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맞은 걸로 보이는 시녀와 겁에 질린 귀부인.
슈덴은 두 사람 중 누가 후작 부인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놈은 뭐야?”
그리고 앞에 선 덩치 큰 사내.
커다란 체구도 무자비한 손속도, 슈덴은 저자의 정체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슈발. 몽펠리에 저택 안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자뿐이다.
‘이 일을 어쩐다.’
외면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으니 어떻게든 수습은 해야 한다.
“저는 테세우스 님의 시종입니다.”
이럴 때 팔아먹기 위해 빌린 이름이다. 테세우스의 이름을 말했음에도, 덩치 큰 사내는 다짜고짜 슈덴의 멱살을 잡았다.
“그럼 네 주인에게 가서 이것도 전해 보지그래?”
매서운 주먹이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윽!”
뒤이어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졌다.
“이슈발 님, 제발 그만하십시오!”
맞아 죽기 직전이었던 후작 부인의 시녀가 몸을 던져 말려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제일 먼저 나서서 말려야 할 후작 부인은 이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볼 뿐.
다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슈덴은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독한 새끼.”
지독한 밑바닥 생활 덕분에 맷집 하나만은 끝내준다.
이슈발이 먼저 나가떨어질 때까지 슈덴은 몸을 웅크리고서 모진 발길질을 견디고 또 견뎠다.
* * *
“슈덴이 다쳤다고?”
세드릭의 연락을 받자마자 나는 몰래 궁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는 절대로 못 보낸다며, 미나는 디오니스 경을 불러 내 호위를 맡겼다.
“기꺼이 동행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그는 기꺼이 나를 위해 나서 주었다.
“슈덴은 괜찮아?”
저택 입구에 도착하자 세드릭이 직접 나를 슈덴의 침소로 안내했다.
나와 함께 온 디오니스 경도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쩌다가 이런…….”
“면목이 없습니다.”
뼈만 안 부러졌지,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다. 질겁한 우리와 달리 세드릭은 한숨만 쉬었다.
“괜한 화풀이인 건지 이슈발은 예전부터 종종 어머니의 시녀를 때리곤 했어.”
“그걸 그냥 내버려 둔다고?”
“아버님은 방치하셨고 형님은 사정을 제대로 모르고, 나는 아무런 힘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아랫사람인 집사가 선뜻 나설 수 없는 문제다.
“빌어먹을!”
분노한 테세우스를 내가 막았다.
“지금은 안 돼.”
“하지만!”
“일단 슈덴은 몸이 낫는 대로 평소처럼 일하도록 해.”
지금 이 일을 문제 삼는다 한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대로 이슈발과 마주하게 되면 또다시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대신 또 맞을 것 같으면 딱 한 대만 맞고 도망가.”
“한 대 말입니까?”
“그래. 맞았다는 사실 자체는 필요하니까.”
아무리 귀족이라도 사람을 마구 패고 다닐 권리는 없다.
“테세우스는 나서지 말고, 세드릭 네가 증거를 모아.”
“내가?”
테세우스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며칠 남짓, 그가 돌아가고 나면 저택은 다시 엉망이 되어 버릴 거다.
“그래. 이번에야말로 세드릭, 네가 활약할 차례야.”
뜻밖의 내 말에 놀란 눈치지만 세드릭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이 직접 증거를 모아 정식 민원을 제기한다면 후작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집사가 보고한다 한들 몇 대 쳤다, 정도일 테고.
몽펠리에 후작 가문의 가주가 이런 사소한 다툼에 직접 나서는 건 아무래도 모양이 빠진다.
“……어쩔 수 없군요.”
테세우스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눈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이내 내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슈덴에게만 살짝 속삭였다.
“이슈발이 왜 후작 부인을 괴롭히는지 알아봐.”
“이유 말입니까?”
누군가는 내부에 들어와 알아봐야 했던 거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의 유혈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미안해. 이렇게까지 상황이 곤란해질 줄은 몰랐었는데.”
진심으로 사과하는 나를 앞에 두고 슈덴은 기꺼이 웃었다.
“이렇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기쁠 뿐입니다.”
“슈덴.”
“당신은 제가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막아 주신 은인이시니까요.”
내게 빚진 목숨은 반드시 나를 위해 바치겠노라고. 슈덴이 했던 말은 나 역시 기억하고 있다.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며 나를 말려 준 라이언이 아니었다면…….
“이제 그만 출발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려서 더 오래 있을 수는 없다.
디오니스 경의 재촉에 나는 서둘러 몽펠리에 저택을 나섰다.
“너무 많이 맞진 마. 한 대야, 한 대!”
마지막까지 강조하는 나를 향해 슈덴은 아픈 팔로도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서둘러 별궁으로 향하던 도중, 분수 근처를 지날 즈음이었다.
분수 옆에 로브를 뒤집어쓴 어디서 많이 본 남자가 앉아 있다.
“디오니스 경. 잠시만, 망을 좀 봐주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저녁 시간에 접어들면 오가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일단 궁 안에 들어와 있으니 여차하면 산책 중이라고 둘러대면 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쪼르르 달려가 로브를 쓴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넬?”
깊게 쓴 후드 안에 보이는 머리카락과 얼굴을 보니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약 15년쯤 나이를 먹은 것 같은 넬이 분명하다.
“다행이다. 나를 알아봤구나.”
“네가 어떻게……?”
“아스타에게 꼭 해 줘야 할 말이 있어서, 슬슬 시작되겠구나.”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자기 마법부 근처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뭐야?”
건물에서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병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스타로테 님!”
디오니스 경이 우려를 표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서 서둘러 수풀 뒤에 숨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마 지금쯤 이 시간대의 나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거야.”
“뭐?”
“마법을 익히긴 했는데 힘 조절이 서툴러서, 일주일 정도는 의식을 회복할 수 없을 거거든.”
자신이 의식 자체를 차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데…….
그런 것치고는 어째 너무 태연하다.
“내가 나와 만나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 테니까,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기간밖에 없었어.”
“좀 알아듣게 말해 봐.”
“내가 아스타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 거야.”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그래도 돼?”
“그럼 우리는 공범이니까.”
궁지에 몰린 나와 달리 여유가 넘치는 넬은 객관적으로 내 마법 실력을 따박따박 짚어 나갔다.
“지금 아스타의 실력으로는 마법을 익힌다 한들 실제로 시간을 넘을 수 없으니 말이야.”
무엇 하나 부정할 곳이 없다.
단시간 내에 마법 실력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어떡하지?”
“걱정 마.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 말과 함께 갑자기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떴다.
[(new)히든 퀘스트 ― 특별 훈련]
단기간 안에 마법 기초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시오.
마법기술 55 이상
항마력 50 이상
시간제한 : 1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