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75)화 (375/385)
  • 375화. 황실을 보호하다

    북양태비는 극도로 분노해 막 욕을 퍼부으려고 했다.

    “개떡같은 소리!”

    ‘응? 아직 나는 말을 하지 않았거늘?’

    북양태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제 입을 만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 대장공주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역시 내 숙적이라 할 만하구나!’

    대장공주는 화를 참지 못하고 강왕에게 찻잔을 집어던졌다.

    강왕은 이쪽을 방어하느라 저쪽까지는 신경을 못 쓰고 있던 터라 찻물을 뒤집어쓰고 벌컥 화를 냈다.

    “요봉접! 나도 어쨌든 자네 오라버니인데…….”

    “흥!”

    대장공주가 능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오라버니는 저기 누워 계시오! 당신이 왜 내 오라비란 말이오?”

    “너…….”

    대장공주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너는 무슨 너요? 역모를 꾀한 첫 번째 인물께서 여기서 다른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몰아갈 낯짝이 있단 말입니까? 제가 하나 알려드리지요. 북양 사람들은 내가 부른 겁니다! 당신이 자기 친아들 목숨조차 돌아보지 않아서 내가 다른 신하를 불러서 폐하를 보호하겠다는데 그것도 안 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태후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대 황제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내게 당부하셨습니다. 북양의 루씨 가문이 충성심이 강하니 만약 누군가 우리 집안사람들을 괴롭히면 북양을 불러 황실을 보호하라고 말입니다! 정국공, 똑똑히 들으셨지요?”

    태후는 괴롭힌다는 대목에서 상대의 체면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강왕을 노려보았다. 

    정국공은 번쩍하고 정신이 들어 큰소리로 대답했다. 

    “장군 여러분! 태후마마의 명령이오, 북양과 함께 폐하와 황실을 보호합시다!”

    그를 따라 들어온 장군들이 일제히 같은 소리로 화답했다.

    “예!”

    북양태비는 창을 휘둘러 루안을 둘러싸고 있던 자객들을 물리치고 큰소리로 말했다.

    “어미가 여기 있을 테니 너는 어서 가거라!”

    루안은 자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용맹스러운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상대를 교란하며 궁문 쪽으로 물러났다. 

    궁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등이 큰소리로 외쳤다.

    “공자를 보호하라!”

    북양에서 데려온 암위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 루안을 향해 손을 대려 하면 그들이 튀어나와 막았다. 

    몇십 보밖에 안 되는 짧은 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입구에 도착한 루안은 있는 힘껏 궁문을 밀었다. 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는 태후와 황후의 금인을 양손에 쥐고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조정 대신들과 금군 장군들을 향해 한 글자씩 말했다. 

    “태후마마와 황후마마의 명령입니다. 강왕이 폐하를 음모를 꾸며 해치려고 했으니 모든 신하는 속히 폐하를 호위하십시오!”

    이 말이 터지자 행궁 앞은 소란스러워졌다. 

    “뭐라고? 강왕이 폐하를 모해했다고?”

    “그 자객은 강왕이 보낸 것이었단 말인가?”

    “설마, 강왕이 아들이 황제가 된 것이 마음에 안 들어 자신이 직접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단 건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전 재상이 나서서 큰소리로 꾸짖었다.

    “루 통정, 거짓 명령을 전하는 건 죽어 마땅한 죄일세!”

    루안은 차갑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재상께서는 하관이 손에 들고 있는 금인이 안 보이십니까? 분명 두 분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명령을 따르지 않고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전 재상이 노기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강왕은 폐하의 친아버지인데, 무슨 이유로 폐하를 모해한단 말인가? 내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 금인은 어디서 났나? 자네 대체 태후마마와 황후마마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대신들은 잠시 조용해졌고 이내 대신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강왕이 겨우 자신의 혈통으로 대통을 이어받게 상황을 만들었는데 폐하께서 살아남기를 바라지, 왜 폐하를 모해하겠어? 자기가 그 자리에 오르고 싶어도 이런 서투른 방법을 쓰지는 않겠지!’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여강이 나서서 반박했다.

    “전 재상은 참으로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는 사후에 추궁할 일입니다. 지금 루 통정이 와서 전한 말은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재상께서 이 요청을 가로막는 건 무슨 속셈이십니까?”

    그는 말을 끝내고 몸을 돌려 신하들을 마주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이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릅니다. 당장은 폐하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이 맞았다. 만약 루안이 거짓말을 했다면 들어가자마자 바로 진실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금군은요? 어서 가서 폐하를 구해야 합니다!”

    “자, 우리도 들어갑시다!”

    전 재상이 어디 쉽게 들어가게 하겠는가? 루안이 나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고 그는 행궁 안에서 강왕이 우위를 점한 것이라 굳게 믿고 어떻게든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잠깐!”

    전 재상이 소리쳤다.

    “여러분 폐하께서 아직 응급처치를 받고 계시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면 어떡합니까? 폐하께 해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전 재상께서는 무슨 좋은 생각이 있습니까?”

    전 재상이 말했다. 

    “좀 전에 강왕께서 두 무리 정도를 데리고 들어가셨고 또 정국공이 현장에 계시니 두 무리 정도 더 있으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루 통정 생각은 어떤가?”

    루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너무 적습니다. 적어도 그 두 배는 돼야 합니다!”

    “두 배가 필요하면 두 배를 보내면 되지!”

