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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35)화 (35/123)

제35화

“후회 같은 거 하지 않아요. 나는……!”

감정이 복받친 플로리아 언니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왕위 계승권도 버릴 수 있어.”

“뭐?”

갑자기 이 무슨 폭탄선언이란 말인가. 내 괴성에 밖에서 기다리던 시녀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아스타로테 님, 괜찮으세요!”

“무슨 일입니까!”

“바, 바퀴벌레!”

반사적으로 꺼낼 수 있는 유일한 핑계가 저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공주님! 어머, 얼마나 놀라셨으면 눈물까지 흘리셨을까요.”

바 선생 핑계는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이것들 좀 가져다줄래?”

대충 핑계를 대 시녀들을 다시 밖으로 물러나게 했다.

진짜든 아니든 일단 언니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이상 그냥 넘길 수는 없다.

나는 가슴을 두드리며 언니에게 되물었다.

“진심이야?”

왕족에게 왕위 계승권 포기란 사실상 왕족임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왕위 계승권이 없는 왕족이란 끈 떨어진 연, 치즈 빠진 피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평민보다 못한 신세가 된다.

그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을 플로리아 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받아쳤다.

“할슈타인 대공께서도 포기하셨는걸.”

“그거야!”

엄마와 아빠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왕실은 물론 나라 전체가 두 분의 결혼을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결혼할 거면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라는 협박이 들어왔을 때 아빠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내던졌다.

하지만 아빠와 언니는 애초에 사정이 다르다.

앓아누운 언니를 두고 나는 라이언과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애초에 언니가 내려갈 필요가 뭐가 있어. 그 사람이 올라오면 될 걸.”

“그래서?”

“방법이야 쉽지. 빈민가가 더 이상 빈민가가 아니라면, 카이가 더는 자신의 출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니까!”

“그게 그렇게 쉬울까.”

그렇다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

모든 퀘스트에는 의미가 있고, 그걸 해결해 나가며 나는 분명 더 나아질 테니까.

이 게임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대전제는 그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고된 일이 되겠지.”

“그래서 난 네 도움이 필요한 거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내가 가진 밑천은 모두 보여 줬으니 이제 선택은 저 애의 몫이다.

필사적인 내 모습을 힐끔 바라고서 라이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외면한다면?”

“치사하게 이럴 거야?”

“뭐 그래도 나쁘진 않네. 대전제로 내가 당연히 네 편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미래에 있었던 일을 말하자니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나는 다시 입을 다물고서 괜히 딴소리를 했다.

“내가 너무 귀여워서, 네가 날 좋아하는 줄 알았지.”

“어떻게 알았지. 정답이야.”

“뭐?”

농담으로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라이언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는 아스타로테를 좋아하니까 돕는 거야.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았으면 해.”

“……뭐라는 거야, 정말!”

민망함에 어쩔 줄을 몰라 괴로워하는 나와 달리, 그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하얀 백지 위에 글자들을 채워 나갔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어제 네 말을 듣고 이런 계획을 세워 봤는데.”

“어디 봐 봐, 오!”

“이건 합동 과제니까. 차분하게 준비하면 수업에서도 분명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대단해, 넌 진짜 천재인 것 같아!”

라이언이 써 준 키워드를 중심으로 계획을 써 나가자 백지였던 히든 퀘스트에도 조금씩 조건들이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히든 퀘스트 ― 빈민촌 부흥]

달성 조건 ― 우수한 거래처 연결

운영을 도와줄 귀족 연결

제품 업그레이드

모조품 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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