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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왕이 되는 게 나을 것 같다 (8)화 (8/123)
  • 제8화

    호감도 수치가 뜨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가 있다.

    아빠의 지금 감정 상태를 지배하는 건 서운함이라는 키워드다.

    “아빠는 무도회도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했단다.”

    “하지만, 다들 제가 방해라고 생각하잖아요.”

    “대체 누가 그런 헛소리를……!”

    “아스타는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사람들은 대놓고 수군거리곤 했다. 내 존재가 언제나 아빠에게 방해만 되는 거라고.

    “아빠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저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충격에 빠진 아빠는 더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눈을 보며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아빠의 별빛이 어쩌다 그런 슬픈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희희낙락 1년을 보냈을 때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내 세상 같았다.

    그토록 행복했던 유년기는 정확히 1년 후, 사냥 대회 날 아빠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아빠의 호감도를 깎아 먹게 되더라도 이 문제만은 타협할 수 없다. 완강한 내 뜻에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나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왕비님께서 그러시더구나. 너도 더는 어린애가 아니라고.”

    “아빠.”

    아무래도 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에, 무사히 [왕비의 보살핌]이 발동했던 모양이다.

    미리 얻어 두지 않았더라면 당장 집으로 끌려갔을 거라고 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런 상황을 알고 방을 마련해 주신 거겠지.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얘기하자꾸나.”

    그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아빠의 품에 안겨 방으로 가는 사이 저 멀리 커다란 달이 보였다.

    그 달빛 아래에서 아빠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진심을 털어놓았다.

    “아빠가 널 숨긴 건,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단다.”

    아빠가 살아 있는 동안, 아스타로테는 저택 밖에 거의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힘이 없고 너는 너무 어리니까. 저 귀족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이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아빠.”

    보호자인 아빠가 가장 먼저 죽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국왕이 가장 아끼는 아우이자 가장 어린 왕손의 보호자.

    그렇게 아빠를 먼저 처치한 후 나머지 계승권자가 모두 살해당하면 귀족들은 자연스레 국왕을 암살하고 아스타로테를 내세워 나라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

    “그렇게라도 널 지키고 싶었던 부족한 아빠를 용서해 주렴.”

    엄마와 결혼하기 위해, 엄마가 죽은 뒤로는 나를 위해 아빠는 왕위 계승권을 반납해야만 했다.

    다행히 폐하의 배려로 내 계승권은 인정받았다지만, 연약해 보이는 아빠도 실상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말로 많은 것을 희생해 왔다.

    “사랑한단다, 아스타로테.”

    그러니까 더 지키고 싶은 거다. 아빠와의 미래도. 내 새로운 가족도.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아빠의 등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 * *

    “아!”

    정신없이 자다 깼을 때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

    그리고 다행히 익숙한 내 방이 아닌 낯선 천장이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아빠가 날 억지로 집으로 데려간 줄 알고 기겁했는데, 다행히 아직 왕궁에 있는 모양이다.

    왕궁 시녀들과 함께 내 측근인 미나가 기다렸다는 듯 얼른 달려왔다.

    “늦잠을 주무시다니, 별일이시네요.”

    서둘러 세수부터 시키고 부스스하게 들뜬 머리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시녀가 가져다준 신선한 오렌지 주스까지 한입 머금고서 나는 미나에게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서둘러?”

    “그라나다 소공작께서 기다리고 계셔요.”

    “풉―”

    마시던 주스를 뿜을 뻔했다.

    “이 시간에?”

    “한참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계셨는걸요. 대공께서 폐하와 새벽 사냥을 나가신 틈에요.”

    “아…….”

    폐하는 정말 최고다.

    사냥을 나가신 거라면 최소 오후에 돌아오실 테니 그전까지 저 애와 어떻게든 이야기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건데.

    이 시간에도 조금씩 줄어드는 제한 시간을 보며 옷부터 갈아입었다.

    언니가 직접 골라 준 연하늘색 드레스를 입고서 나는 우아한 걸음으로 별궁에 마련된 응접실로 향했다.

    “아스타.”

    그리고 다시금 소공작, 라이언과 마주했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렸다면서?”

    “어제 하던 얘기를 마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만약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먼저 청혼했다고 말이라도 꺼냈다면 낭패다.

    이 애가 뭘 알고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젯밤 단둘이 있다는 걸 들키면 아무래도 상황이 골치 아파질 것 같긴 하다.

    “네가 어제 내 손수건을 주워 준 것에 대해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

    “아, 응. 그렇지.”

    다행히 눈치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던 세드릭과 달리 라이언은 단박에 가짜 알리바이부터 전해 줬다.

    저런 면을 보면 어제의 돌발행동도 그렇고 NPC치고는 참 능동적인 캐릭터다.

    ‘이쪽은 진짜 어른이 들어 있다지만.’

    저 애도 겨우 열 살인데, 어린애라고 보기 힘들 만큼 바로바로 말귀를 알아듣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다과를 준비해 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야 해.”

    “아가씨, 무슨 일이 있으면 절 꼭 부르셔야 해요.”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고 해도 외간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게 마음에 걸린 건지 미나는 몇 번이고 내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진짜로 괜찮다니까!”

    훠이훠이. 손짓하고서 나는 괜히 머쓱해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랑받고 있구나, 아스타로테.”

    “내, 내가 좀 그렇지?”

    생각지 못한 말에 머쓱해져서 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라이언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미리 준비해 왔어.”

    “이건…….”

    [(획득)청혼서 1장]

    국왕에게 청혼서를 보여 주고 앞으로의 계획을 드러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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