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17)화 (117/123)
  • 제117화

    저건 분명 넬을 그토록 미워했던…… 재규어다.

    “더러운 미란 출신 주제에. 문장을 가지고 있다고 날 무시해!”

    “문장은 이런 식으로 빼앗을 수 없, 윽!”

    흉기로 생살을 고스란히 도려내는 참혹한 장면에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풀썩, 힘없이 넬의 어머니가 바닥에 쓰러지고 빗물에 핏자국이 쓸려 내려갔다.

    “비천한 핏줄 따위가 어디 감히.”

    재규어는 미련 없이 앞서간 그의 아버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어서 따라가야 해!”

    넬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바로 그때, 나는 보고 말았다.

    “뭐야?”

    “잠시만.”

    나는 서둘러 넬의 옷소매를 잡아 그를 멈추게 했다.

    이미 죽은 줄만 알았던 넬의 어머니가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힘겹게 기어가 마지막 마력을 써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저건…….”

    “증거가 있었어.”

    마음이 급했던 넬은 미처 보지 못했었다.

    몸싸움 도중, 뜯어낸 범인의 단추에는 가문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옷자락을 찢어 핏물을 가득 머금은 단추를 단단히 감싸고서 땅에 묻었다.

    “하윽, 으윽…….”

    쏟아지는 빗물 탓에 출혈이 더욱 심해졌다.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넬의 어머니는 허공을 보며 자식의 이름을 불렀다.

    “넬. 부디 너만은 무사하기를.”

    거센 빗물이 우리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바로 앞에서 넬이 울고 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바닥에 기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빗방울이 더욱 거세지고, 넬의 입술이 파리하게 식었다.

    아직 상처도 다 회복되지 않았을 텐데, 이러고 있다가는 그의 몸이 견디지 못한다.

    “돌아가자.”

    홀로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를 앞에 두고 절망한 그에게 나는 손을 내밀었다.

    “아스타로테.”

    “어머니가 그러셨잖아. 너만은 무사해야 한다고.”

    넬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을 시전했다.

    잠시 눈을 깜빡이고 난 후, 우리는 원래 있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하아.”

    뚝, 뚝. 떨어지는 빗물에 나도 넬도 흠뻑 젖었다.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한 탓에 우리는 둘 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흑…….”

    “잘 참았어.”

    나는 그 말만 하고서 울먹이는 넬을 끌어안았다.

    “어머니 말씀, 기억하지?”

    너만은 무사해야 한다고. 네가 다쳐서는 안 된다고.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앞에 두고 넬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내 인생을 망가트리면서 복수한다 한들, 어머니는 기뻐하시지 않겠지.”

    “그래. 바로 그거야.”

    오열하는 넬의 눈물이 빗물에 섞여 내 겉옷 위로 스며들었다.

    아무리 복수한다 한들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너는 살아야 해.”

    당신의 진심 어린 위로에 넬의 호감도가 10 증가합니다.

    마법사 넬의 호감도 : 60(▲10)/10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