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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12)화 (12/123)
  • 제12화

    디오니스 경은 미리 경고했다.

    “첫 훈련 이후에는 손목과 어깨, 팔과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에 통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즉각 훈련을 중지하셔야 합니다.”

    어쩐지 검술 수련은 이렇게 힘드니 그만두라는 것처럼 들린다.

    “근육은 어차피 써야 느니까요. 괜찮으니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싶어요!”

    그렇게 호기롭게 대답했지만.

    “으윽!”

    훈련 첫날부터 안 쓰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익숙한 천장을 보며 나는 침대 위에 꼼짝도 못 하고 누웠다.

    “괜찮으세요?”

    “안 괜찮아.”

    앞으로 매일 디오니스 경을 우리 집에 보내 준다는 조건으로 나는 왕궁 밖에 있는 할슈타인 대공 저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게 지금의 내 위치란 거겠지.’

    잔뜩 부르튼 손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초 훈련 정도면 그래도 쉽게 따라갈 줄 알았는데 아직 어린 나이다 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미나가 물었다.

    “차라리 좀 더 자라신 후에 배우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미나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하다.

    처음 1년은 엄밀히 말해 튜토리얼에 가까워서, 대부분 가볍게 주변 캐릭터들과 친분을 쌓는 정도만 해도 순식간에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곤란하다.

    “시간이 없어서 그래.”

    사냥 대회까지는 앞으로 고작 1년.

    “으윽!”

    이 근육통도 그걸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미나가 서둘러 문 앞을 살펴보았다.

    “아가씨,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이 시간에 누구일까 싶었는데 누군지 듣고 나니 이해가 갔다.

    “모셔 오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라이언. 어쩌다 보니 약혼자가 되어 버린 그라나다 소공작이다.

    “라이언?”

    “선물이야.”

    그는 종이봉투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서 내 방을 찾아왔다.

    “이게 다 뭐야?”

    “필요할 것 같아서.”

    그가 가져온 물건들을 테이블 위로 펼쳐 놓았다.

    “이건 아픈 곳에 바르는 약이 발린 종이, 파스라고 해.”

    “파스가 있다고?”

    그 외에도 근육통에 좋은 콜드 크림에, 스트레칭에 쓰는 공까지.

    이 세상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물건이 가득 들어 있다.

    “손목이 아픈 거라면 이걸 팔에 발라 봐.”

    팔뚝에 크림을 바르자 싸한 기운이 피부를 덮었다.

    “으…….”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과 함께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진짜 시원해! 욱신거리던 자리가 훨씬 덜 아파!”

    아까까지만 해도 입에서 곡소리가 나던 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행이다.”

    “어깨에도 바르고 싶은데, 어떡하지?”

    “아가씨, 제게 맡겨 주세요!”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미나가 내게 다가왔다. 아픈 자리를 짚어 보고서 미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옷 아래에 발라야 할 것 같아요.”

    “뒤, 뒤, 뒤돌아 있을게!”

    어째서인지 얼굴이 새빨개진 라이언은 어쩔 줄을 모른 채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 손으로 알아서 눈까지 가렸다.

    어차피 무도회용 드레스도 아니라서 벗을 것도 아닌데.

    라이언은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지 크림을 바르는 내내 어쩔 줄을 몰랐다.

    미나가 크림을 다 바른 후 옷을 고쳐 입고서 나는 슬그머니 그의 등 뒤로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제 돌아봐도 돼.”

    라이언은 그제야 손을 내리고 내 쪽을 바라봤다.

    “나 때문에 일부러 가지고 온 거야?”

    “그냥 있던 걸 가져온 거야.”

    “그런 것치고는 다 새것 같은데?”

    모로 봐도 일부러 가져다준 게 뻔한데 라이언은 어째서인지 시선을 피하며 괜한 변명을 했다.

    “……내 얼굴에 묻은 흙을 떼 줬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뿐이야.”

    “뭐야, 그런 거였어?”

    하긴,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인 건지.

    그의 머리 위에는 호감도 수치 하나 뜨는 게 없다.

    호감도가 보이지 않는 건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 절대적인 사랑이나 증오와 같은 격렬한 감정.

    지금은 비록 수치가 10이나 빠지긴 했지만, 아빠는 기본적으로 호감도 100을 탑재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사소한 일 정도로는 호감도 창이 아예 뜨지 않는다.

    하지만 무한 회귀 중에도 소공작과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으니 이건 아닐 거다.

    그렇다면 두 번째, 원래 공략 캐릭터가 아니라서 아예 호감도 시스템 자체가 탑재되지 않은 것.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제일 설득력 있다. 바꿔 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함부로 엿볼 수 없다는 게 된다.

    이 애는 대체 내게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해 아직은 알아낼 수단이 없다.

    “오늘 국무회의에서 우리 둘의 안건이 올라온다고 해.”

    “정말?”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해져서 말이야.”

    “나도, 나도 듣고 싶어!”

    아빠한테 데려가 달라고 하면 절대로 허락해 주지 않을 테지만, 라이언이 도와준다면 문제가 없다.

    어쨌든 이 애는 폐하께서 공인한 내 잠정적 약혼자니까.

    정식으로 시험이 시작된 이후로 아빠와 나는 한 번도 이 건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함께 갈래?”

    “응! 가고 싶어!”

    “몰래 잠입하는 거니까 드레스는 안 돼.”

    “시녀복을 입는 게 좋겠지?”

    일단 말을 꺼내니 모든 게 순조롭게 이어져 갔다.

    [(획득)시녀복 1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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