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74)화 (374/385)
  • 374화. 누가 역모를 꾀했나

    강왕이 명령하자 뒤에 있던 장병 몇 명이 앞으로 나왔다.

    지온이 상황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태후마마께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대장공주도 그녀의 외침에 정신이 든 듯 목소리를 높였다. 

    “강왕, 지금 역모를 꾀하는 겁니까?”

    맞든 아니든 간에 우선 죄명을 씌우는 것이 시급했다!

    강왕은 분노에 차 웃으며 말했다. 

    “본왕의 눈에는 당신들이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지온이 즉시 대꾸했다. 

    “전하의 말씀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태후마마와 대장공주마마께서는 과부이십니다. 두 분 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데 역모를 꾀한다고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전하와 세자 전하는…….”

    지온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그것이 되레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강왕세자가 크게 화를 냈다.

    “아무 근거도 없이 함부로 사람을 모함하는구나!”

    루안이 웃으며 말했다.

    “제 아내가 모함한 것인지 아닌지는 세자 전하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정말 하관이 입을 열어야겠습니까?”

    강왕세자는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얼굴색이 변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강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눈이 딱 마주치자 제 발이 저린 듯 고개를 숙였다. 

    이쯤 되자 강왕은 더 이상 그들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아무리 말로 그럴듯하게 꾸며댄대도 본왕은 반드시 폐하를 경성으로 모셔 치료하게 할 것이다.”

    그러고는 즉시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뭣들 하느냐?”

    사람들이 잠시 주저하자 그의 뒤에 있던 장수들이 대답했다.

    “예!”

    그들은 대답하긴 했지만 아까보다 더 망설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하는 행동이 정말로 역모인 걸까?

    정국공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러분, 나는 황제 폐하의 은혜를 입어 천하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소이다. 난 내 충성심에 의지하여 일을 하고 있지요. 당신들은 정말로 충심을 버리고 역적과 한패가 되려는 거요?”

    부통령 주호(周虎)는 강왕에게 충성하는 자였다. 이때 그가 나서며 반박했다.

    “국공야, 지금은 누가 역적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강왕 전하는 폐하의 친아버지이시니 당연히 폐하를 생각해서 계획을 세우셨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오히려 폐하의 귀경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저의가 뭐란 말입니까?”

    정국공이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중상을 입으시면 나라의 관리는 당연히 태후마마께서 맡으셔야 하네. 그 어떤 경우에도 친아버지에게 차례가 돌아가는 법은 없지. 만약 뭔가 불경한 일이 생긴다면 우리 경씨 가문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폐하를 보호할 걸세!”

    정국공은 눈을 번뜩이며 검으로 눈앞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너희들이 감히!”

    당연히 강왕은 감히 불경한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가 손을 들자 주호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돌진했다. 

    정국공이 앞으로 나와 친위대를 거느리고 궁을 지켰다.

    태후는 분노하여 강왕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폐하를 치료하는 중인데, 폐하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겁니까!”

    강왕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본왕이 폐하의 생사를 걱정하기 때문에 폐하를 모시고 경성으로 돌아가려는 겁니다.”

    황제가 행궁에서 죽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황제가 죽기 전에 자신들이 경성을 장악해야지만 황제의 죽음이 가치가 있었다. 

    대장공주가 차갑게 말했다.

    “올케, 저 사람과 무슨 말을 하겠어요? 저런 인간이 무슨 양심이 있다고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장군들은 들어라! 강왕이 폐하의 부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역모를 꾀하려 하였으니, 그대들은 속히 폐하를 보호하고 강왕을 생포하라!”

    정국공과 다른 사람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루안이 덧붙였다. 

    “태후마마, 금군은 아직 강왕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모르니 인신(*印信: 관청에서 사용하던 공인 도장)을 보여 주십시오. 신이 즉시 가서 알리겠습니다.”

    태후는 망설임 없이 금인(金印)을 꺼내 던졌다.

    루안이 출발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황후가 그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자신의 금인(金印)을 풀었다. 

    “루 통정, 이걸 들고 가면 사람들이 더 쉽게 명을 따를 걸세.”

    루안은 급히 주먹을 말아 쥐고 인사하고는 대답할 틈도 없이 몸을 돌려 궁문으로 달려갔다.

    강왕세자는 이를 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저놈을 막아라! 저놈이 우리 쪽 사람들을 알고 있다!”

    강왕세자는 일전에 루안을 포섭했다고 착각하고 금군에 심어둔 자기 쪽 사람들을 모두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분명 루안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지금 자신의 군대는 반신불수나 다름없었다. 

    이를 깨달은 강왕은 정말 강왕세자를 걷어차버리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일을 성사하게 돕기는커녕 되레 망치다니!”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강왕은 루안을 가리키며 흉악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자를 막아라, 즉시 죽여라!”

    “예!”

    강왕부에서 일찌감치 배치해놓은 자객들이 사방에서 몰려나와 루안을 죽이려고 했다. 

    태후가 깜짝 놀라 큰소리로 외쳤다.

    “황성사(*皇城司: 궁궐을 호위하고 정보를 정탐하는 군인)! 어서 루 통정을 지켜라!”

    곁에 잠복해 있던 암위도 돌진했다.

    황제가 즉위한 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황성사는 이미 강왕부 쪽에 포섭된 상태라 오히려 형세가 불리해졌다.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루안이 포위된 것을 보고 태후는 초조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지온은 침착한 표정으로 태후와 황후를 자신의 뒤로 보내며 말했다. 

    “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사람이 못하면 아무도 못 합니다.”

    그러고 나서 지온은 몸에 지니고 있던 대나무 호루라기를 꺼내 힘껏 불었다.

