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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58)화 (58/123)
  • 제58화

    그렇게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열쇠 제작실로 향했다.

    “이쪽입니다.”

    슬슬 조금 무서워지지만 나는 라이언의 손을 꼭 잡았다.

    “여차하면 얘네가 도와줄 테니까.”

    내부는 굉장히 깊숙하고도 은밀한 구조로, 여러 갈래의 길이 뻗어 있다.

    마치 하나의 요새를 준비한 것처럼. 굳이 북부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수도 안에 이런 시설을 지어 놓은 건 명백한 불법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저기란다.”

    지하 어귀에 들어온 후에야 우리는 겨우 오라버니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에는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는 두건까지 두르고 있었다.

    무슨 반도체 공정을 하듯 열쇠를 깎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정말 이상해졌다.

    “그리고 저 사람이 레모스야. 훌륭한 열쇠 장인이지.”

    여자가 아닐까 상상했던 내 추측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엄청나게 남자답고 뛰어난 근육을 드러낸 모습은 미녀라기보다는 오히려 폐하를 떠올리게 했다.

    ‘오라버니는 왜 저 사람을 그렇게 따르는 걸까?’

    “잘하셨습니다. 확실히 실력이 느셨군요.”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하나를 완성한 후 레모스는 오라버니에게 칭찬해 주었다. 오라버니는 그 말을 듣고 무척이나 기쁜 듯 웃었다.

    “실은 며칠 전에 동생에게 핀잔을 좀 들어서요.”

    어라, 갑자기 내 얘기가 나왔다.

    나는 얌전히 오라버니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그 애는 눈에 띄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여러 분란을 일으키고 다니는 게 몸에 밴 것 같아서요.”

    “아직 어리다면 그럴 수 있지요.”

    “어째서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는 걸까요.”

    순간 욱해서 뛰쳐나갈 뻔한 걸 라이언이 겨우 말려 줬다.

    ‘아니, 왜 말을 저렇게 해!’

    “당신이 무조건 옳습니다. 싸움은 무의미하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일이 가장 정당합니다.”

    “레모스 님.”

    “그러니 내 말을 믿도록 하세요.”

    뭔가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지만, 개소리라는 건 확실한데.

    오라버니가 듣기에는 마음에 드는 건지 그걸 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열받아, 짜증 나!’

    ‘설마 네 얘기니?’

    손님마저도 붉으락푸르락하는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는데 저쪽은 한없이 진지하게 오라버니 편만 들어주고 있다.

    주거니 받거니 신이 난 대화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가 절 너무나 힘들게 해요.”

    “그런 가족은 버리세요. 이제는 우리가 있으니까요.”

    열쇠 제작의 현장은 어째서인지 열쇠를 만든다기보다는 오라버니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에 가까워 보였다.

    “이만 올라가자꾸나.”

    계단을 오르며 손님은 내 어깨를 두드려 줬다.

    “아버님께서 걱정하신다는 이유는 이해가 가는구나.”

    “우리 오빠가 좀 저래요. 소심하고, 자기 할 말도 잘 못 하고.”

    “세상에는 원래 다양한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지상에 다시 올라온 후 우리는 공방에서 만들었다는 아름다운 열쇠와 자물쇠들을 관람했다.

    “기술이 진짜 대단하긴 하네요.”

    “대부분 스승인 레모스가 만든 거란다. 제자들이 만든 건 저기에 있고.”

    상대적으로 조잡한 수준에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점까지, 나는 너무나도 쉽게 빌헬름 오라버니가 만든 자물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되게 못 만드네요.”

    “장인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

    이 고생을 하는 거면 잘하기라도 할 것이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오늘은 일단 물러나야 한다.

    “기념품으로 하나 사 가고 싶은데 이거 가져가도 되나요?”

    “돈 받을 만한 물건이 아니니까 그냥 가져가셔도 됩니다.”

    이런 처우를 받고 있다는 걸 오라버니가 알기는 할까.

    그렇게 우리는 자칭 기념품이라고 하는 자물쇠를 가지고서 나란히 공방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요즘에 저런 험한 일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곱상한 젊은이가 참 대단하긴 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어른들은 바보다.

    우리조차 이렇게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걸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고 아닌 척하는 게 답답하다.

    “하긴, 나도 네 오빠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단다. 매일 저렇게 힘들게 일하고 한 푼도 못 받아 가는데.”

    “돈도 안 줘요?”

    “자물쇠가 안 팔리니까. 팔려야 돈을 받지.”

    그러면서도 허드렛일은 다 해야 하고. 소질이 없는 학생을 억지로 잡아 두는 데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다.

    “오늘은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와 라이언은 손님 앞에 나란히 90도로 인사를 드렸다.

    “별말씀을. 지난번에 카이 그 친구가 내 서류를 봐 준 적이 있는데, 그 빚을 이렇게 갚는 셈이지.”

    “아!”

    “그럼 다음에 또 빵집에서 보자꾸나.”

    그런 거였구나!

    역시, 손님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렇게까지 우리를 도와줄 리가 없었다.

    “저 손님까지 카이 선생님의 인맥이었을 줄이야.”

    “세상 좁다. 진짜로.”

    정말로 바늘 하나 차이로도 이번 퀘스트 역시 실패할 뻔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곧 견학을 마친 우리를 데리러 카이 선생님이 직접 나왔다.

    “볼일은 모두 마치셨습니까?”

    “카이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오라버니가 누구와 만나는지, 무슨 일에 휘말린 건지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차마 제 입으로 폐하께 말씀을 올릴 수는 없으니까요.”

    자칫 플로리아의 동생을 곤란하게 만들어 왕위에 욕심을 낸다는 오해를 산다면 그게 제일 곤란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말씀드려야 한다.

    [(완료)빌헬름이 일하는 곳을 뒷조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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