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85)화 (385/385)
  • 385화. 떠나간 사람이 되돌아오다

    품었던 기대가 클수록 현재의 절망도 큰 법이었다. 

    류명주는 북양에 가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리라 기대했다. 비록 더 이상 첩여마마는 아니겠지만 그녀에게는 떳떳한 신분과 다정한 부군이 생길 것이다. 그녀는 총애를 다투는 후궁을 떠나면 황제와 더욱 원만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꿈이 마치 물거품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될 줄은 몰랐다.

    류명주가 너무 슬피 울자 지온은 하는 수 없이 서아를 불러 그녀를 데리고 가 쉬게 했다.

    그녀가 마차로 돌아가자 태의와 고찬은 병세를 논의하러 갔다. 지온은 소희에게 약을 달이라고 지시했다.

    소희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눈물을 훔치며 마차에서 내렸다.

    지온은 마음이 무거워져 황제의 침대 옆에 앉았다.

    “난 결국 그를 구하지 못했소.”

    루안이 조용히 말했다.

    지온이 그의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사실 그들은 평왕부가 황제를 쉽게 보내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였다. 루안이 그를 데려가면 북양에서 이를 빌미로 군대를 일으킬지 누가 안단 말인가?

    “아니, 최선을 다하지 않았소.”

    루안이 말했다.

    “만약 내가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 그를 구할 생각만 했다면 귀경했을 때 바로 그를 북양으로 보냈을 거요. 평왕부에서 수작을 부릴 거라는 걸 짐작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그에게 맺힌 응어리가 여태 남아 있었을 뿐이오.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았던 거요.”

    지온이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돌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막 깨어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요?”

    루안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무애해각이 불타버린 것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이 사람을 죽이고 복수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은 건 그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도량이 그리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애해각이 없어지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관련된 모든 사람을 죽여 복수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 

    “어쨌든 할아버지께서 그를 5년이나 가르치셨고, 사형, 사제들도 5년이나 동문으로 지냈는데 황위를 계승한 뒤에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을까요? 심지어 그는 한 번도 할아버지께 가서 제사를 지낸 적이 없어요.”

    루안은 그녀가 냉정하게 말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온은 웃는 얼굴로 천천히 그녀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물론 이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그건 그가 그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뿐이에요. 사실 이 사람도 본성은 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각박하고 무정해요. 일전에 그가 당신을 보호하는 걸 보고 당신 마음이 약해진 거죠? 당신이 믿든 안 믿든 그는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면 그냥 포기해버렸을 거예요. 당신 때문에 강왕과 사이가 틀어질 위험을 감수하겠어요?”

    루안은 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루안도 알고 있었다. 황제가 그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그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황제로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루안은 강제로 독약을 먹고 매월 발작을 할 때 죽느니만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황제는 단 한 번도 그 독의 해독을 도와줄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지온이 여상스레 말을 이었다.

    “하물며 나는 죽었어요!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다시 살아났으니 망정이지, 이런 신기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그저 물고기가 갉아먹는 시체 한 구였을 거예요. 내가 왜 이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데요?”

    루안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요. 당신이 다시 살아난 후에 난 정말로 하늘에 감사를 드렸소. 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그가 당신을 좋아했다고 생각했소.”

    “좋아했다고요?”

    지온이 돌연 차갑게 웃었다.

    “그날 밤, 그는 나를 서각에 가뒀어요. 만약 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런 게 애정이라면 난 받아들일 수 없어요.”

    루안이 속으로 한숨을 쉬고 나서 막 말을 하려했다. 

    “당신이 날…… 미워해도 괜찮소…….”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황제가 뜻밖에도 깨어나 있었다.

    루안이 일어나서 태의를 부르려고 했지만 그가 저지했다. 

    “아니…….”

    황제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볼은 종이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평소에는 그런대로 잘생겼던 얼굴이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수척했다. 지금 그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는지 지온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종화.”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 종화인 거요?”

    여기까지 온 마당에 부인할 필요도 없었다.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눈가에서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온에게 손을 뻗었다 부끄러워하며 거두어들였다.

