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73)화 (373/385)
  • 373화. 대립

    루안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한등! 한등!”

    입구에서 자고 있던 한등이 깜짝 놀라 데굴데굴 구르더니 기어서 일어났다. 

    “예, 공자님!”

    “무슨 소리가 난 것 같구나. 빨리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해봐라.”

    “예.”

    한등이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막사를 나갔다.

    루안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심장이 아주 빨리 뛰는 것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가 막 옷을 챙겨 입었는데 한등이 돌아왔다. 그의 안색은 아주 나빴는데, 목소리도 변해있었다.

    “공자님, 큰일이 났습니다! 폐하께서 자객에게 당하셨답니다!”

    “뭐라고?”

    루안의 얼굴색이 확 변했고 급하게 행궁으로 달려갔다.

    ‘강세안이야, 분명히 강세안이야!’

    뜻밖에도 그의 목표는 강왕이 아니라 황제였다.

    ‘그가 뭘 하려는 걸까? 아니지, 그를 사주한 사람이 뭘 하려는 걸까?!’

    루안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루안이 행궁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때마침 도착한 유신지와 마주쳤다. 

    “무슨 일인가?”

    그가 물었다. 

    유신지 역시 이마가 땀범벅이었고 초조함에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도 막 도착했네!”

    두 사람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가로막혔다.

    문을 지키는 부사령관이 말했다.

    “소환령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황제의 암살 시도가 알려지자 행궁에서는 즉각 주변을 통제했다. 관례에 따르면 지금 모든 일의 주관은 당연히 태후가 맡아야 했다. 하지만 강왕의 세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태후를 무시하고 건너뛰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루안은 애가 탔다. 지금은 궁으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할 수 없어서 어떻게 해도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많이 다쳤을까? 살아남을 희망은 있나?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대장공주가 도착했다.

    부사령관이 앞으로 나와 제지했지만, 대장공주가 그의 뺨을 때리며 뿌리쳤다.

    “본궁이 폐하의 유일한 친고모인데도 못 만난다는 말이냐?”

    그녀의 기세가 엄청난 데다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부사령관은 잠시 망설였다. 결국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대장공주는 지온의 부축을 받으며 궁 안으로 들어갔다.

    지온은 고개를 돌려 루안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이 침전에 들어가니 황제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태의가 다급하게 치료하고 있었고 태후와 황후는 한쪽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올케!”

    대장공주가 소리쳤다.

    태후는 그녀를 보고 바로 울기 시작했다. 

    “봉접!”

    대장공주가 황급히 그녀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폐하는 어떠신가?”

    황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폐하께서 가슴에 칼을 맞으셨습니다. 태의의 말로는 다행히 빗겨나가 심장을 찌르지는 않았지만 다른 장기를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다 합니다…….”

    여전히 생명이 위험하다는 얘기였다.

    대장공주는 한편으로는 걱정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금군이 이렇게 많은데 어찌 자객이 잠입한단 말이냐?”

    호은은 한참 전부터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땅에 머리를 찧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 소인의 잘못입니다. 폐하께서 선대 황제의 친필이 적힌 비석을 보시고 더러우니 닦으라고 하시기에 소인이 폐하를 혼자 두고 갔습니다…….”

    “자객은?”

    “정국공이 잡으러 갔습니다.”

    * * *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강왕은 한창 깊이 잠들어있었다.

    길 내관은 어쩔 수 없이 그를 깨웠다. 

    강왕은 소식을 듣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뭐? 폐하께서 자객에게 당했단 말이냐? 살아 계시느냐?”

    “예.”

    길 내관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행궁은 이미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라 폐하의 생사는 알 수 없습니다.”

    강왕은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나 옷을 입었다.

    만약 금군통령 자리에 아직 소달이 앉아 있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자신에게 보고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계엄령이 내려진 뒤에야 알게 될 리가 있었겠는가?

    ‘이게 전부 첫째 그놈이 해놓은 작품이지!’

