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20)화 (120/123)

제120화

“이슈발은?”

“마침 잘 오셨습니다.”

모두의 우려처럼 후작 부인의 처소에 다다를 즈음 이미 안에서는 이슈발의 패악질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가서 입만 한 번 벙긋하면 당신도, 당신 아들도 모두 죽겠지. 이 빌어먹을 집안이 당신 덕분에 아주 박살이 날 거란 말이지.”

“제발, 제발……. 이러지 말아 주십시오!”

“비켜!”

늙은 시녀를 냅다 밀쳐 버리고서 이슈발은 반쯤 정신이 나간 후작 부인의 멱살을 잡았다.

“미친 척하지 마. 후작 어른은 속여도 나까지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네놈 따위가 감히.”

“그러게, 어린애를 함부로 괴롭히지 말았어야지. 내가 자라서 당신에게 복수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한 건가?”

잠자코 뒤에서 지켜보던 나를 위해 슈덴이 그간 알아낸 사정을 보탰다.

“후작 부인은 이슈발이 후작의 사생아라 믿은 모양입니다. 어린 시절, 엄청난 학대를 당했다고 하더군요.”

“자업자득이네, 그럼.”

매섭게 따귀를 날리는 것도 모자라 이슈발은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 후작 부인을 마구잡이로 때리고 있다.

하지만 차마 말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죄니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세드릭은 이 모습을 안 봤으면 하는데.”

“다행히 아직은 모르십니다.”

“……다행인 거겠지.”

세드릭은 이 모든 사정을 모르는 편이 낫다. 앞으로 제 어머니에게 일어나게 될 일까지도.

“이만 가자.”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내가 손을 대지 않아도 저 사람은 이미 충분히 지옥 속에 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가자.”

“예, 아스타로테 님.”

슈덴을 데리고 나는 후작의 처소로 향했다.

* * *

“이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사의 안내를 받아 나는 후작이 기다리는 방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후작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두운 밤하늘이 환히 비치는 커다란 창 쪽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었다.

“둘만 있게 해 줘.”

사람을 모두 물리고 난 후 후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게 해 줄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우선은 물어볼 것들이 많아요. 편지라든가.”

“편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후작에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라이언에게 보낸 편지를 가로챈 것도, 몽펠리에 가문 사람의 짓이었잖아요.”

“그건…….”

“어디 그뿐일까요. 사냥 대회에 독사를 푼 것도, 언니를 습격한 것도. 줄곧 내 목숨을 노린 것까지도 전부.”

그는 대체 어째서 이리도 나를 미워했던 걸까.

나는 숨을 꼴깍 삼키고 그에게 말했다.

“내 어머니, 에스텔라를 죽인 왕실에 대한 복수였군요.”

내 추궁에 몽펠리에 후작은 차분히 되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늘 궁금했거든요. 당신은 왜 그리도 나를 싫어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당신은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했겠죠.”

왕실 사람들을 모두 죽이면서도 마지막까지 나는 살려 뒀다.

그리고는 수없이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내 인생을 망쳐 놓았다.

“엄마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고 믿었을 테고요.”

그가 가장 증오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던 거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저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만으로 모든 걸 버리기엔 그의 등에 짊어진 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낳은 후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아내와 관련된 소문은 진작 들었지만, 그마저도 왕실의 농간이라 여겼습니다. 자신들이 한 일을 덮어씌웠다는 생각에 원망은 더욱 커졌지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테세우스도 제게 같은 말을 하더군요.”

내게 증거를 넘기기 전, 테세우스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몽펠리에 후작은 자기 키보다 한참 작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원망이 제 눈을 가렸던 모양입니다.”

똑똑, 노크와 함께 집사가 홍차를 가져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정 스킬을 써 봤지만 다행히 독 같은 건 들어 있지 않다.

소파에 자리하자 그는 대량의 서류를 가지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고스란히 내놓았다.

“이건…….”

당시 별궁의 시녀장은 막대한 돈을 받고 시녀로 변장까지 시켜 후작 부인을 들여보냈다.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 언제 나가서 얼마 만에 돌아온 건지.

피가 묻은 시녀복을 어떻게 처리했는지까지.

몽펠리에 가문에는, 내가 구한 것보다 더 많은 증거가 남아 있었다.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멸문도 각오하겠다는 뜻인가요?”

“모든 것이 가문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이렇게 바짝 엎드리면 내 마음이 흔들릴 줄 안 걸까.

아마 이것도, 테세우스가 꾸민 일이겠지만…….

그는 정말 얄미우리만치 내 마음을 흔드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후작은 자식을 참 잘 키웠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테세우스는 차기 재상감으로 거론해도 될 만큼 똑똑하고, 세드릭도 착하고 사교성이 좋으니 앞으로도 크게 활약하겠죠.”

죄인의 자식이 된다면 그들의 장래가 막히게 된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소문만 무성할 뿐, 그동안 엄마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왕비님을 비롯해 사람들은 엄마가 날 낳다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

아빠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사정을 아는 후작조차도, 시녀 차림의 사람에게 죽었다는 걸 알고서 왕실의 소행이라 오해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폐하만은 모든 진상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내게 미션을 줬던 날 폐하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나 역시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지만, 입장상 함부로 나설 수 없어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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