    역시 옥비가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종화였다. 

    그러니까 그는 원래 소원을 이룰 기회가 있었는데 또 다시 그녀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녀를 손수 루안에게 넘겨주기까지 한 것이다. 

    “미안하오.”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나도 그럴 생각은…….”

    그는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는 자신은 황제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슬펐는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그는 자신이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는 무애해각의 멸망과 스승의 죽음에 대해 조금도 미안한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이다지도 무정한 사람이었다. 

    요 며칠 그는 이따금씩 정신을 차릴 때마다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죽음에 직면하는 게 이런 느낌이란 말인가?

    그날 밤, 해적의 손에 죽은 사형과 사제들도 이랬을까?

    아니, 그들은 그보다 더 두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자신을 도살하는 칼날 앞에 홀로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종화…….”

    지온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갈망이 빛이 떠올랐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온을 응시했다.

    “용서해주겠소?”

    그가 물었다.

    지온은 그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았지만 마음속에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아니요.”

    황제의 눈에서 희망의 불빛이 확 꺼졌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 날 용서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스승님은 죽고 당신도 죽을 뻔했는데…….”

    지온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를 그녀가 용서할 자격이 어디 있단 말인가?

    황제는 연신 중얼거렸다.

    “죽어야 할 사람은 나지! 그래 결국 난 죽을 거야…….”

    지온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희가 약을 가지고 왔고 이어서 태의를 불렀다. 류명주가 문병을 왔다.

    사람들이 곁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지온은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날이 밝을 무렵, 안에서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폐하! 제발 가지 마십시오. 신첩을 버리고 가지 마십시오…….”

    지온은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떤 슬픔도 통쾌함도 없었다.

    잠시 후, 루안이 걸어 나와 그녀에게 말했다.

    “그가 갔소.”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얼굴에도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어렸다.

    루안이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고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모든 게 곧 끝날 거예요. 결국은 끝이 날 거예요…….”

    지온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고 밝은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 * *

    닷새 후에 그들은 북양의 경계에 도착해 루혁과 합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성에서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태후는 평왕의 손자 대에서 사람을 뽑아 황위를 이었다. 

    뒤이어 봉지로 돌아간 강왕은 평왕이 황제를 시해했다며 깃발을 들고 군대를 일으켰다.

    이렇게 전쟁은 시작되었다.

    북양으로 돌아온 루안과 지온은 더 이상 그런 일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루혁은 전력을 다해 북양 경계에 성을 쌓았다. 조정에서 그에게 출병하여 난을 평정하라 요구했지만 못 들은 척했다.

    정세 변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다. 이 전쟁으로 인해 민생은 더욱 어려워졌고 살기 힘들어진 백성들이 봉기하여 갈수록 의병이 늘어났다.

    또 혼란을 틈타 여러 세력이 들고 일어나 천하를 두고 다퉜다.

    1년 후, 지온은 임신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루안은 그녀에게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유 대공자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조정이 너무 혼란스러워 우리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소. 큰형도 명령을 받들어 출병하기로 결정했소.”

    지온이 찬성하며 말했다.

    “확실히 더는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몰라요. 가세요. 명주 낭자도 있고 날 돌봐줄 사람은 많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무엇보다 내가 있잖아요?”

    루안은 그녀의 아랫배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요.”

    * * *

    이 전쟁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일 년간의 혼전을 거쳐 처음으로 깃발을 들었던 의병은 거의 궤멸되었고, 천하는 몇 개의 세력이 할거(割据)했다.

    북양은 출병하여 가장 먼저 강왕과 맞섰다. 

    그 후 약 일 년간 싸움이 지속되었고 강왕군은 결국 패배했다. 강왕이 패해서 도망갈 때 강왕세자가 친위를 규합하여 그를 참살했다. 

    강왕세자는 패잔병들을 데리고 두 달을 버티다가 북양에 의해 멸망했다.

