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76)화 (376/385)
  • 376화. 누가 그랬나

    행궁으로 들어선 대신들은 깜짝 놀라 얼어붙었다. 

    전돌 위에는 피가 흥건했다! 심지어 바닥에는 시체들까지 널려 있었다!

    ‘이렇게나 격렬했단 말인가? 그럼 강왕은?’

    궁전 입구에 이르자 마침내 강왕이 보였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지만 정국공 쪽 사람들에 의해 제압당해 있었다. 

    강왕은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큰 소리로 화를 냈다.

    “태후마마, 신은 폐하를 경성으로 보내 치료하려 하였을 뿐인데, 마마께서는 오히려 신이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하셨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신을 제거하시려는 겁니까?”

    강왕은 약삭빠르게 일부러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태후가 황제의 부상이 심한 기회를 틈타 황권을 가로채려 한다고 생각하게 할 심산이었다.

    대장공주가 콧방귀를 흥, 뀌며 말했다.

    “시비 좀 작작 거세요. 방금 우리를 모두 잡아들이라 한 사람은 누굽니까? 다들 한 번 보시게, 폐하께서 어디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인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본궁이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시오. 폐하의 상처가 크고,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어서 귀경하여 황위를 당신 가문에 넘겨줄 준비를 하려던 것 아닙니까?”

    하지만 강왕이 어찌 이 말을 인정한단 말인가! 그는 차갑게 말했다. 

    “대장공주,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십시오. 행궁의 설비가 빈약하기에 본왕이 폐하를 속히 귀경시켜 치료하려 한 것일 뿐입니다! 이건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부득이한 일 같은 소리 하네!”

    대장공주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상 수상, 자네가 사람들에게 좀 알려주시게. 폐하께서 위급한 상황이 되면 누가 그 업무를 맡아야 하나?”

    상용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첫 번째는 태후마마이고, 그다음은 황후마마입니다.”

    대장공주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들었나? 태후와 황후가 모두 여기 있는데 강왕은 두 사람의 명령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태후와 황후를 전부 잡아들이려 했네. 이게 역모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전 재상이 급한 마음에 사람들을 비집고 나와 말했다. 

    “마마, 전하께서 폐하를 경성으로 옮기시려고 한 건 옳지 않은 일이긴 했으나, 그것도 다 폐하의 상처가 걱정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장공주는 듣자마자 화를 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폐하께서 아직도 치료 중이신데 강왕은 태의도 약도 없이 갑옷을 입은 군사만 데리고 들어왔네. 거기에 무슨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인가?”

    대신들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사람들이 바보도 아닌데 강왕의 마음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황제가 비록 강왕의 아들이긴 했지만, 그에게 아들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장공주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이 말에 호응하는 순간 바로 강왕과 척을 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초조한 가운데 갑자기 누군가 뛰어들더니 울며 소리쳤다.

    “폐하! 폐하! 어찌 이렇게 다치셨습니까? 누가 폐하께 이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확인해보니 바로 유신지였다!

    유신지는 진심 어린 듯한 눈물을 흘리며 내전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황제 곁으로 달려갈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람들은 침묵했다. 

    ‘유 사인은 왜 이러는 거지? 슬픔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라도 이렇게까지 몰입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이건 너무 가식적인데!’

    유신지는 두어 번 울음소리를 내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강왕세자를 향해 의분이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제 알겠구나! 강왕세자, 세자께서 그러셨습니까?!”

    강왕세자는 자신이 잊힌 줄 알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지명을 받고 어리둥절해졌다.

    유신지는 당장 그에게 달려들기라도 할 듯이 말했다. 

    “세자께서는 질투 때문에 여러 번 불경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귀경한 이후로 여러 번 미리 알리지도 않고 폐하의 궁에 난입하셨지요. 심지어 폐하가 등극하시기도 전에 승원궁에 약을 묻어놓는 짓을 벌이는 바람에 폐하께서는 여태 자식도 보지 못하셨습니다. 

    세자께서는 당시에 자신이 아니라 폐하가 황위를 계승하게 된 것을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계셨을 겁니다. 여기 있는 조정의 모든 신하 중에서 세자 전하 말고 누가 또 폐하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매우 분개하며 격정적으로 말하자 모두 멍해졌다.

    ‘그래, 강왕세자가 얼마 전에 폐하를 해친 일로 한바탕 두들겨 맞았잖아? 그가 앙심을 품고 암살을 지시했다 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없지! 만약 이 일이 강왕세자가 한 짓이라면, 그럼……?’

    금군 중에 누군가 갑자기 나서더니 강세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강세안, 역시 당신이었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지온은 갑자기 튀어나온 이 군사를 보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자객이 강세안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 강세안이 자신들을 속이고 강왕부로 들어가 소현주를 만난 것을 보면 그가 이미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이 강세안에게 뭘 약속해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세안은 황제를 암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만약 황제가 죽는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강왕이 빠르게 대처해 변함없이 강왕부 출신의 황제를 세우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태후가 이 기회를 잡아 강왕부를 누르고 다른 황족에서 황제를 뽑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 강왕세자가 그 자리에 올라야만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강왕부로서는 엄청난 위기가 될 것이다.

