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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66)화 (66/123)

제66화

“라이언.”

“미안해. 부족한 약혼자라서.”

어째서 이 애가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까.

사뭇 진지한 그 말에는 진심이 가득하다.

나는 고개를 젓고서 라이언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말도 안 되는 소릴. 누가 너보고 부족하대!”

“정말?”

“네가 왜 그런 말을 해.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빠도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이번뿐만 아니라 회귀할 때마다 라이언은 어쨌든 그라나다의 일원으로서 왕실에 충성하고 매번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예전에는 NPC라는 생각에 그저 당연하게만 여겼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이 애도 이곳에서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고마워.”

나는 있는 힘껏 라이언을 끌어안았다.

* * *

그 일이 있고 며칠 동안 나는 침대에서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마지막 퀘스트도 마쳤으니 폐하만 뵈러 가면 되는데, 제한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고 싶지 않다.

그냥 이렇게.

조금만 더 이렇게 있고 싶은데.

“오랜만에 푹 쉬렴.”

아빠는 아침 회의에만 참석하고 곧장 별궁으로 달려와 병간호를 해 줬다.

내가 앓아누웠다는 소식에 다들 문병을 왔다.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단다.”

“로제타 왕비님.”

“얼굴이 반쪽이 됐어.”

왕비님이 준비해 주신 달콤한 스튜를 마시니 거짓말처럼 속이 든든해졌다.

하지만 그걸로 다친 마음까지 낫진 않는다.

“아스타!”

뒤늦게 소식을 들은 플로리아 언니는 부리나케 달려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빌이 어떻게 그런 짓을……. 무서웠지?”

“나는 괜찮아, 언니.”

“우리 아스타는 아직 여리기만 한 아이인데. 위험한 일은 하지 마.”

여린 건 몰라도 저 말이 맞긴 하다. 그렇게 다들 오후에 다녀간 것과 달리.

라이언은 거의 매일 이른 아침 문병을 와 줬다.

“왜 이 시간에 와?”

“대공께서 날 보면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

“틀린 말은 아니지.”

가족들과 있을 때는 오히려 억지로 웃던 나도 라이언 앞에서는 솔직하게 늘어져 있을 수 있다.

침대에 반쯤 걸터앉은 그 애의 허벅지를 베고서 나는 굼벵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내가 어떻게 해야 네가 괜찮아질까.”

나는 라이언의 말을 일축했다.

“그냥 이대로가 좋아.”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고 일주일쯤 됐을 때.

나는 라이언에게 물었다.

“……빵집은 어떻게 됐어?”

“다시 짓고 있어. 마을 사람들 모두 힘을 모아서 돕고 있어.”

“건물을?”

“우리를 견학시켜 주셨던 단골손님, 그분의 아내가 사업을 물려받았다고 해.”

“아.”

돌아가신 아저씨를 생각하니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가족들은 얼마나 날 원망하고 있을까.

“보러 갈래?”

“내가 가면 다들 싫어할 거야.”

“아니. 다들 널 걱정하고 있어. 많이 아프냐면서.”

지난 반년간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빵집의 마스코트 노릇을 해 왔다.

밀가루 포대도 잘 나르고 진상도 겁 없이 퇴치하던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힘겨운 와중에도 내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날 신경 쓸 상황이 아니잖아.”

“네가 만나고 싶다면 데려가 줄게.”

이런 내가 만나러 갈 자격이 있을까. 라이언은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잡아당겨 외출 준비를 하러 갔다.

미나도 기다렸다는 듯 아무 말 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둘게요. 그러니 잘 다녀오세요.”

옷깃을 단정히 다듬으며 미나가 말했다.

“미나…….”

“하루빨리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세요. 우리 아가씨는 그게 제일 잘 어울려요.”

무슨 염치로 씩씩해질 수 있을까. 나는 커다란 망토를 뒤집어쓰고,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나를 뒤에 숨겨 놓고 라이언은 한참 공사 중인 현장으로 찾아갔다.

“잘 되어 가고 있습니까?”

“아주 순조로워요.”

중년의 아주머니는 바지 차림에 소매를 걷어붙이고서 힘차게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거기, 그걸 그렇게 놓으면 안 되지!”

“잔소리하고는. 알았어! 하여튼 꼼꼼하다니까!”

“대충 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사내보다 더 큰 호령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 얘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빵집 아가씨는 아직도 아프대?”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겠지. 아직 어리니까.”

“도착했다!”

한참 정신없는 공사 현장 옆에서 갑자기 사장님이 튀어나왔다.

나는 서둘러 입을 틀어막고 그 모습에 귀를 기울였다.

“뭐가 도착했길래요?”

“새 장비 말입니다. 이번 사고 소식을 듣고 장비 만드는 대장간에서 절 위해 특별히 새 장비를 만들어 줬습니다.”

“그래요? 너무 잘 됐다.”

“그동안 일했던 직원들은 무섭다며 다 그만뒀으니까. 이럴 때 아스타 그 아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고, 내가 무슨 얘기를.”

습관처럼 넋두리하던 사장님은 라이언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 애가 옆에서 한 한 달만, 다른 직원들 가르쳐 주고, 그렇게만 해 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안 되는 거 압니다. 많이 아프다면서요.”

“……실은 저기 와 있습니다.”

“라이언!”

화들짝 놀라 뛰어나가자 두 사람 다 금세 나를 알아봤다.

나는 쭈뼛대며 돌아가신 아저씨의 부인분 앞에 머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너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마구 비난당해도 할 말이 없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고개를 숙였건만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 남편이 죽은 일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왜 아가씨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예?”

“나도 억울하고 서러워요. 괴롭고. 아프고. 하지만 아가씨, 아가씨라고 해도 되나. 어쨌든 범인을 잡아 줬잖아요.”

“하지만.”

“거기는 전부터 나한테도 이상하다고 말을 했었어요. 아가씨 얘기도 했었고.”

“제 얘기요?”

내 얘기가 나왔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아주머니는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가 자식이 없어서, 우리 남편이 매일 빵을 사러 갈 때마다 나한테 자랑했거든.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으니까. 다음 생에는 꼭 저런 딸을 낳자고.”

그 말을 하고서 아주머니는 옷소매로 금세 눈물을 훔쳤다.

“바보 같은 사람. 누가 결혼해 준다고 한 것도 아닌데…….”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모두 다른 법이다.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고 사장님은 새로 주문한 분홍색 앞치마를 쥐고 내게 물었다.

“대단한 분이라곤 했지만, 나한테는 역시 그냥 아스타니까. 한 달만. 딱 한 달만 도와줄 수 있을까?”

“저라도 괜찮으시겠어요?”

“너 말고 우리 가게에 내 메뉴를 다 외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가격은 나도 다 기억 못 하는데.”

“그런 거였어요?”

“그래! 네가 잘 알아서 하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맡겼지.”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사장님한테 틀린 거 걸릴까 봐 코피 터지게 외웠는데.

일말의 배신감이 흘러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앞치마를 받아 들었다.

“저는 제가 두 분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해요.”

[도덕성] 60(▲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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