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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31)화 (31/123)

제31화

“언니는 제가 맡을게요!”

오늘은 공식 시찰이기에 언니도 나도 외출용 드레스를 입었다.

나는 밤하늘을 닮은 네이비색 드레스를 골랐다.

그리고 언니는 오랜 고민 끝에 녹색 드레스를 골랐다.

“아스타, 나 안 이상해?”

“정말 예쁜데. 내가 남자였다면, 언니한테 첫눈에 반했을 것 같아.”

어색한 옷차림을 신경 쓰는 언니의 걱정이 새삼스럽다.

평소라면 금세 호감도가 올랐을 텐데, 어쩐지 언니는 쉽사리 웃지 못한 채 내 머리만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정말 그랬다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온실에서의 그 다툼은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 같다.

언니는 어떻게든 말을 걸어 보려고 하고 있지만 카이는 다른 일로 바쁜 척하며 요리조리 잘도 피해 나갔다.

“이만 출발하시죠.”

저러지 말고 언니의 마음을 좀 받아 주면 좋을 텐데.

나는 라이언의 얼굴을 힐끔 보고서 뻔뻔스럽게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라이언, 우리 손 잡자.”

“음?”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 이렇게 해야 해요.”

어린이의 특권은 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뻔뻔하게 굴어도 된다는 점이다.

나는 라이언의 손을 꼭 잡고서 보란 듯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지 않으면 친구랑 손을 잡고 다니라고 했어요. 안 그래, 라이언?”

“맞아. 나도 그렇게 배웠어.”

“이런 건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는 건데 선생님이 이러면 어떡해요?”

얼굴에 티타늄 철판을 깔고서 나는 뻔뻔스럽게 어린이의 특권을 활용했다.

두 사람 다 너무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언니는 내심 좋은지 입을 다물어 버리고, 카이는 빈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서 내게 말했다.

“저는 어른이라 이렇게 하고 다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공주님이 길을 잃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요?”

플로리아 언니는 왕궁 안에서도 소문난 길치였다.

그런 언니를 만약 궁 밖에서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당연히 카이의 책임이 된다.

그것이, 인솔자니까.

“대신 제가 플로리아 언니의 손을 잡을게요. 그러면 된 거죠?”

우리 모두 사이좋게. 손을 잡으면 되는 거라고.

햇볕정책의 결과 카이 아펠바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언니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러면 되는 겁니까.”

“응. 잠시만요, 가방이 어디 있더라!”

언니 손을 잡게 하고서 나는 딴청을 부리며 볼일이 있는 척 슬그머니 언니의 손을 놨다.

그렇게 카이와 플로리아 언니만 손을 잡은 채 남았다.

“아스타, 너무 서두르지 말렴.”

“응, 언니!”

얼마나 좋으면 저러는 건지, 솔직히 조금 속 보이는 언니의 말에 웃음이 터질 것 같지만 애써 참기로 했다.

“설마 일부러 이러시는 겁니까?”

그걸 이제 알다니. 어쩌면 저리 둔할까.

솔직히 플로리아 언니가 100만 배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언니를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같은 실수는 절대 반복해선 안 된다.

* * *

플로리아와 카이 커플을 보며 나는 늘 동화 신데렐라를 떠올리곤 했다.

[신데렐라는 그렇게 왕자님의 선택을 받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동화를 읽으며 문득 생각하곤 했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어째서 신데렐라는 왕자님의 손을 잡은 건지, 왕자님은 왜 신데렐라를 택한 건지.

첫눈에 반했다는 이유 같은 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 핍박받던 신데렐라에게 필요한 건 탈출구였다.

최악의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다리,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는다던 그 집에는 희망 따위 없었으니까.

탈출하지 않으면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할 개미지옥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모든 걸 가진 왕자님은, 그런 신데렐라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절실함을 봤을 것이다.

“지금부터 가게 될 곳은, 수도 북부에 위치한 빈민촌입니다.”