    * * *

    행궁 밖에서 한등이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고찬을 툭 밀치며 말했다. 

    “들으셨어요? 부인께서 도움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고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

    한등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가요, 얼른 들어가야지요.”

    고찬이 그를 붙잡으며 꾸짖었다.

    “자네 바보인가? 강왕이 방금 들어갔네. 안에 분명히 사람이 많을 거야. 우리는 지금 몇 명밖에 없지 않나!”

    한등이 생각해봐도 그 말이 맞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들었지, 사람들을 불러와!”

    밤바람이 부는 가운데 누군가 대답했다.

    “몇 명이나 부를까요?”

    “있는 대로 다 불러!”

    * * *

    행궁에서 루안은 강왕의 시위 중 한 명을 걷어차 손에 있던 칼을 빼앗았다. 루안은 그 칼로 시위를 찔렀는데 루안 자신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강왕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 통정, 이 정도 솜씨라면 북양에서 적을 무찌르고 공을 세워야 하는데, 경성에 남아 있으니 아주 억울하겠구먼!”

    루안이 칼을 뽑아내자 선혈이 온몸에 튀었다. 하지만 루안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틀리셨습니다. 전하. 지금 하관이 하는 일이 바로 적을 무찌르고 공을 세우는 일이 아닙니까?”

    루안은 그의 아버지를 많이 닮아 있었다. 루안이 손에 검을 쥔 채 피로 물든 옷을 입고 서 있으니 강왕은 마치 북양왕 루연이 거기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강왕은 자기도 모르게 눈꺼풀을 부들거리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죽여라, 어서 죽여라!”

    그의 이런 반응을 본 루안의 눈에도 살기가 비쳤다. 루안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전하, 뭘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혹시 저의 부왕이 생각나십니까?”

    강왕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

    강왕은 루연을 두려워했다. 30년 전, 강왕은 일찍이 곽씨 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군대의 인맥을 얻고 싶어 했었는데, 아쉽게도 곽여단이 먼저 루연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때는 그도 아직 젊었고 마음속에 소년의 호기로움이 남아 있어서 늘 루연과 승부를 겨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을 사냥을 하는 때가 되어 드디어 구실을 찾았는데…….

    그 일은 아무도 몰랐다. 루연은 아마도 강왕 자신의 신분 때문에 껄끄러워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강왕의 마음속에서 그 일은 평생의 오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4년 전 거사를 준비할 때 북양에 심어둔 첩자에게 먼저 루연을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었다. 

    강왕이 큰소리를 쳤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본왕이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이냐!”

    루안은 못 들은 것처럼 차갑게 웃으며 그를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를 죽이고 우리 형제를 반목하게 했으니, 아주 의기양양하시겠습니다?”

    강왕은 확실히 우쭐한 기분이 들긴 했었지만, 그 일을 자신이 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허튼소리만 늘어놓는구나! 너희들은 뭘 하는 게냐? 빨리 죽여라!”

    “누굴 죽인다는 겁니까?”

    갑자기 어디선가 여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강왕은 고개를 돌려 태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지만 거기에는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 

    뒤이어 누군가 궁전의 문을 발로 차 열었다. 북양태비가 붉은 수술이 달린 창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밤바람이 그녀가 걸친 전포(*战袍: 장수가 입는 긴 겉옷)를 날리자 살기가 훅 끼쳤다.

    “곽여단!”

    강왕은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

    ‘그녀가 몰래 따라왔단 말인가?’

    “어머니? 어찌 오셨어요?”

    루안 역시 깜짝 놀랐다. 

    북양태비가 루안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날 내가 안 따라갔더니 네 부왕께서 돌아가셨다. 이번에 안 따라오면 아들마저 없어질 것 아니겠느냐?”

    루안은 아무 말이 없었다.

    “…….”

    루안이 어디 그리 나약한 사람이던가? 밖에는 이미 루안이 배치해둔 사람들이 있었다!

    북양태비는 루안의 해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창으로 강왕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왕 너 이 새끼! 내 남편을 죽이고 내 아들까지 해치려 하다니, 우리 북양과 너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북양태비를 따라 쳐들어온 암위를 본 강왕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북양에서 경성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배치해두었단 말이냐?!”

    그는 갑자기 깨닫고야 말았다. 

    ‘형제가 반목한다느니, 천 리 밖까지도 추격해 죽일 거라느니 하는 말들은 전부 거짓말이었구나! 루안이 경성에 잠복한 건 바로 이런 날을 위해서였어.

    어쩐지 첫째가 귀경한 뒤에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두 형제간의 골이 갈수록 깊어져 물과 불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했더니, 처음부터 이놈의 계략에 당한 것이로구나!’

    “예전에 태조 황제께서 많은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씨 가문에게 북양을 나누어 주셨지. 최근 몇 년 동안 북양의 백성들은 전하가 있는 줄은 알지만, 폐하가 있는 줄은 모른다는 탄핵이 누차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종황제와 선대 황제께선 아무런 조건 없이 너희들을 믿어주셨다!

    그런데도 너희 북양은 오래전부터 불충의 마음을 품고 우리 요 씨(姚氏)의 강산을 집어삼키려 하는구나! 너희가 영종황제와 선대 황제를 볼 낯이 있단 말이냐?”

    강왕이 고개를 돌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국공은 충성심이 강한 분이 아니셨소? 저들이 이렇게 대놓고 역모를 꾀하는데 죽여야 하지 않겠소?”

    정국공은 뭔가 말을 하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루안을 믿고 있었지만 강왕의 이 말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

    루씨 가문은 이성왕(*异姓王: 성씨가 다른 왕)이기에 당연히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피해야만 했다. 몰래 경성에 사람을 배치해두는 것은 확실히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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