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77)화 (377/385)
  • 377화. 혼수상태

    이렇게 많은 사람의 눈길을 받자 강왕세자는 부끄러운 나머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헛소리하지 마라! 증거라도 있느냐?”

    그 군사는 당연히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 강왕세자가 무고를 주장하려는 찰나에 갑자기 어떤 그림자 하나가 그를 향해 달려들며 소리쳤다. 

    “역시 당신이었군요! 강왕세자, 폐하를 질투한 것도 모자라 해치려고까지 해놓고 인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유신지였다!

    유신지는 마치 달려들어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정국공의 친위대가 제압하고 있는 강왕세자에게 그가 가까이 다가갈 수나 있겠는가! 거리가 가까워지자 유신지는 바로 저지당했다. 

    유신지가 목청껏 소리쳤다.

    “당신은 폐하의 대를 끊은 일이 탄로 나자 한 번 손을 댄 일이니, 끝장을 보려고 일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겁니다. 강왕세자, 당신은 황제를 업신여기고 역모를 꾀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강왕세자는 화가 치밀어 무의식 중에 말이 튀어나왔다. 

    “자네들이 생각하는 대로 강세안이 나와 원한이 있다면, 저자가 왜 나를 위해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강세안이 그의 부인과 바람을 피웠다면, 강왕세자가 강세안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유신지가 차갑게 웃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단 말입니까? 세자의 손에 저 자의 딸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저 자가 말을 안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아직도 소현주의 목숨을 살려두셨습니까. 세자께서 이렇게 도량이 넓은 분이셨습니까?”

    “…….”

    강왕세자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는 확실히 그리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강왕세자가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하자 루안이 강세안에게 다가가 물었다.

    “강세안, 네가 말해 보아라. 누가 시킨 게냐?”

    강세안은 정국공에게 잡혀 온 뒤로 이미 한차례 고초를 겪은 터라 지금은 머리까지 풀어헤쳐져 아주 곤란한 상태였다.      

    강왕세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자는 내 원수이니 당연히 나를 모함하겠지.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지만 강세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안은 웃는 듯 마는 듯했다. 

    “세자 전하 보십시오, 저 자가 이렇게까지 전하를 보호하는군요.”

    이런 상황에 이런 말을 하니 정말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강왕세자가 분노했다.

    “저 자가 내가 한 짓이라 말했으면 자네들은 그걸 기회 삼아 나를 흉악범이라고 모함했겠지. 지금 또 내가 한 짓이라 말을 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저자가 나를 지킨다고 몰아가는군. 어쨌든 이 죄를 본 세자에게 뒤집어씌우려 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인가?”

    루안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자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렇게 많은 의혹이 있으니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을 수가 없지요.”

    그는 몸을 돌려 태후에게 청했다.

    “마마, 먼저 세자가 자객을 매수해 암살을 시도했고, 그 후 강왕이 역모를 꾀하였으니, 강왕부를 조사해야 마땅합니다! 마마께서 명령을 내려 그들을 체포해 주십시오!”

    유신지는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닦으며 그를 따라 간청했다.

    “강왕부에서 역모를 꾸몄으니, 마마께서 명령을 내려 그들을 체포해 주십시오!”

    전 재상은 매서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꼴을 좀 보게, 대체 어디가 반목하며 원수가 된 사이란 말인가? 유씨 가문이 정말 대단하군, 나를 농락하다니! 인제 와서 말해 무엇한단 말인가. 이 고비만 넘기면 저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태후는 상용을 바라보았다. 

    “상 수상,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상용은 잠시 침묵하더니 공수하며 말했다. 

    “역모를 꾀하는 것은 큰 죄로 예삿일이 아닙니다. 혐의가 있는 만큼 가볍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소신의 생각에는 정사당의 주관 아래 삼사회심(*三司会审: 3개의 주요 중앙 사법기관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제도)에 부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이 말을 듣고 태후와 대장공주의 기분이 약간 풀어졌다.

    이와는 반대로 강왕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상용의 마음은 이미 그녀들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강왕은 자기도 모르게 매서운 눈길로 세자를 노려보았다. 

    ‘모두 저 후레자식 때문이다.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기어코 이렇게 많은 일을 벌여 놓다니. 저것들이 이리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것을 보니, 심문을 한다 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겠구나.’

    “마마!”

    루안이 말했다. 

    그가 입을 열자 모두 긴장하였다. 루안은 입을 한 번 열 때마다 그들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계속 얹어주었다.

    태후는 온화한 말투로 속삭이듯 말했다. 

    “루 통정 무슨 할 말이 있나?”

    루안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왕세자께서 일전에 승원궁에 약이 묻혀있던 사건에 대해서도 아직 혐의를 벗지 못하신 데다 그 사건은 아직도 정사당에 걸려 있습니다. 두 사건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고 전후 인과관계가 있으니 함께 조사해주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태후는 당연히 허락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하나를 조사하든 둘을 조사하든 어차피 전부 조사를 하긴 해야지. 모두 정사당에서 주관하는 사건이니 인력과 물자를 낭비하지 말고 합병해서 조사하도록 하게.”

    상용은 잠시 침묵했다 대답했다. 

    “예.”

    이때 내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공공이 발을 걷자 태의원 원사가 경박스러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정전이 술렁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전부 목을 길게 빼고 쳐다보았다. 

    ‘치료가 다 된 걸까? 황제께서 목숨을 건지셨나?’

    태후와 황후가 기대하는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고, 강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멀쩡하다면 아직 빠져나갈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만일 황제가 죽는다면 오늘 이 일은 명실상부한 황궁의 이변이 되어 쌍방이 어쩔 수 없이 죽고 죽이게 될 것이다.