국왕이 살고 있는 도시라고 해도 어두운 면모는 존재한다.

만약 억지로 없애거나 밀어 버리게 되면 더더욱 나라에서 관리하는 게 어려워지니까.

폐하는 어쩔 수 없이 따로 구역을 만들어 그들을 그곳에 살게 했다.

“폐하께서는 차별 없이 대우하라는 칙령을 내리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빈민들을 꺼려 합니다.”

“빈민이 생기는 이유부터 알고 싶습니다.”

호감도가 깎일까 봐 차마 하지 못한 질문을 라이언이 대신 해 줬다.

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직접 보시면 알 겁니다. 왕실에서 자란 귀한 분들께 보여 드려도 될 풍경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자조적인 그의 말투에는 불만과 비난이 섞여 있다.

날카로운 그 말을 듣고도 언니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래도 보고 싶어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폐하의 명이시니 저는 그것을 따를 뿐입니다.”

한없이 삐딱한 카이의 태도에 언니도 덩달아 주눅이 들고 마차 안의 공기는 한없이 살벌해졌다.

과연 비공식 인기 투표 꼴찌.

비호감 1위. 마이너.

모두가 인정하는 비인기 캐릭터.

팬덤 순위 최하에 빛나는 이유는 당연히 저런 배배 꼬인 말투도 한몫한다.

“그래요. 폐하의 명령이니까 따르셔야죠?”

“……예, 뭐.”

떨떠름한 그에게는 오히려 이런 공격이 더 잘 먹힌다.

“저희한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부 카이 선생님 책임이 될 테니까요. 안 그래, 라이언?”

“저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카이 선생님뿐이라, 폐하께 일부러 부탁드린 거니까요.”

쿵짝이 잘 맞는 라이언은 이제 말을 맞추지 않아도 내 의도를 금세 파악하고 따라와 준다.

우리가 손을 잡은 채 서로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카이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긴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아프군요.”

“아파요? 약을 준비하라고 할게요.”

거기에 플로리아 언니까지.

배배 꼬인 말투로 시비를 걸어도 순수한 언니는 그 말을 모두 곧이곧대로 듣는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픈 건…….”

“아프지 않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확실하게 그런 게 아니라고 확답을 주고 난 후에야 플로리아 언니는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러고는 평소와 달리 대놓고 풀이 죽어 고개를 떨궜다.

“죄송해요. 당신에게 너무 큰 폐를 끼친 것 같아요.”

“공주님께서는 어째서…….”

“네?”

카이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뒤의 얘기를 좀 더 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까워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차갑게 정색하고서 다시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회색빛으로 변하며 공기가 탁해졌다.

“이 이후로는 마차가 달리기 어려우니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도의 도로는 모두 재정비를 마쳤을 텐데…….”

궁 밖에 거의 나와 본 적이 없던 플로리아 언니는 마차에서 내린 이후 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열악하다, 진짜로.”

우리가 태어나기 전, 폐하는 즉위한 이후로 제일 먼저 도시 정비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빈민촌만은 예외였다.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는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문 채 이 상황을 말없이 지켜봤다.

“저기입니다.”

멀리서 빈민촌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노인은 갑자기 나타난 낯선 손님을 보고도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오만상을 찌푸렸다.

“네놈이 여기는 웬일이냐.”

노인은 등 뒤에 선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카이에게 물었다.

“왕실에 대한 예를 갖추십시오.”

“왕실은 무슨, 이곳에서는 어차피 다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인 것을.”

“무어라!”

국왕의 딸과 조카, 거기에 그라나다 소공작까지.

귀하신 분이 세 명이나 있건만 너무나도 무례한 태도에 호위하던 기사가 버럭 화를 냈다.

“무엄하다. 어서 예를 갖추지 못할까.”

[(new)히든 퀘스트 ― 빈민촌 입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빈민촌 안으로 들어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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