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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62)화 (62/123)

제62화

“저쪽은 내가 추적하지.”

위험한 곳은 라이언이 선발대와 함께 나서고, 나는 병사들과 함께 요새처럼 메워진 저택 앞을 지켰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수색을 시작해 볼까요?”

* * *

처음 이곳에 도착할 즈음부터 내 마음속에는 여기저기 불길한 예감들이 고개를 툭툭 들었다.

‘그게 정말 오라버니였을까.’

싸움조차 못 하는 빌헬름 오라버니가 어딘가에 불을 지를 만큼 대범한 사람이라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다.

거기다가 사람을 죽였다는 건데, 살인이라는 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는 게 또 아니라서.

무력 수치도 거의 제로에 가까운 방구석 도련님인 오라버니가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쉽게 한 번에 죽일 수 있다는 말인 건지.

이번 일에는 아무래도 수상한 포인트가 너무 많다.

라이언이 떠난 곳에서 우리는 외부로 이어지는 문 주변을 살폈다.

옆에 놓인 건 끊어진 로프. 그리고 찢어진 옷가지는 분명 왕실에 납품되는 천으로 만든 게 맞다.

현장 주변을 두루 살펴보며 나는 한 가지를 확신했다.

“누군가가 여기에 갇혀 있다가 탈출한 것 같아.”

“그렇다면…….”

“애초에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국왕의 사자가 왔는데 안주인만 나서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고.”

국왕이 직접 수색 명령을 내렸다는 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건지.

레반클로 부인은 산책이라도 하다 잠깐 얼굴을 내민 것처럼 예를 차리지 않았다.

아직 특별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간파하는 눈은 이미 써 버렸으니, 남은 건 이 방법뿐이다.

나는 병사들을 불러서 한 가지를 지시했다.

“세 시간이 지나도 내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 지시대로 움직이도록 해.”

나는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었다. 그러고는 바깥에 움츠리고 선 50명 정도의 노예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남자 노예치고는 힘이 없고 왜소한 체격이거나, 아니면 여자들만 있었다. 건장한 노예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머지는 어디에 있나요?”

“아래에서 쉬고 있지 않을까요? 지금 시간을 생각해 주셔야죠.”

굳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기 위해 하는 말이기에 고까운 말투는 일부러 무시했다.

저쪽도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나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지난번 견학 때는 무방비한 상태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두 벽으로 갇혀 있었다.

그렇다면 열리는 구조가 있을 텐데. 나는 벽을 짚은 채 화제를 돌렸다.

“아저씨를 왜 죽였을까 고민해 봤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안내역을 맡은 레반클로 부인과 지하로 내려가며 나는 주변을 세심히 살펴보았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랑 관련이 있는 건지는 좀 더 지켜봐야죠.”

그날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더듬으며 나는 지하의 벽을 짚어 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부인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벽면이 더럽습니다. 무서우신 거라면 손을 잡아 드리죠.”

“괜찮아요.”

이런 호의를 베풀 사람이 아닌데 과한 친절은 오히려 수상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손을 피해 벽을 짚는 순간 무언가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레반클로의 마님께서 감히 말릴 틈도 없이 나는 힘껏 버튼을 눌렀다.

“그렇죠. 이건 원래 이런 모습이었는데.”

버튼이 눌리자 내부에서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렸다.

숨겨진 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통로가 나타나고, 저택의 지하는 어느새 하나의 요새로 탈바꿈했다.

“여기로 들어가도 되죠?”

얄미운 내 물음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시죠.”

힐끔 천장 쪽을 바라보고서 나는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갔다.

* * *

“정신 좀 차려봐요. 빌어먹을.”

슈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제 몸보다 훨씬 큰 빌헬름 왕자를 부축했다.

쿵, 쿵.

발소리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러다가는 우리의 위치를 들킬지도 모른다.

슈덴은 어쩔 수 없이 어둠 속에 왕자를 내려놓고 몸을 숨겼다.

“이 새끼가 감히 탈출을 해?”

저택 뒤에는 쓸모없는 자그마한 산이 있다. 그곳만 넘어가면 관공서가 나오니 거기까지만 데려다주려고 한 것뿐이었는데.

뒤따라온 노예의 숫자들만 백 명 남짓. 걸리면 왕자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은 이 왕국에 대한 엄청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아니, 증오를 품는 건 슈덴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방식은 곤란했다.

‘설마 왕자의 짓으로 위장해 불을 지르다니.’

아스타로테가 일하던 빵집에 불을 지른 것은 슈덴의 눈에도 가장 악질이었다.

자신들을 건드린 것의 보복이라는 점을 일부러 보여 주려는 것처럼, 부인의 지시를 받은 이들은 일부러 왕자의 인상착의를 흉내 낸 후 상점가에 불을 질렀다

다음은 아스타로테를 데려왔던 건설업자 차례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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