    루안이 한동안 강왕세자와 밀접하게 왕래한 덕에 지온은 당연히 이 일이 그가 한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가 주모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왜 꼭 강세안을 써야 했을까? 황제를 시해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누가 손을 쓰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건 당연히 강왕부에 누명을 씌우기 위함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온은 이 군사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황제가 죽든 안 죽든 강왕부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무엄하구나!”

    전 재상이 꾸짖으며 말했다. 

    “여기가 어떤 자리라고 감히 네가 입을 여느냐?”

    루안이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전 재상께서는 뭘 그리 조급해하십니까? 이 자가 자객을 알고 있는 것 같고 마침 우리는 범인을 쫓고 있지 않습니까? 전 재상께서는 누가 폐하를 암살하려 했는지 알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전 재상은 뺨을 씰룩거리며 별수 없이 말끝을 흐렸다. 

    “본 재상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시라면 됐습니다.”

    루안은 그의 말을 가로막고 바로 태후에게 말했다.

    “마마, 이 사람이 자객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형부에 맡겨 조사하게 하시면 범인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네 말이 일리가 있군.”

    태후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설 상서.”

    “예.”

    설 상서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신이 곧 심문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냥 여기서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루안이 또 제안했다. 

    “그저 몇 마디 묻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말입니다.”

    설 상서는 태후가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 재상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리자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루안 이 자식!’

    그는 재빠르게 강왕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도 역시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설 상서는 그 군사에게 앞으로 나오라 한 뒤 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제국에서 가장 권세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선 군사는 황공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이름과 소속 병영을 말했다. 

    설 상서가 다시 물었다.

    “이 사람을 아는가?”

    그가 대답했다.

    “젊은 시절에 정해군에서 그와 안면을 튼 적이 있습니다.”

    “정해군?”

    설 상서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저 자가 정해군의 장병이란 말이냐?”

    “예, 나중에 정해군이 주둔하고 있던 상해를 해적이 습격하는 큰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그는 명령에 따라 해적들을 죽이러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인도 몇 년이나 지나고 나서 경성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상해에서 일어난 큰 사건…….’

    사람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태자가 사고를 당한 그 사건을 말하는 거지? 이 자객이 거기에도 연루되어있다는 말인가?’

    설 상서는 속으로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해 동안 사건을 처리한 직감으로 볼 때, 이건 절대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이미 아주 복잡한 국면인데 여기에 천자를 건드린 큰 사건까지 연루되어 버린다면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와중에 전 재상이 한 발짝 먼저 나서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이 자객이 탈영병이란 말인가?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황은을 저버리고 그런 대역죄를 저지르다니. 태후마마, 이 자를 압송하여 자세히 심문하시고 반드시 그의 배후 주동자를 밝혀내셔야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안이 또 입을 열었다.

    “전 재상 서두르지 마십시오. 아직 진술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태후가 그 군사를 쳐다보니 역시 뭔가 말을 하려다 멈춘 상태였다. 

    전 재상은 정말 루안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루안 저 자식은 왜 매번 무슨 말만 하면 튀어나오는 것인가! 훼방 좀 그만 놓지?’

    설 상서가 이어서 물었다.

    “저자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그 군사가 강세안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올해 초에 소인이 광명사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저 자가 그곳에서 일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인하더니만 나중에는 소인한테 추적당해 고발될까 두려웠는지 자기 사연을 말해줬습니다. 

    원래 그는 일찍이 호위병으로 일을 했었는데 그 집 아가씨와 남녀관계로 발전하여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애석하게도 서로 신분이 맞지 않아 그 아가씨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고 하고요. 저자가 이번에 돌아온 것은 딸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더니만 나중에는 광명사에서도 종적을 감춰버렸습니다.”

    설 상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자를 추적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진 못했나?”

    그 군사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게…….”

    그가 주저하는 모습을 본 대장공주가 호기롭게 말했다.

    “자네는 말만 하게. 배후에 누가 있든지 본궁이 자네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네.”

    그러자 군사가 안심하고 말했다. 

    “강세안이 실종된 후, 소인이 옛정을 생각해 광명사에 가서 확인해보던 도중에 어떤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강왕세자의 안색이 변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군사는 강왕세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이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날 강왕세자비께서 공교롭게도 소현주를 데리고 광명사에 향을 피우러 갔었는데, 나중에 강왕세자께서 사람을 보내 한참 광명사를 수색하며 강세안이라는 자를 찾았다고 합니다.”

    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휙 강왕세자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니까 그때 강왕부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 확실했다. 그 이후 강왕세자는 자신의 앞잡이였던 소달과 갑자기 사이가 틀어져 죽이려고 했다. 또한 세자비하고도 사이가 아주 나빠져서 거의 부인을 내쫓을 뻔했다. 하늘같이 총애하던 소현주도 갑자기 외면하기 시작했다. 

    강왕부의 권세가 대단하다 보니 자연히 많은 사람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왕부에서는 죽어라 숨겼지만, 소문은 늘 새어 나오게 마련이었다.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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