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이른바 거울 요법.
네가 하는 짓이 얼마나 얄밉고 짜증 나는지는 본인이 직접 당해 봐야 안다.
“저는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는 반대야. 물론 이대로 두면 북부 출신 전체가 피해를 보겠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싫어하는데 억지로 데려갈 필요는 없잖아.”
일부러 장작을 열심히 던져 넣는 내 성화에 라이언은 잠시 고민한 후 슈덴에게 직접 사과했다.
“싫었던 거라면 사과하지.”
“아니, 저는…….”
차라리 머리채를 잡고 싸우면 모를까. 이렇게 되면 본인이 제일 우울해진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는 슈덴을 좀 더 궁지로 몰아 보기로 했다.
“라이언 곁에 계속 붙어 있다니. 나도 그렇게 못 하는데, 상상도 하기 싫어. 라이언은 내 거란 말이야.”
“너무 그러지 마. 나는 언제까지나 아스타의 편인걸.”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슈덴은 점점 더 궁지에 몰렸다.
“너는 그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단다. 어찌하고 싶으냐?”
인자한 스승의 물음에 슈덴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여기에 남는다면 스승마저 휘말리게 만들 거고, 떠나면 도적질을 멈춰야 한다.
함정에 빠진 슈덴은 원망을 가득 안은 채 내 쪽을 매섭게 노려봤다.
“따라가겠습니다.”
우연한 만남은 때로는 생각지 못한 형태로 발전한다.
이마에 난 혹에 반창고를 붙이고서 나는 나란히 걷고 있는 라이언과 슈덴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건 분명 우리 둘의 데이트였을 텐데.’
라이언은 슈덴에게 이런저런 사항들을 물어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단 말이지.”
“북부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군요.”
“지난 전쟁에 대해서는 많이 조사했으니까. 당시의 문제들이 지금까지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세심하게 살펴볼까 해.”
대체 뭐가 저리도 재밌는 걸까.
“……둘이 아주 죽이 잘 맞네.”
완전히 뒤로 떨어진 채 나는 실컷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봤다.
솔직히 부럽지 않다.
자기들끼리 떠드는데, 하나도 안 부럽다.
하지만 이건 우리 데이트잖아!
“아스타는 이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둘이 실컷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라이언이 내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나는 태연히 대답했다.
“억지로 호칭만 바꾸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결국은 말장난일 뿐이라,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테니까.”
“조정에서 나온 조정안은 사실상 노예라는 말만 쓰지 말라는 것뿐이라서 말이야.”
“정 그럴 거라면 관습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눈 가리고 아웅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과연.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겠네.”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정의 의견이 둘로 갈렸다.
진짜 노예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라이언과, 용어만 슬쩍 바꾸자는 몽펠리에 후작까지.
“귀족들의 의견은 팽팽히 맞서고 있긴 한데, 최근 무력시위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는 중이야.”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민심이 나빠지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테니까.”
국정 운영에 대해서 이해가 높아지며 우리는 그래도 제법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슈덴은 그런 내 모습을 진지하게 살펴봤다.
“날 왜 그렇게 쳐다봐?”
“아무것도 아닙니다.”
슈덴이 반란군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모를 때도 이런 논의가 오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행여나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 늘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이제는 아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모르는 채, 그는 모든 문제가 나 때문에 일어났다며 혼자 원망하고. 증오하다 결국 사랑의 도피를 떠난 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를 죽였다.
‘개자식.’
죽을 거면 혼자 죽을 것이지. 몽펠리에와 아주 오랫동안 교류하며 사사건건 모든 일을 방해해 온 게 이놈인 걸 아는데.
다 알면서 적개심을 숨기는 건 쉽지 않다. 나는 슬그머니 라이언에게 팔짱을 끼고서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왜 그래?”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자 슈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건 내가 아닌 라이언이니까. 만약 저러다가 혼자 또 오해해서는, 이번에는 라이언에게 내게 했던 짓을 그대로 할지도 모른다.
“왜 그러긴. 좋아하니까 그러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꺼낸 말이었는데 효과는 굉장했다.
“응?”
“자꾸 정무 이야기만 하고, 재미없게.”
일부러 슈덴 앞에서 오버해서 꺼낸 말이긴 한데, 어쩐지 라이언은 활짝 웃으며 진심으로 좋아하는 티를 숨기지 못했다.
“미안해.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데이트라 기대했단 말이야. 그동안 너무 못 만나서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데.”
뾰로통한 티까지 내자 라이언은 입을 막고서 웃음을 참느라 애가 달았다.
“진심으로 기쁜걸.”
좋아하는 연기를 어쩌면 저리도 찰지게 하는지.
이번 기회에 우리가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보여 줘야 한다.
나는 라이언의 곁에 꼭 붙어선 채 슈덴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네가 없는 하루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널 만나고 알게 됐는걸.”
그냥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지난 회차에서 나는 진심으로 슈덴을 구해 주고 싶었다. 내 손으로 직접 데려왔던 노예, 슈덴은 가족들을 잃고 괴로워하는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 왔다.
다정한 위로 한마디 없이 묵묵하게 곁에 있어 주는 게 그때는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사랑은 그렇게 수동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앗!”
일부러 슬쩍 발을 헛디디기 무섭게 라이언이 손을 뻗어 내 몸을 잡아 주었다.
정말로 날 좋아한다면 이렇게 하는 게 맞다.
넘어져서 다리에 피가 나는 걸 멀뚱멀뚱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역시 난 네 이런 점이 정말 좋아, 라이언.”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걸.”
주거니 받거니. 서로 사이가 좋다는 점을 어마어마하게 어필하며 나는 라이언의 곁에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암, 그렇고말고. 저 녀석을 약 올리기 위해서야 무슨 말인들 못 할까.
“그런 의미에서 나도 선물을 준비했어.”
“응?”
인파가 몰린 구시가지에 들어서기 전 라이언의 명에 집사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어?”
조그마한 주머니 안에서 갑자기 커다란 상자가 튀어나왔다.
“수납 마도구인데, 왜 그렇게 놀라?”
“아, 아니, 그냥.”
인벤토리가 저렇게 구현될 줄은 몰랐지.
“집사에게 필요한 물건은 거의 다 저렇게 보관하고 있어.”
“찻잔도 가지고 있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라고. 새삼 대단해 보이는 집사 아저씨는 리본이 달린 커다란 선물 상자를 내게 건넸다.
“주인님께서 아스타로테 님을 위해 특별히 구한 선물입니다.”
“이게 대체 뭐야?”
백문이 불여일견, 나는 망설임 없이 상자에 묶인 리본을 풀었다.
[(획득)화려한 장식 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