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사람은 때때로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고 만다.
“어. 그게 이쪽은…….”
“세드릭 님과 건실하게 교제 중인 아스나라고 합니다.”
행여나 저 띨띨이, 아니 세드릭이 이름을 잘못 부를 때를 대비해 나는 적당한 가짜 이름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어머나. 귀여워라. 아스나 양, 세드릭의 친구라면 날 아그네스라고 불러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도 아르그란드 부인은 내가 누구인지, 신분도 가문도 물어보지 않았다.
“우리 세드릭이 이렇게 귀여운 손님을 데려오다니,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야. 차를 내려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어쩐지 신분이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백작 부인은 손수 차를 우리겠노라며 시녀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잘 넘어간 건가?”
“……내 친구라고 했으니까 그렇지. 네 부모가 누군지도 물어보지 않으시잖아.”
“그게 뭐?”
“대모님은 신분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야.”
세드릭은 의기양양하게 백작 부인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어필했다.
어쩌면 이리도 어리숙하고 순진한지.
나는 괜히 눈을 흘기고서 세드릭에게 핀잔을 줬다.
“그거야 내가 입은 옷만 봐도 평민이 아니라는 건 알아볼 수 있을걸.”
왕실에서나 입을 법한, 아니 진짜 왕실에서 준비한 드레스인데.
아무리 지금은 은퇴하고 뒷방에 물러났다고 해도 귀족 사교계에서 구를 대로 구른 그녀가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사교계와는 몇십 년이나 단절된 분이야.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걸.”
그런데도 세드릭은 열심히 부인의 편을 들고 나섰다.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은 분이지만 너는 귀여워한다는 거야?”
“내가 좀 귀엽잖아.”
그새 또 의기양양해져서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싸늘한 눈으로 보기만 하는 나를 두고 세드릭은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알면 됐어. 적당히 명예 백작 가문이라고 둘러대. 아펠바움의 이름을 빌릴까?”
지금은 카이라는 양자를 들여야 했지만 몇십 년 전이라면 그래도 나름 명문으로 인정받던 가문이다.
때마침 차를 가져온 아르그란드 부인은, 역시나 차를 따라 주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아스나 양의 아버님은 어느 분이실까?”
“아펠바움 명예 백작이세요.”
“아펠바움이라. 조부님이라면 뵌 기억이 나요. 훌륭한 학자님이셨지요.”
“감사합니다.”
훌륭한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 아르그란드 백작 부인의 호감도가 50 상승합니다.
아르그란드 백작 부인의 호감도 : 50(▲5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