    원사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마마, 폐하의 상처는 이미 지혈되었습니다. 다만 자객이 비수에 독약을 발랐는데 신하들이 아직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잠깐은 깨어나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라?”

    태후는 몹시 놀랐고 황후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언제쯤 해독할 수 있단 말인가?”

    원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대방이 사용한 독이 신이 본 적이 없는 것이라 병증을 찾아서 가려보아야 합니다. 신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태후는 눈앞이 캄캄해져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마마! 마마!”

    모두 한바탕 부산을 떨었다. 조금 정신을 차린 태후는 대장공주를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봉접, 우리 팔자가 왜 이렇게 고달픈 것인가!”

    혼수상태에 빠진 황제는 태후에게 선대 황제가 병석에 누워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기다리다 보면 늘어가는 것은 절망뿐이었다. 

    비록 황제의 출신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어쨌든 커가는 것을 지켜본 아이였다! 자신은 정말로 이렇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인가?

    반면, 강왕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설령 황제가 혼수상태로 누워있기만 하더라도 형세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강왕부에도 만회할 여지가 있다.

    태후는 극도로 분노해 강세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말해라! 무슨 독을 넣은 게냐?”

    정국공이 앞으로 나가 강세안의 목을 움켜쥐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태후께서 물으셨다. 솔직하게 답하지 못하겠느냐!”

    하지만 강세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입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상용이 나섰다. 

    “국공야, 죽이지는 마십시오.”

    정국공은 그제야 손을 놓았다.

    상용이 고개를 돌려 지시를 청했다.

    “마마, 이 자가 입을 열지 않으니 삼사에 심문을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태후가 승낙했다.

    상용이 다시 말했다.

    “폐하께서 아직 누워 계시니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해산하는 게 어떻습니까?”

    태후가 눈을 들어보니 궁전의 좌우로 선혈이 낭자했다. 방금까지 분노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피비린내가 이제야 나기 시작했다. 

    “그럼 강왕은…….”

    상용이 대답했다.

    “이대로 압송하여 삼사회심에 부치겠습니다.”

    태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게. 그리고 빨리 태의원에서 약리에 정통한 자들을 불러오게.”

    “예.”

    상용의 명령에 따라 조정 대신들은 차례대로 행궁에서 물러났다. 시종들은 궁전을 청소하고 정국공은 직접 강왕부의 두 부자를 압송해 갔다.

    행궁 안은 곧 평소와 같아졌다. 

    대장공주가 말했다.

    “올케, 슬퍼하지 마세요. 폐하가 이리되었으니 올케가 더 굳건히 버티셔야 해요. 강왕은 폐하의 친아비인데도 권세와 이익에 눈이 멀어 아들의 목숨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올케가 버티지 못하면 폐하한테는 정말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

    태후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황후.”

    황후가 눈시울을 붉히며 앞으로 나왔다.

    “신첩 여기 있습니다.”

    “너도 보았느냐? 정국공을 제외하고는 황제를 진심으로 보호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행궁은 아무래도 경성보다 안전하지 않은 것 같구나. 밖은 정국공이 지키고 있으니 안은 우리가 지키는 수밖에 없다. 네가 신비와 비들을 몇 명 불러서 교대로 황상을 지키거라. 하루 내내 전부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황후가 대답했다. 

    “무슨 지시를 하시든 신첩은 어머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황제가 있어야 그녀도 비로소 황후일 수 있었다. 지금 황제의 목숨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황후는 누구의 말이라도 따를 생각이었다.

    태후는 이런 것들을 다 처리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쉬러 갔다. 

    * * *

    상용은 사무를 처리하고 나서 강왕을 가둬 놓은 천막으로 갔다.

    “상 수상.”

    경관걸(耿冠杰)이 직접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상용이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수고가 많군, 자네도 잠깐 가서 쉬게!”

    경관걸이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게 제 직무인데 고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더구나 소신의 부친께서 아직도 주변을 순찰하고 계신지라 자식 된 도리로서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되지요.”

    상용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내심 정국공이 강왕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을 아꼈다. 

    “나는 강왕에게 질문하러 왔네.”

    경관걸은 두말없이 친위에게 장막을 걷어 올리라고 명령했다.

    “상 수상, 들어가시지요.”

    상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날이 아직 밝지 않은 데다 천막 안에 불도 켜놓지 않아 안은 온통 어두컴컴했다. 강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 수상, 자네 지금 누구에게 동조하고 있나? 혹여 부귀영화라도 도모하는 것인가?”

    * * *

    지온은 대장공주를 모시고 돌아가 그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정원으로 나왔다. 지온은 하늘 끝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루안이 그녀의 곁에 와있었다.

    “밤새 정신이 없었는데 안자고 뭐 하고 있소?”

    지온이 고개를 저었다. 

    “잠이 안 와요.”

    루안은 왜냐고 묻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온과 함께 있었다.

    “난 그가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지온이 갑자기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루안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생각해 본 적 없소.”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성에 막 도착했을 때 나는 그를 옥좌에서 끌어내려 강왕부가 저지른 악한 짓의 업보를 그 스스로 받게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소. 하지만 난 그를 죽게 할 생각까지는 없었지.”

    지온이 잠시 얼떨떨해하더니 물었다. 

    “그가 죽을 거란 말인가요?”

    “모르겠소.”

    루안이 냉정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칼에 독을 바른 걸 보면 배후의 주모자는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는 거요. 그런데 강세안이 실수를 저지른 거지.”

    “이걸 지시한 사람은 대체 누굴까요?”

    루안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우리 둘 다 마음속에는 답이 있지 않소. 그게 맞는지 아닌지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달려있겠지.”

    지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안은 곧 자리를 떴다. 강왕의 심문이 곧 시작될 예정이라 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여기서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온은 잠시 쉬었다가 대장공주를 모시고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황제가 있는 곳으로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