    그와 동시에 반란군 한 대대가 경성을 공격해 평왕부 사람들이 모두 도망갔다. 평왕은 도망가던 도중에 죽었고 평왕세자는 포로로 잡혔으며 새로운 황제는 종적을 감췄다. 

    다행히 북양군이 늦지 않게 도착해 경성을 탈환한 덕에 태후와 대장공주는 수모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일로 태후는 놀라 앓아누웠고 대장공주가 섭정하며 나라를 다스렸다.

    그 이후 3년 동안 북양군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천하는 점차 안정되어갔다. 

    마지막 세력이 패망한 뒤 북양왕 루혁은 귀경했다. 그는 대전으로 가서 대장공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장공주가 차갑게 물었다.

    “왕야, 이게 무슨 짓인가? 왕야가 무릎을 꿇는 걸 본궁더러 어찌 감당하라는 겐가?”

    루혁이 말했다. 

    “전하께서는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온 천하에서 전하만이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대장공주가 말했다.

    “무슨 뜻인가?”

    처음 북양이 자신들을 구해주었을 때는 그녀도 역시 감동했었다. 하지만 3년 동안 황위가 텅 비어 있는데도 루혁은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이는 그가 다른 황제를 세울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었고 그의 속마음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요씨 왕조의 적통 공주였다. 겨우 남은 황가의 핏줄로 황위를 계승해보았지만 신하의 세력이 강하고 그 주인은 약한 것을 이미 목도한바 있었다. 황위가 곧 남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으니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양측은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도 마음속으로 요씨 가문이 이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루혁이 어떻게 이 황위를 찬탈할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도 역사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꼭두각시를 뽑아 선양하게 만드는 수작을 부릴까?

    하지만 루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루혁이 말했다.

    “당초 저희 선조께서 요씨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셨고, 지금은 황실의 적자가 공주마마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바로 저희 북양이 모시는 주인입니다.”

    대장공주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의심스러웠다.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가? 확실하게 말을 하게!”

    루혁이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저희 북양은 전하를 군주로 모시고 전하께서 제위에 등극하실 수 있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그가 말했다.

    대장공주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 그녀가 물었다.

    “이건 누구 생각인가? 루안인가?”

    “내 생각일세!”

    북양태비가 긴 여정에 지친 얼굴로 갑옷도 벗지 않고 들어와 말했다. 

    “요봉접, 우리가 자네한테 강요한다고 생각하지는 말게. 이것이 우리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라서 그런 것일 뿐이네.”

    대장공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따지기 시작했다.

    “곽여단, 거짓말할 생각은 말게! 자네 머리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분명 루안이겠지, 안 그런가?”

    북양태비를 따라 들어온 루안이 웃는 얼굴로 먼저 그녀에게 인사를 올린 후 말했다. 

    “어머님, 화내지 마십시오. 같이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희 북양은 오랜 시간 고생스럽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 열매를 다 차지하여 그에게 머리를 숙이고 신하가 되라 하시면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대장공주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니면 왜 세상 사람들이 루혁이 언제 황위를 찬탈할지 지켜보고 있겠어?’

    루안이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저희끼리 상의해 봤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이 어머님이라면 저희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는 온아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대장공주는 참으려 했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지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게야? 여자가 황제가 되는 것이 세상을 얼마나 놀라게 할지는 차치한다 하더라도 본궁은 지도자로서 위신이 전혀 없지 않느냐! 사람들의 신망도 없고 측근도 하나 없어서 조정을 감당할 수 없는데 어찌 등극을 한단 말이냐? 더구나 태자는 국본인데 본궁은 자식도 없으니 조정이 안정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런데도 마음대로 이런 말을 꺼내놓고 나한테 강요하는 게 아니라고?”

    루안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님의 말씀은 틀렸습니다.”

    “뭐가 틀렸단 말이냐?”

    루안이 말했다.

