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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22)화 (22/123)
  • 제22화

    “히이이익!”

    죽어 버린 곰 시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라이언은 태연하게 죽은 곰의 옆구리를 툭툭 발로 찼다.

    “……아무도 도와준 사람은 없으니까. 이러면 된 거지?”

    라이언의 말에 나는 눈앞의 화면을 살폈다.

    반짝이는 이펙트만 봐도 퀘스트는 분명 성공했다.

    “그러게, 성공했어.”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며 라이언은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도 제법 쓸 만하다고 했잖아.”

    “제법 수준이 아니잖아!”

    라이언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와락 그 애를 부둥켜안았다.

    어째서일까. 눈에서 왈칵 눈물까지 흘러내렸다.

    “라이언. 라이언!”

    “정말 고생 많았어, 아스타.”

    손에 박인 굳은살을 어루만져 주며 라이언은 몇 번이고 내 등을 토닥여 줬다.

    “해냈어. 진짜 해낸 거야!”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완전 못난 얼굴을 한 채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아스타!!!”

    그리고 곧 우리의 위치를 포착한 폐하가 저 멀리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잔뜩 화가 난 폐하를 마주하고서야 우리는 그제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저, 그게요.”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국왕 폐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거기다 이 커다란 곰까지.

    완전히 으슥한 곳에 있는 건 물론 국왕의 가호까지 벗어나 버렸으니까.

    여기서 대답 한마디만 잘못하면 기존에 쌓인 호감도고 뭐고 전부 사라지게 된다.

    “폐하, 이건…….”

    내가 뭐라고 하기 전 라이언이 한발 먼저 선수를 쳤다.

    “호위 기사 중 암살자가 숨어든 정황을 파악했습니다.”

    “암살자라고?”

    “네. 이 검의 주인은 저쪽에 있습니다.”

    아빠를 살해했던 현장에는 암살자의 검 한 자루만이 남았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폐하는 그 검이 암살자의 것임을 알아봤다.

    라이언의 서포트에 나는 폐하의 손을 잡아끌고 날아간 검과 암살자의 시체 쪽을 가리켰다.

    “절 없앨 거라고 했어요. 저 사람을 따돌리다가 곰을 만난 거고요.”

    단호한 내 외침에 폐하는 잠시 신중한 얼굴로 내 손에 든 검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암살자라니.”

    “아스타가 먼저 자리를 벗어나고, 수상한 기사를 쫓아 저희 역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라이언까지 한마디를 거들자 폐하는 디오니스 경 쪽을 바라봤다.

    어차피 우리의 말은 어린애들이라고 제대로 인정받을 수조차 없다.

    그러니 더더욱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본 어른인 그의 한마디가 모든 걸 좌우하게 된다.

    “아이들이 그렇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떻지?”

    만약 디오니스 경이 일부러 내게 해를 끼치려고 한다면, 바로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사실은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해 버리면, 우리 둘 다 분명 엄청난 벌을 받게 될 텐데.

    하지만 ‘지금의’ 디오니스 경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터.

    떨리는 눈동자로 나는 그를 마주했다.

    숨을 꼴깍 삼키며 애절하게 바라본 덕분일까.

    “두 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정말인가?”

    “아스타 님께서 제일 먼저 눈치채시고, 저희가 휘말리지 않도록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장황하지 않게 요점만 간단히.

    단호하게 전하는 그의 말에 폐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단 말이지.”

    디오니스 경 덕분에 이 이상의 추궁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조심했어야지.”

    약간의 책망을 더한 채 폐하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해 주시는 모습이 퍽 좋다.

    나는 폐하의 커다란 손에 머리를 비볐다.

    “폐하가 와 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오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와 주셨잖아요. 역시 폐하가 최고예요.”

    “……귀여운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무한 애교를 부리는 조카 앞에서는 폐하도 방법이 없다.

    “혹시 모를 위협이 있을 수 있으니 꼼꼼하게 확인하거라.”

    폐하가 상황을 수습하는 사이 나는 곧장 디오니스 경에게 달려갔다.

    “괜찮아요?”

    “어찌 그리 무모한 행동을 하셨습니까.”

    키가 작아도 너무 작은 내가 감히 그를 올려다보지 않도록,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내게 화부터 냈다.

    “죄송해요. 사냥감을 빨리 찾고 싶어서…….”

    “그게 아닙니다!”

    폐하 앞에서 편을 들어주긴 했지만, 그는 평소와 달리 진심으로 화를 냈다.

    “그 큰 곰을 앞에 두고 어째서 이런 무모한 짓을 하신 겁니까!”

    폐하는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왜 자기만 두고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그거야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디오니스 경은 내 친구니까요.”

    분명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이었다.

    모 아니면 도, 어차피 같은 곳에 거는 도박이라면, 이번 베팅은 정말로 운이 좋았던 셈이다.

    “앞으로는 더 신중히 행동할게요.”

    “……당신이란 사람은.”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서두른 건 맞다.

    그러니 실망해서 친밀도가 내려가도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의 용기 있는 행동에 기사 디오니스의 호감도가 15 상승합니다!

    기사 디오니스의 호감도 : 60(▲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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