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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51)화 (51/123)

제51화

“궁 안에서 독이라니. 어찌 그런 끔찍한 짓을…….”

빌헬름 오라버니는 놀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제야 사정을 이해한 시녀들은 깜짝 놀라 나의 안부를 살폈다.

“미리 알아차렸으니 괜찮아요. 저건 저 애 혼자 한 짓이니까요.”

행여나 다른 포로들이 모조리 처형당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필사적인 내 모습에 오라버니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당장 내일 국무회의에서 노예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겁니다.”

또다시 일어난 폭동 소식에 폐하는 원래 정해진 안건인 카지노 문제도 미루고 대책을 알아보고 있었다.

“아스타로테가 빨리 간파해서 다행이야.”

“그건…….”

높아진 통찰력 덕분이겠지만.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었던 라이언은 행여 내가 놓쳤더라도 실마리를 잡아냈을 터.

“폐하께 말씀 올리도록 해.”

한발 먼저 전령을 보내고 나와 라이언 단둘이 남았다.

손끝이 차갑게 식은 채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슈덴과 관련될 때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이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나쁜 놈.”

그런 내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라이언이 물었다.

“어떻게 저자가 독을 쓸 거라는 걸 알았어?”

“그거야 당연히…….”

왕실 사람들을 죽일 기회만 호시탐탐 보고 있었으니까. 슈덴은 이미 지난 회차에서 내 차에 독을 탔던 전과가 있다.

물론 독 조절에 미숙한 나머지 죽을 만큼 아프고 끝나긴 했지만.

“수상하잖아.”

“내 눈에는 네가 더 수상한데.”

“응?”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뒷걸음치는 내게 성큼 다가온 라이언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난히 저자에게 가시를 세웠던 것도 그렇고.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그건…….”

“저자를 좋아해?”

라이언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그런 거 아닌데!”

물론 슈덴에게 감정이 남은 것도 맞고 그에게 관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했다가는 어쩐지 라이언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평소의 여유 넘치던 아스타가 아닌 것 같아서 그렇지. 너는 원래 이렇게까지 흥분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뭘 흥분했다고 그래!”

말을 하다 보니 진짜 흥분하긴 했구나.

대놓고 수상하게 여기는 라이언을 앞에 두고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뭐라고 변명을 하면 좋을까. 아, 딱히 좋은 게 떠오르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말을 하려던 차에 전령이 도착했다.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역시 우리 폐하!

[국왕의 가호]가 최고다.

“어서 가자.”

“…….”

대놓고 낌새챈 것 같은 라이언을 달래기 위해 나는 기꺼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응? 어서.”

먼저 두 번이나 권했는데, 라이언은 어쩐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 녀석에게는 진심이었어?”

“진심은 무슨 진심?”

진심으로 화가 났다면 모를까. 남은 건 원한뿐. 게다가 그 애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뒤통수를 친 전적이 있다.

나와 별개로 라이언까지 그런 꼴을 당하는 건 싫다.

“혹시라도 너한테 못되게 굴까 봐 그랬던 거지.”

“……날 걱정한 거라고?”

“그게 아니면 다른 관심이 갈 이유가 있어?”

황당하다는 듯 되묻는 내 말에 라이언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거야 그렇지.”

“혹시 질투하는 거야?”

장난스레 물어보는 내 말에 라이언은 시선을 피했다.

“응? 말 좀 해 봐.”

“어서 가자.”

계속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고, 이젠 라이언이 앞장을 선 채 걸어 나갔다.

그러면서도 맞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 * *

아무래도 사태가 심각해진 것 같다.

“세 시간 전, 북부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건물에 불을 지르고 약탈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다쳤고 건물이 두 채나 불탔다.

사망자가 열 명이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폐하는 심각한 얼굴로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범인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집단으로 탈출한 탓에…… 절반 정도는 검거했습니다만 나머지 절반은 아무래도 다른 노예들이 숨겨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정식으로 하인을 고용할 돈을 아끼기 위해 노예를 부리는 저택이 적지 않다. 규모가 클수록 수상한 사람이 숨어든다 해도 알아낼 길이 없다.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회의에 참석한 귀족들의 반응도 더욱 격해졌다.

“과인도 더는 이들을 용서할 수는 없음이야.”

“폐하.”

“근본이 어찌 변할까. 저들을 어떻게든 품어 보려 했던 내가 어리석었던 거지.”

자조적인 폐하의 목소리에 큰 슬픔이 배었다. 나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전에는 폐하나 다른 어른들이 북부 노예들 문제에 유독 엄격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저들이 세력화되면 또다시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모두가 긴장한 게 공기로도 느껴졌다.

“참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북쪽에서 이어지는 도발에 수없이 많은 백성이 억울한 괴롭힘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국왕 폐하는 자신의 친동생인, 그러니까 우리 아빠 할슈타인 대공을 선봉에 세워 토벌까지 보냈다.

“더 강경하게 나가셔야 합니다. 이참에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노예랑은 별로 상관이 없는 건지 몽펠리에 후작이 제일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조정의 세력은 또다시 여럿으로 나뉘었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일부입니다. 저들을 색출해 엄격하게 처벌하는 정도로 마무리하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번 기회에 사고를 일으키는 놈들을 싹 다 정리해 버려야지요. 언제 어디에서 또 무리를 만들어 기어 나올 줄 안답니까?”

이번 기회에 아예 싹 다 추방하자며 몽펠리에 후작은 언성을 높였다.

“저들 역시 살자고 하는 짓인 것을요. 목숨은 귀하니 말입니다.”

대놓고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그린왈드 후작은 자신의 영지에 엄청난 규모의 농장과 염전을 가지고 있다.

노예를 마구 부려 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노예들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고. 노예를 안 부리는 사람들은 그냥 다 죽여 버리라고 하고.

현대적 관점에서는 둘 다 말이 안 되지만, 이 시대에서는 그게 어쩔 수 없는 룰인 셈이다.

다들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나는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라이언이 나섰다.

“결국은 처음에 논의하던 문제로 돌아오게 되는군요.”

노예를 재산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으로 볼 것인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명제를 두고 라이언이 입을 열었다.

“우리 곁에는 아직 과거의 상처조차 회복되지 않은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섣부른 결정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걸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라나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폐하가 직접 말하기가 뭣하니 라이언이 대신 말해 주는 셈이다. 그리고 드디어 내 머리 위에 새 퀘스트가 떴다.

[(new)메인 퀘스트 ― 왕의 자격 Ⅲ]

달성 조건 : 서브 퀘스트 전체 클리어

[판단력] 75 이상

제한 시간 : 364일 23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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