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74)화 (74/123)
  • 제74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른들의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상황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여기에 모인 게 사실상 사교계 공인 열등생들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런 젠장!”

    괜히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는 습관이 있는 더그.

    “흑, 흐윽……. 미안해.”

    툭하면 우는 유리구슬 같은 소년 글라스.

    거기에.

    “바보들.”

    “여기는 다 바보들밖에 없어.”

    서로 외에는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쌍둥이 자매까지.

    그리고.

    “자 아스타, 저만 믿으세요.”

    잘하긴 하는데 너무 의욕이 앞서는 세드릭까지.

    “윽! 잠깐만!”

    파트너인 세드릭이 폭주할 때마다 나까지 휘말려서 스텝은 엉망으로 꼬이고 만다.

    제발 좀 다른 사람이랑 하고 싶은데.

    “저희는 저희 둘이 좋아요.”

    메리와 케이트 쌍둥이가 둘이서 무조건 하겠다고 나서고 세드릭은 좀처럼 내게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국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처럼 변덕쟁이니까요.”

    내 옆에 딱 붙어 있는 세드릭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말 한 번 섞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됐다.

    이번 퀘스트의 명제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친구 두 명 사귀기였건만.

    ‘이래서야 언제 친구를 사귄담.’

    심지어 쌍둥이가 자기들끼리 짝을 짓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남은 소년 둘은 자기들끼리 파트너가 됐다.

    “글라스, 잘 좀 잡아 봐.”

    “미, 미안해.”

    두꺼운 안경을 쓴, 어딘지 모르게 연약한 소년 글라스는 핀잔을 주는 덩치 큰 소년 더그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여섯 명 중에 두 명이면 생각보다 괜찮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는 세드릭의 강렬한 방해 공작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춤을 출 때는 상대와 눈을 마주하고서. 앙 두 트와.”

    “오늘 수업도 너무나 즐겁군요!”

    “여기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세드릭, 너밖에 없는 것 같은데.”

    시간만 꽉 채운 수업이 끝나고 왕비님은 피곤한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지는 잠시 휴식, 아스타로테는 잠시 날 따라오도록 해.”

    “네, 왕비님.”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세드릭에게서 겨우 벗어나 나는 쪼르르 왕비님에게 다가갔다.

    “많이 피곤해 보이셔요.”

    “아스타로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예?”

    “내 수업이 재미가 없니?”

    뜨끔.

    왕비님의 말씀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도 아니고.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왕비님의 수업은 재미가 없다.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고 매너를 익히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지 몰라도.

    같은 것만 계속 반복하다 보니 다들 지쳤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긴 하다.

    “아니면 파트너를 바꿔 가며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파트너를 바꿔서?”

    “지금은 다들 자극이 없으니까요. 세드릭이 춤을 잘 추니 그 애의 리드로 저도 잘 춰 보이게 되지만, 제가 글라스와 함께 췄을 때도 잘 출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자신의 수준을 잘 알고 있구나.”

    [예술] 36(▲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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