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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19)화 (119/123)

제119화

처음에는 정말 잠깐 보고 나갈 생각이었다.

숨은 채 안을 훔쳐보던 중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시녀 행세를 시작했다.

설마 엄마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온 건,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너무 길게 얘기하면 안 돼.’

안쪽 방에서 손짓하는 넬을 힐끔 보고서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이 애가, 내 아이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어쩌지.”

생각지도 못 한 엄마의 말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절대,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응?”

“저희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빠가 늘 얘기해 줬어요. 엄마는 목숨을 걸고 날 낳아 준 거라고요.”

우렁찬 내 말에 엄마는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내게 다가오라며 손을 뻗었다.

“우리 아이도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해 주면 좋을 텐데. 낳을 때는 정말 아팠거든.”

꼴깍. 숨을 삼키며 나는 물었다.

“후회하시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꺼낸 내 질문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이 세상에 와 준 축복인걸.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어째서일까.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저,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보렴.”

나는 서둘러 처음 숨었던 안쪽의 창고 방으로 도망쳤다. 허둥지둥거리는 나를 보며 엄마는 밝게 미소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말을 삼키며 나는 방문을 닫았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없어야 할 곳에서 나타났는데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내게도 엄마는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괜찮아?”

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우리는 숨을 죽이고서 문틈 사이를 바라보았다.

이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엄마는 곧 죽게 된다.

“당신은!”

“너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불행해지진 않았을 텐데.”

몽펠리에 후작은 전 약혼녀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못했다. 후작 부인은 그 모든 원망을 엄마에게로 돌렸다.

“전부 너 때문이야!”

증오에 찌들어 버린 끔찍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안 ㄷ…… 읍!”

그러자 이번에는 넬이 내 입을 막고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나를 부둥켜안았다.

“지금 나가면 시간 축이 뒤틀려. 그럼 모두가 위험해져.”

“하지만, 하지만 엄마가!”

“날 말렸던 건 너잖아.”

내 입을 틀어막은 넬의 손가락이 치아 사이에 파고들어 피 맛이 났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발버둥 치며 울먹이는 내 모습을 엄마가 보고 말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엄마는 힘겹게 웃으며 입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나오지 마.’

엄마는 일부러 몸을 비틀어 후작 부인의 시선을 끌었다.

“어딜 도망치려고!”

일부러 위험을 초래한 이유는 오직 하나. 문 뒤에 숨어 있는 어린 시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목격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후작 부인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꼴 좋구나.”

어느새 바닥 가득 선혈이 번져 나갔다.

배를 부둥켜안고 괴로워하는 엄마를 내려다보며 후작 부인은 웃고 있다.

“어서 나오셔야 합니다.”

복도 쪽 문밖의 누군가가 말을 건네자 와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범인이 달아났다.

그렇게 쓰러진 엄마는 홀로 방치된 채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이만 돌아가야 해.”

“하지만!”

외부로 통하는 문 너머로 저 멀리 사람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분명 아빠일 거다.

행여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도록 넬은 내 눈을 가리고 빠르게 시간을 되돌렸다.

* * *

눈앞에 새하얀 빛이 번져 나갔다.

나는 넬의 방 침대를 확인하자마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엄마…….”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어떤 결말이 찾아올지.

다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건 정말로 쉽지 않았다.

“네가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완료)서브 퀘스트 ― 망토의 시련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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