    전 재상이 바로 대답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은 역시 서툴러. 벌써 걸려들었어.’ 

    그는 우쭐한 마음을 숨기고 금군 부대장 몇 명의 이름을 재빨리 불렀다.

    “……자네들이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가 보게!”

    “잠깐!”

    루안이 또다시 거부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로 바꾸십시오!”

    전 재상은 루안의 단호한 말투를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이 녀석, 이 사람들이 강왕 밑의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구나. 그래,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걸로 시간을 끌면 되고 동의한다면 강왕의 조력자가 많아지게 되는 셈이니 나야 나쁠 게 없지. 어쨌든 내가 이기는 싸움이야.’

    전 재상은 마음을 정하고 화가 난 척하며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라면서 왜 금군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가?”

    루안은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로 바꿔도 금군인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이 사람들은 아주 의심스럽습니다!”

    “뭐가 의심스럽다는 것인가? 자네야말로 내심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닌가?”

    두 사람은 큰 소리로 다투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에서 수상 상용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 수상, 이런 큰일은 수상께서 주관하셔야지 어찌…….”

    상용은 다른 뜻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서는 건 득 될 것이 없네.”

    시간이 점점 흘러갔지만 궁문 앞에서는 여전히 말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행궁 안은 갈수록 조용해졌고, 전 재상은 우쭐한 나머지 웃음이 다 새어 나왔다. 

    마침내 궁문이 다시 열렸다. 

    고개를 들어 행궁 안의 상황을 확인한 전 재상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고 그의 입가의 웃음도 얼어붙었다.

    북양태비가 창을 든 채 앞에서 길을 트고 있었는데 그녀의 전포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대장공주가 태후를 부축하고 나왔다.

    ‘북양태비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전 재상은 믿을 수가 없었다. 루안이 비웃듯이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일부러 그랬구나!’

    전 재상은 문득 깨달았다. 

    북양태비가 온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가 뛰쳐나온 이유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원병이 올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망설이던 조정 대신들은 태후가 나오는 것을 보고 갑자기 적극적으로 돌변했다.

    “태후마마?”

    “마마 괜찮으십니까?”

    “폐하는 어떠십니까?”

    “강왕은요?”

    대신들은 앞을 다투며 자신의 관심을 드러냈다.

    금군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강왕의 심복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왔다. 정국공 쪽 사람들이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후는 아무런 대답 없이 냉엄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행궁 문 앞은 점점 조용해졌다.

    루안이 앞으로 나가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신이 무능하여 원군을 데리고 가지 못하고 마마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태후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너무 유능했던 거겠지!”

    대신들의 시선이 즉시 그 ‘다른 사람’을 향해 던져졌다. 

    전 재상은 식은땀이 났다. 

    태후가 이렇게 말하니, 자신은 사죄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지금 사죄한다면, 강왕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상용은 이때가 되어서야 움직였다. 그는 앞으로 나가 예를 올리며 물었다.

    “마마, 송구하오나 폐하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전 재상은 일단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른 신하들과 함께 답을 기다렸다. 

    ‘황제는 도대체 살아있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강왕이 황제를 모해했다고 들었는데 태후가 지금 밖으로 나왔으니 혹시 강왕이 벌써……?’

    태후가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황후가 그녀를 대신해서 말했다.

    “폐하께서는 아직도 치료받고 계시네. 강왕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폐하를 귀경시켜야 한다며 우리를 모두 잡아서 가두겠다고 했다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길도 험난한데, 가는 길에 폐하께서 혹시라도…….”

    대신들은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차렸다.

    ‘어쩐지 강왕이 폐하를 모해하려고 한다더라니.’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강왕과 태후는 서로 철저히 등을 돌린 셈이었다. 더구나 폐하의 생사를 알 수 없으니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조정이 동요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떡하지? 줄을 서야 하나?’

    강왕의 세력이 좀 더 강하긴 했지만, 지금은 정국공이 금군을 장악하고 있어서 태후 쪽도 승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강왕이 경성을 떠난 지 이미 4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정사당의 몇몇 재상들은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어 전부 강왕을 지지한다고 보기 힘들었다.

    대신들이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누군가 분개하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께서 중상을 입으셨는데 어찌 함부로 움직인단 말입니까? 강왕께서 이렇게 행동하시는 저의가 뭡니까?”

    대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뜻밖에도 여강이었다!

    ‘여 학사(学士)는 용기가 정말 대단하군. 이렇게 빨리 줄을 서다니!’

    전 재상은 이 말을 듣고 구석에 조용히 있으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강왕을 대신해 변명하느라 바빴다.

    “태후마마, 서둘러 판단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 어찌 폐하를 해치겠습니까? 아마 무슨 오해가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전하를 나오라고 해서 직접 물어보시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태후와 황후가 무사하다면 강왕은 어떻게 된 걸까?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방금 사람들을 꽤 많이 데리고 들어갔잖아! 하지만 정국공도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긴 하지…….’

    대장공주가 그를 차가운 얼굴로 비웃었다. 

    “전 재상은 정말 강왕에게 관심이 많은가 보군. 폐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질 않고 강왕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니.”

    대장공주는 그에게 변명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올케, 그럼 직접 보게 해줄까요?”

    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용에게 눈을 돌렸다.

    “상 수상, 무슨 할 말이 있나?”

    상용은 다시 몸을 굽히며 말했다. 

    “신,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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