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왕녀가 기꺼이 손에 쥔 펜던트를 내보이자 아스타는 대답 대신 라이언의 옆에 꼭 붙어 얼굴을 숨겨 버렸다.
“이런, 이제는 아빠보다 연인이 더 좋아질 나이가 된 모양이로구나?”
“아스타, 아빠는!”
“아빠는 욕심쟁이야. 아빠한테는 엄마가 있잖아요.”
“그건…….”
“물론 아빠가 없었으면 저도 태어나지 못했을 테지만요.”
살짝 혀를 내밀며 웃는 모습을 보면서 라이언은 새삼 느꼈다.
아스타는 이토록 사랑받는 데 익숙하다. 그는 말없이 제게 팔짱을 낀 아스타의 손을 꼭 거머쥐었다.
“라이언?”
“슬슬 경매가 끝날 시간이야.”
원하는 것을 얻은 이도, 아쉽게 놓친 이도 다 함께 음악에 취해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마지막 매물의 주인이 정해지고 경매의 종료를 알리며 악단이 자리를 잡았다.
라이언은 아스타로테를 에스코트해 무대의 중앙으로 나섰다.
“한 곡 부탁드립니다, 레이디.”
“기꺼이 받아들일게요.”
햇살처럼 환한 아스타의 미소에 눈이 부셨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오직 자신을 향하고 있다.
라이언은 엷은 미소를 머금고 정중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부디 이 행복한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 * *
깊은 밤.
파티의 마무리는 아이들에게 맡기고 국왕 부부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자식을 다 키워 놓으니 섭섭하면서도 이럴 때는 좋군.”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시중드는 이 하나 없는 침실로 돌아온 후에야 로드리고는 국왕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아내 로제타의 품에 몸을 기댔다.
“아스타 녀석, 왕녀의 능력을 두고 엉뚱한 짓을 벌인 모양이야.”
“능력이요?”
로드리고는 그동안 조사한 왕녀의 능력에 대해 들려주었다.
“비록 아직 어설픈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잘만 쓰면 위협적인 능력이 되겠더군.”
“……세상에 그런 능력이 있다니.”
등 뒤에서부터 파고드는 남편의 손길에도 로제타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렸다.
“왜 그러지?”
“……에스텔라를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간절한 로제타의 말에 로드리고의 손길이 멈췄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고서 사랑하는 아내의 귓가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오래된 일까지는 알 수 없는 모양이야. 아스타로테가 이미 물어봤다더군.”
“그 아이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아스타가 직접 물어봤다니. 당황한 로제타를 보며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자기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
“에스텔라…….”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기억이다.
타살이었다는 정황이 뒤늦게 발견되었지만, 몇 년이 지나 버린 후라 제대로 조사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애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 설령 아이를 잃더라도…….”
아직 젊으니까, 다음 기회가 있을 거라며 모두가 설득했지만 에스텔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나는 아스타로테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죠.”
“……당신은 에스텔라를 친동생처럼 아꼈으니까.”
어린 아스타로테는 왕실 모두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 작던 아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는데…….”
사실상 왕위계승권을 포기한 플로리아를 대신해 아스타로테는 훌륭하게 차기 국왕감의 풍모를 보여 주고 있다.
물러서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제법 적대적인 몽펠리에 가문마저 왕가에 협조하게 만든 것도 전적으로 아스타로테의 공로다.
거기에 그라나다 가문까지 붙어 있으니 아스타로테의 미래는 한없이 찬란하다.
그렇기에 더 석연치 않다.
“그 아이라면 알아낼지도 모르지, 제 엄마를 죽인 게 누군지.”
“……폐하.”
아내를 달래기 위해 로드리고는 재빨리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내가 국왕 노릇을 그만두면 저 멀리 시골에서 단둘이 사는 건 어때. 내가 큰 집을 지어 주지.”
하지만 엄격한 로제타 왕비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아마 그때쯤이면 전 플로리아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쁠걸요.”
“이것 참, 서운하네.”
완곡한 거절에 서운함을 드러내면서도 로드리고는 사랑하는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그 아이라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손가락 끝에 박힌 가시는 여전히 상처로 남았다.
만약 아스타로테가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왕위를 넘겨줘도 좋다.
“잘 해내렴, 아스타로테.”
* * *
경매의 마지막 물량은 무아르 왕국의 낙찰로 막을 내렸다.
이런 것에는 익숙지 않은 왕녀를 대신해 테세우스는 적절한 가격에 대량의 마정석을 낙찰받는 데 성공했다.
“역시 능력도 좋다니까.”
“……불만입니까.”
슬쩍 테세우스를 한 번 놀려 주고 나는 경매장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인가.”
매력 수치도 잔뜩 올려놓은 상태에서 지젤 왕녀는 물론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안면을 텄다.
초반에는 잠시 위태로웠지만, 이번 만남은 그야말로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최종 보고를 위해 나는 폐하의 집무실을 찾았다.
“마침 잘 왔구나.”
“말씀하신 분석 자료를 준비해 왔어요.”
경매에 참여한 이들과 각각이 확보한 물량이 얼마인지 알면 앞으로의 동향도 예측할 수 있다.
라이언의 도움을 살짝 받긴 했지만, 완성된 자료를 본 폐하는 역시나 흡족하게 웃었다.
“과연 나의 후계자로고.”
“제가 좀 똑똑하죠.”
“네가 올해로 몇 살이었지?”
“열다섯입니다.”
육성을 마치는 시기까지는 몇 년 남았는데 지금 수치로도 왕비 정도는 쉽게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내 목표는 그게 아니니까.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느냐?”
“네. 물론입니다.”
“내게는 소질이 없었다만……. 배워만 둔다면 마법부를 통솔하기도 훨씬 쉬워지겠지.”
합당한 이유만 대면 이유 없이 반대할 분이 아니다.
“겸사겸사 알아내고 싶은 것도 있고요.”
넬의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을 찾게 된다면 곧장 전면적인 재수사에 들어갈 참이다.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벌할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다.
그럴 참이었는데…….
“네 뜻이 그러하다면, 대공비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보거라.”
“예?”
“나 역시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지만, 입장상 함부로 나설 수 없어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new)메인 퀘스트 ― 왕의 자격 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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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기술 60 이상
항마력 50 이상
대공비 에스텔라를 죽인 범인을 알아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