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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22)화 (122/123)
  • 에필로그

    언니의 결혼식이 있고 열 달 후, 무사히 태어난 플로리아 언니의 딸 힐다도 곧 네 살이 된다.

    아기일 때는 참 순했는데 요즘 들어 장난이 심해지더니…….

    “으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악!”

    힐다는 늘어트린 내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스타 전하는 거짓말쟁이야. 힐다랑 결혼하기로 했으면서!”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아니, 난 괜찮아.”

    조심조심 머리카락을 빼내고서 나는 힐다를 달래 주었다.

    “누구와 결혼하든 나는 여전히 힐다의 아스타 전하란다.”

    “하지마안……!”

    쓰담쓰담 아이를 달래는 사이 드디어 애 아빠인 카이 형부가 도착했다.

    “힐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슈덴, 살려 줘!”

    무시무시한 아빠를 본 힐다는 정식 시종이 된 슈덴의 뒤에 숨었다.

    “모두가 곤란해하고 있거늘. 어서 이리 오지 못하겠습니까!”

    카이의 호통에 슈덴은 나무토막처럼 서 있을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리 오십시오, 힐다 님.”

    오늘 호위를 맡은 디오니스 경은 버둥대는 힐다를 대신 안아 올렸다.

    “디오니스 경, 나 구해 주세요. 아빠가 날 납치해요.”

    발버둥을 치며 도망가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지만, 디오니스 경은 그런 힐다를 기꺼이 제 아빠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이 이상 아버님을 걱정시키면 안 됩니다.”

    “히잉.”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힐다는 어쩔 수 없이 제 아빠 품에 안기고 말았다.

    “어서 준비를 마치십시오. 저희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형부.”

    귀여운 훼방꾼이 떠난 후에야 겨우 내 치장에도 속도가 붙었다.

    엉망이 된 머리를 다 다듬을 즈음 슈덴이 시간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넬이 늦는군요.”

    “왔어, 도착했어!”

    우당탕탕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하며 달려온 세드릭이 숨을 헐떡이면서 외쳤다.

    “왔어?”

    “응! 무사히 잘 도착했어!”

    여전히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겉모습만은 정말 훌륭하게 자라 주었다.

    지금은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하고 있는 세드릭의 안내를 받아, 드디어 넬에게서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식을 듣게 됐다.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아스타로테 님.”

    “같이 온 거 맞지?”

    “예, 그렇습니다.”

    “다행이다아아아아아!”

    넬이 왔다는 건 그 역시 도착했다는 뜻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었는데, 몇 년 전의 마정석 풍년에 이어 올해는 더욱 마수들의 침공이 거세진 탓에 수확이 늦어졌다.

    그에게도 반드시 해야 할 임무가 있으니까, 이러다가 하마터면 신랑 없이 혼자 결혼식을 치를 뻔했다.

    “별 피해는 없고?”

    “모두 무사합니다.”

    “뀨!”

    익숙한 고향의 냄새를 맡은 건지 꼬마 라이언이 달려와 넬의 발 주변을 기웃거렸다.

    “이 녀석도 북부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응. 귀엽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앙증맞은 꼬마 라이언은 풍성한 꼬리를 흔들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럼 이제 출발해 볼까?”

    * * *

    마지막 퀘스트 달성 메시지가 나온 지도 몇 년이 지났지만, 그날 이후로 내게는 어떤 미션도 주어지지 않았다.

    마치 게임 플레이 종료 후 나오는 후일담처럼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연하게 알려 주던 퀘스트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나의 해피 엔딩을 위해 준비된 거였다는 걸.

    ‘대체 그건 뭐였던 걸까.’

    의문을 풀기 위해 왕궁 내에 남은 고대의 기록까지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거기다 힐다가 태어난 이후로는 폐하의 업무를 돕느라 이 조사도 어느샌가 뒷전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의문을 남겨 둔 채, 나는 드디어 즉위식만을 앞에 두고 있다.

    재상이 된 몽펠리에 후작과 참모가 된 카이. 믿음직한 호위 디오니스 경에 마법사 넬. 그리고 사교계를 주름잡는 세드릭과 의젓한 시종 슈덴까지.

    보좌진까지 훌륭하게 구축해 두었으니 드디어 오늘로 국왕 폐하와 로제타 왕비님은 그토록 바라던 은퇴를 이루게 됐다.

    “이 녀석, 드디어 왔구나.”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즉위식 자리에 들어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폐하와 왕비님을 알현했다.

    “에스텔라가 이 모습을 꼭 봤어야 했는데…….”

    아쉬움을 안은 왕비님의 손을 꼭 잡고 나는 환하게 웃었다.

    “분명 대견해하실 거라고 믿어요.”

    “그럼. 물론이지.”

    두 분 역시 내게는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하지만 그런 나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하아부지!”

    왕실의 귀염둥이 자리는 이제 저 녀석에게 물려줬으니까.

    뒤이어 카이 형부가 옷을 갈아입힌 어린 힐다를 데려왔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어쩌면 이리 귀여울까!”

    어린 나를 귀여워했던 것처럼 폐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녀를 티 나게 아꼈다.

    “어허, 버릇없이 이렇게 굴면 못 써요.”

    하지만 내게 그랬듯이, 왕비님은 여전히 엄격하게 예법을 상기시켰다.

    그 말에 힐다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하, 할마마마를 뵙사옵니다.”

    “그래. 아주 잘했어요.”

    힐다를 보고 있으면 꼭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행복한 가족들을 바라보며 나는 슈덴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라이언은?”

    “플로리아 님께서 직접 단장을 돕고 계십니다.”

    “그렇구나…….”

    벌써 몇 달째 보지 못했으니까……. 어서 만나러 가고 싶지만, 지금은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다.

    “아스타로테 님.”

    “어서 와요, 구스타프.”

    보고를 겸한 몽펠리에 후작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나는 대기실을 나섰다.

    뒤따르는 이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상트만의 수도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주일 전, 이슈발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사정을 모두 들은 폐하 역시 후작에게 죄인들의 처분을 맡겼다.

    내 열여섯 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후작은 부인의 병을 핑계로, 이슈발과 함께 산속에 있는 수도원으로 추방을 명령했다.

    “후작 부인이 죽은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네요.”

    그들이 수도원에 도착하고 얼마 후 내게 이슈발이 보낸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몽펠리에 후작은 직접 그의 손으로 편지를 내게 가져다줬었다.

    ‘뭔가요?’

    ‘이슈발이 보낸 편지입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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