    “3년 동안 어머님께서 섭정하며 나라를 다스리셨는데 어찌 위신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미 대장공주마마께서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뿐이고 다들 조금 놀라기야 하겠지만 납득을 못 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측근은 저희가 있지 않습니까? 또 정국공과 유씨 가문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감당 못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북양태비와 루혁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계자에 관해서는 더 쉽습니다. 황실 가문에서 하나 아니면 몇 명을 골라서 어릴 때부터 가르치면 얼마든지 인재로 길러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머니께서 이제 오십밖에 안 되셨고 몸도 건강하시니 20년만 더 사시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겁니다.”

    “…….”

    대장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본궁도 국운이 다했으니 황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북양이 천하를 평정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니 자네들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처음 그 자리에 오르면 아마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네들이 정통이 될 게야. 그러니 이럴 필요가 없네.”

    북양태비가 불쾌해하며 말했다. 

    “자네는 지금 우리가 마음에도 없으면서 권하는 척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겐가?”

    “그게 아니라…….”

    루혁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전하, 제가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선조께서 요씨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셨습니다. 이건 약속입니다. 요씨 가문 사람이 살아있는 한 저희는 약속을 지킬 겁니다. 지금 요씨 가문에 살아있는 사람은 전하뿐이니 저희는 전하께 충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이 약속이 효력을 다하기 전까지, 북양은 황위에 오르지 않을 겁니다.”

    대장공주는 마음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한참 후에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자네들은 사람들이 떠들어 댈 일이 두렵지도 않다는 건가?”

    루혁이 잠시 웃더니 조정 신하들을 멸시하며 말했다. 

    “근래에 북양은 언제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습니까? 우리 부왕, 조부 어느 한 분이라도 조심하라 당부하지 않은 분이 있겠습니까? 만약 저희가 그런 것을 두려워했다면 출병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북양태비는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무섭긴 뭐가 무섭다고!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 좀 하는 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좀 시원스럽게 말해보게! 하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한다고 하면 우리가 자네가 등극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자네가 등극하고 세상이 안정되면 우리는 북양으로 돌아가 북쪽 경계를 지킬걸세.”

    대장공주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을 신뢰했다. 

    그들은 정말 그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루씨 가문이 이렇게 약속을 중요시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달갑지 않았던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자기 집안의 혈맥이 끊어진 것이 먼저이고 루씨 가문이 천하를 평정한 것은 그 이후이니 자신들에게서 황위를 빼앗는 건 아니었다.

    “됐네! 본궁은 나이가 많아 한참 전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힘에 부치고 싫증이 났어. 그 약속은 본궁이 요씨 가문을 대표해 포기하도록 하지. 자네가 날을 택해 황위에 오르도록 하게.”

    대장공주는 이 말을 마치자 그만 서글퍼졌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 있던 루씨 가문의 세 모자가 마지막으로 공손하게 큰절을 올렸다. 

    “폐하, 천세를 누리소서.”

    * * *

    경초(景初) 5년에 천하가 평정되고 북양왕 루혁이 황제에 올라 연호를 원희(元熙)로 삼았다. 

    그의 모친 곽씨는 황태후가 되었고, 그의 친동생인 루안은 정왕(靖王)이 되었다. 

    즉위식이 끝난 후, 루안은 전에 살았던 경성의 옛집으로 돌아갔다.

    황제가 따로 관저를 하사하지 않아 루안이 이곳에 직접 정왕부의 편액을 걸었다.

    이때,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아이의 손을 잡은 누군가가 문가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아이가 그를 보고 나는 듯이 달려왔다.

    루안이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감싸 안고 문가에 서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돌아왔소.”

    지온이 손짓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와요.”

    루안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미소지었다.

    “천하가 안정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상해로 돌아갑시다.”

    지온이 눈물을 글썽이며 밝게 웃었다.

    “그래요.”

    한참을 돌고 돌아 그들은 마침내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원래의 그곳으로 돌아갔다.

    『천방』 완결

    지금까지 <천방>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 작가 인사말 》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작가 윈지입니다.

    <천방>이 한국에서도 무사히 완결을 하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 이슈가 있었기에, 괜히 저의 작품이 많은 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독자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저의 완벽하지 않은 작품을 이토록 좋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지금, 부디 건강 보존하시고 삶에 즐거움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윈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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