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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69)화 (69/123)

제69화

“다, 다, 단둘이라니요?”

갑작스러운 로드리고의 접근에 오히려 몽펠리에 쪽이 당황했다.

코앞까지 로드리고의 얼굴이 다가와 달콤하게 눈웃음을 쳤다.

“궁금하지 않나?”

덩치는 커다란 사내이기에 로드리고에게는 남성조차 매료시키는 페로몬이 한껏 뿜어져 나왔다.

로드리고는 껄껄 웃으며 긴장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예끼, 놀라기는.”

압도적인 매력 앞에 성별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몽펠리에 후작은 저도 모르게 숨을 꼴깍 삼켰다.

꼴깍.

속 모를 로드리고의 도발에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몽펠리에 역시 맞대응에 나섰다.

“그래서, 저의 오랜 친구인 그라나다의 병세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오늘내일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

라이언의 아버지 그라나다 공작의 병세는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활약하며 기뻐한다고 해도 잠시일 뿐. 그렇다고 병까지 나을 수는 없다.

“차기 그라나다 공작의 어깨가 참으로 무겁겠군요.”

뼈가 있는 그 말에도 로드리고는 당황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안 그래도 오늘은 그 문제 때문에 자네를 불러들인 것일세.”

“무슨 일인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어쩐지 흥미로운 서론에 몽펠리에의 눈동자가 빛났다.

로드리고는 슬슬 미끼를 던졌다.

“공에게는 분명 아스타로테 또래의 아들이 있었지. 아마 이름이 세드릭이었다고 했던가?”

어떻게 국왕 쪽이 먼저 세드릭의 이름을 언급한 걸까.

몽펠리에는 숨을 꼴깍 삼키며 이내 예를 차렸다.

“……예,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스타로테가 예의범절과 댄스를 익혀야 하는데 마땅한 파트너가 없어서 말이지.”

“그라나다 소공작이 멀쩡히 있는데 말입니까?”

“그 친구에게는 그 친구대로 할 일이 있으니 말이야. 자네 말대로 제 아버지의 일도 해야 하고. 고작 춤 연습에 부려 먹기에는 아까운 인재야.”

겉으로는 소공작을 칭찬하는 것 같지만 결국 아스타의 옆에 세드릭을 붙여 놓겠다는 뜻이다.

정치공학적으로는 이게 맞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몽펠리에는 새삼스러운 양 뻔뻔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저야 폐하의 명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지만 행여나 저희 가문이 다른 꿍꿍이를 품었다는 나쁜 소문이 돌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옵니다.”

생전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손톱만큼도 안 쓰던 사람이 저런 소리를 하니 로드리고조차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렇단 말이지?”

저쪽이 위선으로 나온다면 이쪽 역시 위선으로 나오면 그만이다.

“자네는 알고 있을 걸세.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내가 전장을 떠돌던 시절을 기억하나?”

호기롭던 시절, 이곳저곳을 떠돌다 부상당해 결국 아르노 왕국에는 할슈타인 대공을 보내야만 했다.

“그때 나 대신 궁정을 지켜 준 것이 누구였던가.”

진정성 있는 로드리고의 말에 그 능글맞은 몽펠리에조차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거야 당연히 저였지요.”

“그러니 말일세. 내가 비록 표현은 서툴지만 그래도 자네가 있어 주었기에 이 고된 왕 노릇도 충분히 해낼 수가 있었어.”

“폐하.”

“역사가 자네를 충신으로 기억할 걸세. 괴한들이 자꾸 왕실을 노리고 있는 것도 수상쩍고.”

북부 노예 건을 빼면 모두 몽펠리에가 한 짓이지만 국왕은 그 사실을 모른 채 후작의 어깨를 있는 힘껏 감싸 안았다.

“자네같이 든든한 원로가 있으니 나도 마음이 놓여. 그러니 앞으로도 부디 왕실을 지켜 주었으면 하네.”

“저 따위가 어찌 그런 중책을 맡을 수 있을까요.”

“호칭 같은 건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몽펠리에 후작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명예이기에 국왕은 기꺼이 그가 원할 것 같은 당근을 들이밀었다.

“특별관의 직책은 어떤가? 나태한 나의 신하들에게 긴장감을 더해 줄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특별히 더 믿는 신하라는 뜻의 명예직이지만 관심이 고픈 몽펠리에에게는 제법 솔깃한 제안이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나는 자네를 믿어.”

로드리고의 묵직한 목소리에 몽펠리에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네는 역사에 길이 남은 충신으로 기록될 걸세.”

“……그럼요. 물론이고 말고요.”

아무리 그라나다가 충성스러운 가문이라 하나 지금은 몽펠리에 쪽이 더 필요하다고.

당근을 요란하게 흔들어 댄 덕분에 몽펠리에의 태도도 한껏 누그러졌다.

“그라나다에게는 내가 잘 알아듣게 설명해 놓도록 하겠네.”

로드리고의 말에 몽펠리에는 어쩐지 낚인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함박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좀처럼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 * *

단기간에 예법을 올리기 위해서는 특별 훈련이 필요하다.

왕비궁에 돌아온 후, 왕비님은 분필을 들고 바닥에 손수 선을 그었다.

“어찌 손수 이런 일을 하시옵니까.”

“아스타로테, 네 눈으로 직접 보렴.”

“와아…….”

아무것도 없이 쭈욱 그은 선임에도 조금도 비뚤어지거나 어긋나지 않았다. 아주 곧은 일직선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게 바로 힘 있으면서도 우아한 걸음걸이를 익히는 방법이란다.”

“저도 열심히 배우면 왕비님처럼 우아해질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그리고 남들보다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을 거란다.”

그러고는 특훈이 시작됐다.

정확하게 일직선을 향해서 걸어올 수 있도록 수없이 연습했다.

다시, 다시, 다시.

계속 울려 퍼지는 다시라는 말에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왕비님의 말처럼 순식간에 예법 수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궁중예법] 27(▲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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