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79)화 (379/385)
  • 379화. 증인

    “강왕,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강왕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자가 본왕이라고 말하면 그냥 본왕이 범인이 되는 겁니까? 노복의 목숨을 가지고 본왕을 모함한 것뿐입니다.”

    대장공주는 화가 극에 달해 탁자를 내려쳤다. 

    “당신 눈에는 뭔들 모함이 아니겠습니까? 승원궁에 약을 묻은 것도 부인하고 황제에게 자객을 보낸 것도 부인하고 지금 호은이 죽은 것까지 전부 다 아니라고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대장공주는 삼사에게 물었다.

    “오늘 일은 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나?”

    형부상서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독약의 출처도 확인됐고 죽은 사람이 지목하기도 했으니 증거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왕세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호은은 중요 증인입니다. 우리가 그를 죽이면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지요. 만약 그가 정말 우리 강왕부 사람이라 해도 이를 악물고 부인하면 그만 아닙니까?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루안이 냉랭하게 말했다. 

    “세자께서는 본인이 부인하기만 하면 모든 죄증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증거를 올리겠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태후를 향해 말했다.

    “마마, 자객을 데려와 주시길 요청합니다.”

    태후가 말했다.

    “상 수상?”

    상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을 데려와라.”

    강세안이 끌려왔다. 그의 상처는 그저 간단하게 처리만 해 두었을 뿐이라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무릎을 꿇지 않고 있었지만, 이때만큼은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루안이 그의 앞에 가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강세안.”

    강세안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루안은 이어서 말했다.

    “본관은 네 딸이 강왕세자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너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겠지. 그런데 이 생각은 안 해 봤나? 자네가 죽고 나면 자네 딸도 따라 죽게 될 거란 사실을 말이야!”

    강세안의 눈빛이 흔들렸고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루안은 강왕세자를 힐끗 보았다.

    “네 딸의 존재가 바로 강왕세자의 오점이지. 너라면 그 아이를 살려두겠느냐?”

    강세안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서 땀과 핏물이 섞인 것이 흘러내려 거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절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은 그저 한 병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고관대작은 평소에 그와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모름지기 인정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누가 이 절절한 부성애를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강왕세자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소리쳤다.

    “루안!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그 어린 계집이 지금도 멀쩡히 살아 있는데 내가 언제 그 아이를 죽인다 했단 말인가?”

    루안이 냉정하게 말했다.

    “어린 계집이라고 부르시는 걸 보니 죽이는 것보다 더 나을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네 놈…….”

    루안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강세안에게 말했다.

    “들었느냐?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태후마마, 황후마마, 대장공주마마, 그리고 정사당의 재상, 삼사의 당관들, 이 세상에서 강왕부의 위협으로부터 널 지켜줄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바로 여기 있지. 태후께서 특별 사면하겠다고 한마디만 해주시면 네 딸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뭘 아직도 망설이는 게냐?”

    그의 말을 들을수록 강왕세자는 더욱 당황스러워졌다. 그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으려고 했다.

    “루안, 그런 말로 사람을 속이는…….”

    “닥쳐라!”

    대장공주가 그의 입을 막고 강세안을 향해 말했다. 

    “말해라. 네가 일의 전말을 다 실토하면, 본궁이 네 딸의 목숨을 보장해주마!”

    강세안은 이 말을 듣고 결국 땅에 엎드려 구슬프게 울었다. 

    “맞습니다. 그가 시켰습니다. 황제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안 그러면 제 딸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강왕세자는 놀람과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날 넌 소달을 모함하고 도망쳤어! 본 세자는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어떻게 너한테 그런 일을 시키겠느냐?!”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루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달을 죽인 건 자네가 설계한 계획이지. 이 강세안은 틀림없이 자네 사람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자네 음모였어!”

    루안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세자께서 아마도 정신이 나가셨나 봅니다. 소달 사건은 하관이 그저 명령을 받고 일을 처리한 것뿐인데 제가 강세안이 누군지 알 턱이 있겠습니까.”

    그는 계속해서 강세안에게 물었다.

    “세자께서 네가 소달을 모함했다고 하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강세안이 비분강개하며 말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분명 자기가 소달을 죽이고 싶어서 일부러 그 일을 빌미로 삼은 걸 겁니다.”

    강왕세자는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루안이 먼저 그를 대신해서 물었다.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가 왜 소달을 죽이려고 하겠느냐?”

    “그거야 당연히…….”

    강세안이 고개를 들어 강왕세자를 쳐다보고 말했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뭔가 숨겨진 속사정이 있는 것만 같았다. 

    대장공주가 빠르게 말했다.

    “빨리 말해라! 아는 것이 뭐란 말이냐? 네가 말을 하면 그 공로는 다 네 딸에게 돌려줄 것이다!”

