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30)화 (30/123)

제30화

다 닦아 낸 손수건을 집사에게 넘겨주고서 그는 텅 빈 내 잔에 홍차를 더 따라 주었다.

“사랑받고 있구나, 아스타로테.”

“그러면 뭘 해. 연애에는 매번 영 꽝인걸.”

매번 만나는 남자들은 죄다 부도수표이니, 이 정도면 남자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매번 꽝이라.”

“그러니까 내 말은…….”

뭐라고 말을 하다가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쏟아 버린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 이미 뱉은 말은 없던 일로 돌이킬 수 없다.

조각난 단어들을 나열하며 나는 절반의 진실을 말했다.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거야. 뭘 봐도 내가 될 것 같다 싶은 건 망하더라고.”

“뜻밖인걸. 대륙에서 제일 유명한 커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부모님을 뒀으면서.”

“그게 문제야. 한없이 눈만 높아져서 이런 거겠지.”

적절하게 말을 돌리며 나는 괜히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 모습이 영 마뜩잖은 건지 라이언은 다리를 꼬고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물었다.

“그래도 나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저런 소리를 자기 입으로 하는 걸까.

뻔뻔하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니 딱히 토를 달 수는 없다.

이번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비록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지만. 북부의 그라나다는 언제나 몽펠리에의 폭주를 막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그라나다는 명예로운 왕가의 버팀목이니까. 네 도움 역시도 충성심에서 비롯된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정말 그것뿐이라고 생각해?”

어딘지 모르게 잔여물이 남는 듯한 뉘앙스를 덧붙이고서 라이언은 내 잔에 홍차를 더 부어 주었다.

“설탕, 넣을 거야?”

“아니. 지금은 괜찮아.”

홀짝, 홍차를 머금는 소리 외에는 방 안은 한없이 고요하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엔 내 억지를 들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그것도 명예로운 왕가의 버팀목으로서 해야 할 일에 들어가는 거겠지.”

“그러니까 내 말은!”

은근히 얄밉게 말하는 저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는 게 맞다.

매사에 해맑기만 한 미나와 달리 이 애는 때때로 꼭 자아를 가진 진짜 사람 같다.

“너라서 다행이라고.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나라서 다행이라.”

“이게 진짜!”

쿠션을 들고 달려들어 보지만 아무리 검술을 익혔다고 해도 무력으로 이기는 건 무리다.

“핑계가 필요해. 두 사람이 억지로라도 붙어 있을 만한 핑계가.”

“함께 외출이라도 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외출?”

“우리가 나갈 때 보호자로 붙인다든가.”

“보호자라.”

나쁜 일에만 잘 돌아가는 내 머리는 오늘도 팽팽 돌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뭔가 좋은 핑계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 폐하의 시종이 우리를 찾아왔다.

“국무회의에 참석하시라는 어명입니다.”

* * *

국무회의.

국왕이 있다고 해도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각 분야를 담당한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 나라 운영의 방향을 정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국무회의다.

당연히 저 전문가들은 모두 귀족이어야 하지만 나라가 커질수록 담당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폐하는 실무자들에게도 작위를 제법 부여했다.

그렇게 일명 ‘이름만’ 귀족인 사람도 늘어 갔다.

카이 역시 그중 하나였다.

“허흠.”

괜히 헛기침하며 주변에 눈치를 주는 모습만 봐도 저 사람이 ‘진짜 귀족’인지 ‘이름만’인지는 금방 구분이 간다.

“우리 눈에 보일 정도라니. 진짜 대단하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폐하께서 드셨습니다.”

옹기종기 앉은 우리를 앉혀 두고서 폐하는 보란 듯이 외쳤다.

“지난번, 사냥 대회 우승을 계기로 과인은 이 아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오. 오늘부터 두 사람에게 법안에 대해 가르치려 함이니 당분간 동행하더라도 너무 괘념치 마오.”

한 줄로 요약하면 애들이 여기 있어도 기분 나빠 하지 말란 말이다.

[(new)서브 퀘스트 – 국무회의 법안 발의]

법안 하나를 골라 개선 과제를 제출하시오.

제한 시간 :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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