 둘째도 생존이다.

빙의 첫날부터 테러 현장에서 최후를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귀족들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문이긴 하지만. 다른 문이 있긴 있어. 저쪽에.”

남자가 몸을 휘청거리며 작은 쪽문을 가리켰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본 남자의 얼굴은 상당한 미남형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는 얼굴에 묻어있는 검댕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숱 많은 구불구불한 금발 머리에 깊고 파란 눈, 매끈하게 뻗은 콧날, 앵두 같은 입술.

그의 섬세한 이목구비에서는 어딘가 기품이 느껴져, 고전 명화 속 남신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이라는 단어가 인간이 되면 이런 모습일까 싶은.

감탄도 잠시, 남자가 안내한 대로 문을 빠져나가려는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리나는 엉망진창이 된 살롱 안을 눈으로 황급히 훑으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리나의 눈에 살롱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검 두 자루가 보였다.

“저거 진검일까요.”

“마드모아젤, 그게 무슨…?”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리나는 남자를 잠시 세워두고 거추장스러운 치맛자락을 질질 끌며 허우적허우적 벽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벽으로 다가간 리나는 장식된 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부우욱-

곧이어 리나는 치켜든 검을 휘둘러 자신의 치맛자락을 뜯어냈다.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충격적인 행보에 남자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오 정말 진검이네요.”

리나가 만족스럽게 검을 허공에 들어 보였다. 날카로운 검이 살롱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허공에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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