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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06)화 (106/123)

제106화

“예?”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꽃다운 열다섯에 동안 소리를 듣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흠.”

옆에 선 성격 나빠 보이는 남자가 헛기침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무아르식 농담에 매우 낯서실 겁니다.”

농담 아닌 것 같은데. 필사적으로 뒷수습하는 저 사람은 그래도 무아르풍의 악센트가 덜하다.

그때 라이언이 살짝이 귀띔해 줬다.

“저 사람이 테세우스야.”

“어?”

아무래도 초상화가 다 왜곡된 것 같다.

세드릭의 형이래서 제법 기대가 컸는데 미화된 인물화와 달리 실물은 너무나도 깐깐해 보인다.

“……무아르식 농담이었군요.”

“올해로 열다섯이 되셨다고 합니다.”

대놓고 눈치를 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왕녀가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백 년이라는 숫자가…….

‘아니, 잠깐만!’

원래 인생에 회귀한 세월까지 합치면 그 정도 되긴 하는데.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헤에.”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신기해서요.”

“전하?”

아무리 타국의 왕녀라 해도 나 역시 차기 국왕이 될 몸이다.

옆에 선 테세우스가 미치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정작 지젤 왕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다가와서는.

대뜸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스타로테 님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운명이요?”

“왕녀 전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라이언을 힐끗 보고서 지젤 왕녀는 보란 듯이 내 뺨에 자기 뺨을 비볐다.

“우리의 만남 또한 운명이겠죠.”

“아, 네…….”

뺨을 맞대는 인사, 비쥬는 무아르의 오랜 전통이기에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잔뜩 늘어놓은 왕녀는 내 손을 잡고 해맑게 웃었다.

“아스타로테와 함께 춤추고 싶어요.”

“저랑요?”

“왕녀 전하!”

두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거나 말거나, 지젤 왕녀는 내 손을 잡고 무대에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즐겁네요!”

해맑은 미소가 참 예쁘긴 하지만 그 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광기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또라이인가.’

……아무래도 이 왕녀 생긴 건 멀쩡한데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 같다.

* * *

“죄송합니다.”

야외 행사가 끝나고 잠시 휴게실에 들를 즈음 세드릭의 형, 테세우스는 일부러 나를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

“굳이 이럴 것까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괜찮다고 말리는 나와 달리 라이언은 정색했다.

“아까부터 운명, 운명 거리는 건 대체 뭔가요?”

“그것이…….”

내 물음에 테세우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왕녀께서 목에 걸고 계신 펜던트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신비한 능력?”

“다우징(Dowsing)이라고 하죠. 미래도 보고 숨겨진 물건도 찾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정말?”

“어머나, 왕녀 전하. 정말 감사합니다!”

창밖이 유독 소란스러워 창문을 열자 밖에서 나는 소리가 방까지 들려 왔다.

“저 작은 귀걸이를 이렇게 복잡한 연회장에서 감쪽같이 찾아내시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호오.”

나는 턱을 괴고서 창밖을 지그시 바라봤다.

정말로 뭐든 다 찾을 수 있는 능력이라면 넬의 부모님을 죽인 원수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굳이 마법을 억지로 배울 필요도 없고…….

‘설득하기도 조금 더 쉬워질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던 중 라이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스타?”

“……응?”

“왕녀에게 관심이 생긴 거야?”

“관심이야 있지.”

저 능력이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잘만 활용하면 분명 내게도 유리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라이언은 그런 내 모습을 유독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다.

“라이언, 왜……? 어?”

“잠시 실례하지.”

라이언은 방심한 나를 가볍게 안아 들고서 그대로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아가씨!”

“라이언?”

모두가 당황한 와중에도 라이언은 나를 내려 주지 않고 그대로 어디론가 향했다.

서두르는 걸음이 만든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왕궁 어귀에 도착한 후에야 그는 겨우 나를 내려 줬다.

“갑자기 납치라니, 이런 이벤트는 생각도 못 했는데.”

“……둘만 있고 싶었어.”

어딘지 모르게 잔뜩 골이 난 걸 보니 어지간히도 질투가 난 것 같다.

나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라이언의 뺨을 만졌다.

“왕녀한테 질투라도 한 거야?”

“못할 건 없지.”

“뭐야, 어린애도 아니고.”

언제나 어른스러워서 늘 여유가 넘치곤 했는데, 라이언은 오늘따라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게. 왜일까.”

“혹시 테세우스한테 질투해?”

미안한 말이지만 테세우스는 정말 손톱만큼도 내 취향이 아닌데, 이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그쪽도 그쪽이고.”

“응?”

“너는 내 마음을 몰라.”

벽에 몸을 기댄 나를 두 팔 안에 가두고서 라이언은 진지하게 물었다.

“아스타.”

한없이 진지한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 게다가 반질반질한 입술까지.

벌써 이러면 정말로 곤란한데.

하지만…….

그래도 밀어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보면 부끄러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그러게.”

때 이른 키스 대신 라이언은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른이 되면 키스도 마음껏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해 버려도 난 괜찮은데.”

“대공 전하나 폐하께서 날 살려 두시지 않을걸.”

키득키득 웃으며 라이언을 꼭 껴안는데 하필 어디선가 섬뜩한 기운이 내리꽂혔다.

할슈타인 대공이 [자녀안심 서비스 Lv.5]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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