    강왕은 이런 생각을 하며 허리띠를 맸다. 그의 마음속에 의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황제를 암살하면 누구에게 이득이 된단 말인가? 지금은 정사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니 신하들이 한 짓은 아닐 것이다. 그럼 황족 중에서…….’

    “아버지! 아버지!”

    막사 밖에서 강왕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으셨습니까? 여섯째가…….”

    강왕은 장막을 젖히고 그를 발로 차며 욕을 마구 지껄였다.

    “못난 놈! 어쩐지 네 놈이 요 며칠 유난히 비위를 맞춘다 했더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로구나!”

    강왕세자는 그에게 차인 뒤 얼이 빠진 듯이 말했다. 

    “아버지?”

    “부인하려는 게냐?”

    강왕은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네 얼굴의 웃음기부터 걷어치우고 아니라고 해라!”

    강왕세자는 얼굴을 더듬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버지, 정말로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황제가 자객에게 당했다는 말을 듣고 분명 기쁘긴 했지만, 이건 정말로 자신이 한 짓이 아니었다!

    강왕은 차가운 눈길로 강왕세자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강왕세자는 그냥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지금 같은 때 여섯째를 죽인다고 저한테 이로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 제 명성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여섯째가 죽었다고 그 자리가 저한테 넘어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은 사실이었다. 

    강왕은 그제야 그에 대한 의심이 잦아들었지만, 오히려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맏이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그게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지금은 현장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강왕이 소리쳤다.

    “여봐라! 주호(周虎)를 불러라!”

    * * *

    태후와 대장공주가 병세를 묻고 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갑옷을 입은 것이 분명한 한 무리의 군사가 갑자기 난입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강왕이었다.

    대장공주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강왕,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강왕은 서늘한 눈빛으로 궁전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당연히 폐하를 호위하기 위해 온 것 아니겠습니까. 태의, 폐하의 부상은 어떤가?”

    태의는 저쪽을 한 번 쳐다보았지만, 강왕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폐하의 폐에까지 상처가 났습니다. 아직 위험한 상태입니다.”

    강왕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든 희망을 황제에게만 걸어 둘 수는 없어. 살아남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다른 계획을 세워 두어야 해.’

    그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주호, 황제의 의가(*仪驾: 황제의 가마)를 찾아서 속히 폐하를 귀경하시게 해라.”

    이런 그의 모습을 본 태후는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태후는 손으로 강왕을 가리키며 말했다.

    “황제의 친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이 이렇게 다쳤는데, 또 폐하를 힘들게 하려는 하는 겁니까? 혹시라도 가는 길에…… 그럼 어떡할 겁니까?”

    강왕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궁에나 틀어박혀 있는 부인과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경성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께서는 뭘 그리 조급해하시는 겁니까? 폐하는 지금 중상을 입으셔서 쉽게 움직이실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정국공이 자객을 추적하러 갔는데 그것도 못 기다리신단 말입니까?”

    강왕이 눈을 돌려보니 이 말을 한 사람은 지온이었다. 강왕은 더욱 경멸하는 태도로 말했다. 

    “너는 뭐 하는 물건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나서서 말을 하는 게야?”

    지온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소첩은 폐하의 백성입니다. 폐하의 목숨을 지키는 일인데 어찌 말도 못 하게 하시는 겁니까?”

    강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는 계속 말했다.

    “오히려 전하께서 지금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고 계십니다. 폐하께서 당신의 혈육이시라 병문안을 오신 거라면 완전 무장을 한 군사들을 데리고 오신 의도는 무엇입니까?”

    “너!”

    강왕은 분개했다. 이 여자가 면전에 대놓고 자신의 속셈이 음흉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온은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이어서 말했다.

    “아니면, 전하께서는 일찌감치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을 하시고 이날만을 기다리신 겁니까?”