    강세안은 엎드려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이 정해군에 있을 때 상부의 지휘관이 바로 소달이었습니다. 그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해적과 몰래 결탁하여 상선을 강탈했습니다. 

    4년 전 어느 날, 소달은 갑자기 훈련하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섬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해적과 합류하여 해적들 옷으로 갈아입고 밤을 틈타 사람들을 죽이러 한 서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자 태후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서원의 이름이 무애해각이더냐?”

    짝! 짝! 짝!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어 손뼉을 쳤다.

    사람들이 돌아보니 역시 강왕이었다.

    강왕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지만, 눈빛은 오히려 얼음같이 차가웠다. 

    “이야기를 참 잘도 지어냈군.”

    그가 말했다.

    “하마터면 본왕도 믿을 뻔했어.”

    “강왕!”

    대장공주가 분노하며 그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아직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겁니까?”

    “뭘 인정한단 말입니까?”

    강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이런 놈을 찾아다가 이렇게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그게 설마 본왕의 죄가 될 거라 생각합니까?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만으론 부족했나 봅니다. 이런 자들이라면 본왕도 열 명쯤은 데려올 수 있습니다.”

    “정말 이게 다 거짓말이란 말씀이십니까?”

    루안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럼 이다음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전하께서 잘 설명해 주십시오.”

    그는 몸을 돌려 지시를 청했다.

    “태후마마, 물증을 가져오라 해주십시오.”

    태후는 두말없이 지시했다. 

    “가져와라.”

    내관이 나가서 말을 전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하나는 유신지였는데 손에 문서를 한 무더기 안고 있었다. 또 하나는 젊은 부인이었는데 옷차림이 관료 가문의 부인 같았고 손에 상자를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예를 올린 뒤 젊은 부인이 말했다. 

    “소첩 정 씨, 어사 지원(池元)의 미망인이옵니다. 태후마마와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지원의 이름이 나오자 망연자실한 사람도 있고 생각에 잠긴 사람도 있었다.

    설 상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루 통정, 이 부인은 자네 장모님이 아닌가? 이건 무슨 뜻인가?”

    루안이 고객을 끄덕이고 말했다. 

    “설 대인,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루안의 지시를 받은 유신지는 서류를 서기의 책상에 내려놓고 한쪽을 뒤집으며 말했다. 

    “4년 전에 정해군이 관인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적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지휘사의 관인이었지요. 이건 당시의 수사 기록입니다. 그 관인은 결국 찾지 못하고 분실처리 한 후 사건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는 서류를 상용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건네주었고 그들이 내용을 훑어본 뒤 사실을 확인했다.

    유신지는 서류를 또 하나 뽑아냈다.

    “이건 무애해각 사건의 기록입니다. 큰불이 난 후에 찾은 물증들은 모두 여기 기록되어 있고 여기에 관인과 비슷한 물건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더 꺼냈다.

    “이건 상해에서 백 리 떨어진 평천현(平川县)에 있는 도둑 체포 관련 서류입니다. 장물 중에 이런 관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관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려서 현령은 감히 상부에 보고하지 못하고 그냥 서류를 봉인해버렸습니다.”

    상용이 서류를 다 본 후 물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인가?”

    유신지는 손을 뻗으며 루안에게 대답을 양보했다.

    루안이 말했다. 

    “무애해각에 관인이 없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그날 밤 현장에 가서 해적들을 죽인 것은 소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달은 사후에야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무애해각에서 관인을 잃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두 가지 사건이 연관됐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루안이 계속 말을 이었다. 

    “나머지 두 건의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분께서 시간을 눈여겨 봐주십시오.”

    상용이 첫 번째 서류를 펼쳐보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변했다.

    “왜 그러십니까?”

    설 상서도 머리를 들이밀고 보더니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침묵했다.

    태후가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문제인가?”

    루안이 말했다. 

    “시간, 소달이 분실신고를 한 것은 4월 말이고, 평천현에서 장물을 찾아낸 것은 4월 초입니다.”

    태후는 잠시 멍해졌다가 차츰 깨달았다.

    “평천현에 4월 초에 이 관인이 나타났다는 것은 정해군이 신고했을 때 이미 관인을 분실한 지 한 달이 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잃어버렸을 때 바로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루안은 무애해각의 그 서류를 가리켰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시간과 장소를 보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달은 해적으로 가장했을 때 그 관인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현장의 관련 물품 수색에서도 관인이 발견되지 않자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 두 사건을 연관 지을 수 없어진 시점에 이르러 그는 이것을 서로 상관없는 다른 사건으로 보고했다.

    평천현에서 남긴 이 기록이 아니었다면 그 일은 아마 이렇게 뒤섞인 채로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상용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추론이 합리적이긴 하지만 이런 추론만으로 사실로 인정하긴 어렵네.”

    루안이 말했다.

    “그래서 두 번째 증거가 있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공수했다.

    “장모님, 나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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