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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33)화 (33/123)
  • 제33화

    플로리아 언니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카이가 외쳤다.

    “이곳은 여러분이 사는 예쁜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바닥입니다.”

    “하지만, 카이. 나는…….”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하지만 하지 마십시오.”

    완강한 거부에 언니는 이내 입을 달싹이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잠자코 바라봤다.

    ‘이것 봐라.’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공주, 한 사람은 더러운 빈민촌 출신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이제는 국왕의 명을 받아 왕실 가족들을 가르치지만, 카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결국 그는 일개 시중인일 뿐.

    저 하늘의 별은 결코 손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카이는 일방적으로 플로리아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게 원래의 시나리오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언니가 자기를 포기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꾸민 일이란 거다.

    “저기,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

    두 사람의 아련한 공기를 깨고 나는 과감하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말입니까?”

    “여기 사람들은 뭘 먹고살아요?”

    “그건…….”

    “좋은 질문이로구나.”

    어느새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할아버지가 우리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어째서 그런 궁금증이 생긴 거지?”

    “다들 힘들어 보이긴 하는데, 정말로 저 정도라면 여기는 진작 망했을 것 같아서요.”

    “망했을 거라고?”

    “입구는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었잖아요. 매일 이렇게 물품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지금의 이 풍경은 좀 어색해요.”

    마치 일부러 짜 맞춘 것처럼 불쌍한 사람을 연기한다고 해야 할지.

    정곡을 찌르는 내 말에 할아버지는 또다시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래. 평소에 우리는 이런 걸 만들고 있단다.”

    “이건……!”

    생각보다 정교하게 깎은 나무토막에 색이 칠해진 건 분명 장난감계의 명품이라고 불리는 피오니 블룸의 아기 토끼 시리즈다.

    “귀여워!”

    아기 토끼 인형은 물론 가구와 집 모형까지. 방대한 컬렉션을 모두 구입하기 위해서는 성 한 채 값을 들여도 부족하다는 말을 듣는 고급 장난감이다.

    “이걸 여기서 만드는 거예요?”

    “손을 다칠지도 모르는 험한 일이니까. 어차피 나무로 만든 싸구려지만 그래도 그걸 제법 많이 사 가 준 덕분에 우리도 먹고살 수는 있지.”

    “이게 싸구려라니, 말도 안 돼.”

    처음에는 대충 흉내를 내서 만든 모조품인 줄 알았는데 아래에는 정품이란 뜻의 봉오리 도장이 정확하게 찍혀 있다.

    “선생님!”

    “정품 맞습니다. 이곳에서 생산한다는 건 비밀로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게 정말이에요?”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카이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체 왜 저렇게 무심한 걸까. 촌장은 내 반응에 놀란 듯 연신 물었다.

    “우리가 만든 인형을 좋아하나 보구나?”

    “좋아하는 정도겠어요? 매번 뽑기로만 파니까, 잠자는 토끼 시리즈 3번 테이블이 하도 안 나와서 포기했을 정도라고요.”

    피오니 블룸은 예쁜 디자인만큼이나 악랄한 판매 방식으로 이름이 높다.

    집 꾸미기 세트에 들어가는 물품은 뽑기로 사야 하는데, 그 안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3번 테이블이라. 잠깐만 기다려 보려무나.”

    촌장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구석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몇몇 버려진 환자들을 지나치는 촌장을 따라간 곳에는 사람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3번이라면 여기에 많습니다.”

    “다행이로구나. 이걸 선물로 주마.”

    “우와아…….”

    몇 년을 모아도 나오지 않던 걸 이렇게 손쉽게 얻게 될 줄이야.

    나는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얼마쯤 해요?”

    “지난번에는 백 개에 사과를 세 바구니 받았지.”

    “……백 개라고요?”

    “대체 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대놓고 언짢은 카이 선생님을 앞에 두고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밖에서는 이거 하나면 사과 한 바구니는 받을 수 있어요.”

    “농담도 잘 하십니다.”

    “아니야, 진짜라니까요!”

    피오니 블룸의 악랄한 명성은 안 그래도 뽑기 어려운 확률과 더불어 비싼 가격 책정에 있다.

    “그거야 아무도 빈민촌에서 만든 거란 사실을 모르니 가능한 일이겠지요. 원하는 걸 얻으셨다면, 이만 돌아갔으면 합니다.”

    “하지만!”

    뭐라고 항변할 새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쫓겨나고 말았다.

    * * *

    “억울해. 이대로 돌아가는 건 너무 억울해.”

    피오니 블룸의 귀한 장난감이 고작 그 값밖에 받지 못할 줄이야.

    이를 바득바득 가는 날 보며 라이언이 물었다.

    “이대로 포기할 거야?”

    “아니. 절대로 포기 안 해.”

    나는 곧장 폐하에게로 달려갔다.

    “마음을 정했어요. 이번 수업 과제는 이걸로 할래요!”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new)히든 퀘스트 ― 빈민촌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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