    이에 강왕의 화가 폭발했다. 지온의 말은 이 일이 자신이 꾸민 짓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한 짓이 아닌 건 둘째 치고, 설사 정말로 자신이 한 짓이더라도 저 계집이 욕할 자격 따위는 없는 것이다!

    강왕이 힐끗 눈짓하자 시위가 앞으로 나와 지온을 붙잡았다.

    “어딜 감히!”

    대장공주가 칼을 뽑아 들고 나서 싸늘한 눈초리로 맞대응하며 말했다.

    “감히 내 딸을 감히 건드리면 내가 먼저 너를 벨 것이다!”

    시위는 그녀의 기세에 두려워하며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강왕을 쳐다보았다.

    강왕이 냉담하게 말했다.

    “그럼 전부 다 잡아들여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왕께서 아주 위풍당당하시군요. 누굴 잡으라 하시는 겁니까?”

    고개를 돌려본 강왕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정국공…….”

    정국공이 성큼성큼 걸어오자 뒤에 있던 친위가 한 사람을 압송해 왔다. 

    “꿇어라!”

    친위가 발로 차서 그 사람을 땅에 꿇어 앉혔다.

    강왕세자는 그의 얼굴을 보고 의아해했다.

    ‘강세안? 어째서 강세안이?’

    정국공은 안을 한 번 훑어보더니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자 전하께서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혹시 이놈을 아십니까?”

    강왕세자는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며 말했다.

    “중상 모략하지 마십시오, 본 세자가 어찌 저놈을 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까?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요!”

    강왕세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일은 증인이 없어. 또 누가 있겠…….’

    그런 그의 눈에 루안이 들어왔다. 

    루안은 천천히 걸어와서 그에게 예를 올렸다. 

    “세자 전하.”

    강왕세자는 그제야 깨닫고 화가 극에 달했다.

    “루안 네 이놈, 감히 본 세자를 속이다니!”

    루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세자 전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하관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강왕세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강왕이 바로 곁에 있는데 은밀히 루안을 매수하려 했던 일을 어찌 입 밖으로 낸단 말인가. 그럼 루안이 부왕에게 자신이 다른 마음을 먹었다고 고해바칠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루안이 조리 있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개월 전, 당시 금군 부통령 소달이 갑자기 하옥된 일이 있었는데, 폐하께서 이 사건을 하관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하관이 심문하다가 뜻밖에 기이한 일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정국공이 아주 적절하게 한 마디 받아쳤다. 

    루안이 말했다.

    “소 장군이 하옥되기 전에 광명사에 갔었는데 공교롭게도 강왕세자비가 누군가와 밀회하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가 그 사람의 용모를 그림으로 남겼는데 바로 저렇게 생겼습니다.”

    “오!”

    정국공이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세자비는 정숙한 성품이라 사사로이 밀회를 즐기는 사람이 아닐세. 소달이 일부러 세자 전하를 물어뜯으려 한 거겠지. 세자비를 만나러 왔다면 아마 뭔가 중요한 명령이 있었을 게야.”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는 분명 강왕부의 자객일 겁니다.”

    루안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정정했다.

    “세자 전하께서 따로 육성한 자객이겠지요.”

    강왕세자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루안, 이놈은 정말 악랄했다. 그가 고의로 말을 이렇게 꾸며대도, 자신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강세안과 원한이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게 무슨 원한이야? 바람피우는 부인을 뒀다고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 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국공이 강왕을 바라보았다.

    “전하, 들으셨습니까? 저는 물론 전하를 믿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세자 전하의 혐의가 없어지고 일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강왕부에서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니 폐하를 경성으로 모실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폐하의 일은 당신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강왕은 듣자마자 비웃으며 말했다.

    “이번 제사 행렬은 태후마마의 뜻이었습니다. 본왕은 당신들이 폐하를 모함하여 해치려는 의도로 귀경하여 치료하지 못하게 일부러 시간을 끌며 방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듭니다. 여봐라, 이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상황이 이 지경인데 누가 법도나 따지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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