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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5)화 (15/123)

제15화

웃고 있는 폐하의 미소가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저게 진짜 미소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폐하!”

“암. 몰래 숨어든 게 잘한 일은 아니지.”

다들 폐하가 무서워서 태클을 못 걸어서 그렇지, 시녀복 차림만 보아도 내가 왜 궁에 있는지 눈치챘을 거다.

폐하는 한숨을 쉬고서 내 뺨을 꼬집었다.

“이 말썽쟁이 같으니라고.”

“흐에에에, 아하요(아파요)!”

“네 아빠가 알면 난리를 칠 게다.”

몰래 저택을 빠져나온 것도 모자라 라이언을 만나서 이런 짓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쩌면 안 그래도 떨어진 호감도가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다른 스킬이라도 발생한다면?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오늘은 내가 부른 것으로 해 둘 테니 너는 이만 돌아가거라.”

“하지만!”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상태창 어귀에서 [국왕의 가호]가 은은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최소한 내게 해가 될 얘기는 아니란 얘기다.

‘휴우. 그래도 큰일은 피했네.’

사람이 때로는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 거니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폐하 앞에 꾸벅 인사했다.

“폐하만 믿을게요.”

“그래. 과인을 믿어야지.”

그렇게 함께 회의실에서 나가려는데 폐하가 라이언의 어깨를 잡았다.

“소공작은 나랑 얘기 좀 하고.”

“어, 어어, 폐하!”

“남자들끼리 긴밀히 할 이야기란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폐하의 수석 비서관이 마차를 준비했다며 날 데려갔다.

아직 할 얘기가 많은데, 우리는 입술만 달싹이며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잘 되겠지.’

분명 잘 될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음 날.

라이언이 나를 찾아왔다.

“영지로 돌아가게 됐어.”

“정말?”

“폐하께서 내 뜻을 들어주기로 하셨어.”

후견인이 없이도 1년 동안 영지를 문제없이 잘 꾸려 나가면 억지로 후견인을 세우지 않겠다고.

라이언은 그렇게 폐하와 협상을 마쳤다.

“그럼 왕도에는 언제 올 건데?”

“아마 내년 사냥 대회 때나 오지 않을까 싶어.”

“아, 사냥 대회…….”

불현듯 기억이 났다. 아빠가 그때 죽었다는 걸.

매번 막아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무언가가 다르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검술을 열심히 익히고 싶어.”

시험을 통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빠를 구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관문이다.

그런 날 앞에 두고 라이언은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아스타로테, 장차 서로가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네게 부족함 없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

한없이 진중한 얼굴로 라이언은 내 머리에 묶어 놓은 리본을 스르륵 풀어냈다.

“어?”

“이건 내가 가져갈게.”

“그건 왜?”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새틴 리본일 뿐인데, 라이언은 주름 하나 생기지 않게 판판하게 펴서는 제 검 끝에 묶었다.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뭐?”

내 앞머리를 괜히 잔뜩 헝클어트리고서 라이언은 홀가분한 얼굴로 금세 자리를 떠 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애늙은이야!”

“잘 있어. 사랑스러운 아스타로테.”

남들이 다 들으라는 듯 외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도 소리를 질렀다.

“나도 사랑해!”

온 세상 사람들, 알아주세요. 제 짝은 저 애랍니다. 그렇게 공지라도 날리듯 우리는 서로에게 질세라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 * *

그리고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아가씨, 그동안 정말로 고생 많으셨어요.”

시험 전날. NPC인 미나는 1년간 내가 올린 수치를 정리해서 보고했다.

체력 51(▲41)/99

공격력 64(▲59)/99

방어력 42(▲32)/99

통찰력 41(▲14)/99

……(중략)……

매력 41(▲6)/99

마법기술 15(▲9)/99

항마력 10(▲7)/99

예술 1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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