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4)화 (14/123)
  • 제14화

    저 부분을 잠자코 들으며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국왕인 로드리고의 아우 할슈타인 대공은 수도에 남는 조건으로, 자진해서 왕위 계승권을 반납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개인’의 몫을 반환한 것이고 그의 자녀인 아스타로테에게는 계승권이 남아 있다.

    심지어 그걸 허락한 것은 로드리고 국왕 본인이다.

    “폐하께서 할슈타인 영애를 얼마나 아끼시는지는 소신 역시 참으로 잘 알고 있나이다.”

    “그런데?”

    “그런 분에게 그라나다를 맺어 주는 건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독이라 한다면?”

    “그거야 당연히…….”

    슬슬 이간질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는 모양이니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이런 이야기에 당사자를 빼놓으시면 섭섭하죠!”

    “아니, 두 분이 어떻게!”

    대화가 한참 진행이 되는 도중에 우리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건 저희 문제인걸요. 당연히 저희도 말할 권리가 있어요!”

    “그 말도 맞구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명확히 정리하기로 했다.

    “일단 지금 당장 결혼시켜 달라든가, 그런 이야기는 절대 아니에요.”

    “그거야 그렇겠지?”

    뭐라고 하나 벼르고 있는 귀족들을 앞에 두고 나는 가능한 한 정돈해 내 뜻을 펼쳤다.

    “제 짝이 될 사람은 장차 왕실의 일원에 걸맞은 신분과 역량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선은 제가 먼저 제 역량을 선보일까 합니다.”

    내 말에 뒤이어 라이언도 나섰다.

    “그게 무슨…….”

    “부디 제게 기회를. 제가 온전히 저의 능력을, 그라나다의 가능성을 내보일 기회를 주십시오!”

    아무리 아버지가 몸져누웠다곤 하나 이 애는 똑똑하니까, 후견인을 빙자한 귀족들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혼자서도 영지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낼 것이다.

    “나로서도 그라나다가 내부에서 문제를 잘 해결해 주는 편이 낫긴 하지.”

    “하오나 폐하!”

    “플로리아 왕녀는 어찌하고…….”

    “참으로 안타깝군요.”

    짝, 짝, 짝.

    요란한 박수와 함께 웅성거리던 귀족들의 말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린 몽펠리에는 넌지시 내 쪽을 보며 이야기했다.

    “폐하께오서 아스타로테 님께 거는 기대가 크셨는데 기껏해야 한낱 공작 부인이라니, 참으로 실망이 크시겠군요.”

    저 이야기를 하며 그는 징그러운 눈을 씰룩대며 내게 슬쩍 윙크까지 날렸다.

    ‘히익!’

    진짜 내가 자기 편이라고 착각을 단단히 한 것 같은데!

    몽펠리에 놈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나는 결심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려 줘야 한다.

    “그게 아니죠. 후작께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예?”

    생각지 못한 반격에 몽펠리에 후작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여왕이 되고 공작을 국서로 맞으면 되잖아요?”

    한없이 진지한 내 말에 몽펠리에는 머리를 한 대 맞은 얼굴로 현실을 부정했다.

    “공작께서 뭐가 아쉬워서 그런…….”

    그때 라이언이 일갈했다.

    “제가 그만큼 아스타로테를 좋아합니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모든 이성적 논리를 마비시키는 단 한마디에 나는 라이언에게만 들리게 가만히 속삭였다.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어?’

    ‘없긴 하지?’

    역시 이것뿐인가. 이것밖에 없다.

    “맞아요, 라이언 소공작이 절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때아닌 폭탄선언에 몽펠리에 후작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럼, 나는 이미 아스타에게 푹 빠져 버렸으니까.”

    왜 저렇게 진짜처럼 말하는 건지. 저 애도 연기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모양이다.

    “언제부터 그런 말씀이 오가신 것인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만.”

    아까 [독사의 눈동자]를 쓰는 바람에 지금은 기술을 쓸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유효타로 작용했다.

    바로 그때.

    ……폐하가 깊은 한숨을 쉬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경들도 이제 내 두통의 원인을 이해하겠지?”

    열 살짜리 둘이 서로 좋아서 어쩔 수 없다는데 거기다 대고 논리를 들이민들 무슨 소용일까.

    “아직 어리십니다.”

    “우리가 아직 어려서 사랑을 모른다고요?”

    “플로리아 왕녀께서 계신데…….”

    “제가 사랑하는 건 아스타로테입니다.”

    “하오나 공의 책무가……!”

    “내가 도와주면 되잖아요!”

    “아스타로테 님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가 거기까지 가자 폐하의 미간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그 말은 좀 심하군.”

    “송구하옵니다.”

    적절하게 폐하까지 끼어들며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됐다.

    나는 우아하게 드레스 끝을 들고 해맑게 웃었다.

    “몽펠리에 후작이 혼담을 청하신 것도, 모두 저를 위해서라는 것을.”

    물론 이건 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당신의 발언에 몽펠리에 후작의 호감도가 15 하락합니다!

    몽펠리에 후작의 호감도 : -10(▼15)/10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