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72)화 (372/385)
  • 372화. 그는 뭘 하려는가

    루안은 강왕의 막사 부근으로 갔지만 강세안을 찾지 못했다. 도리어 강왕부 시위의 주의만 끌게 된 그는 일단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공자, 강세안이 온다고 해도 강왕부 사람들을 공격할 텐데 왜 공자께서 그리 긴장하시는 겁니까?”

    루안이 말했다. 

    “며칠 전에 강세안이 강왕부에 소리 소문 없이 잠입했는데 지금은 또 조용히 제사 행렬에 섞여 들어왔다. 그 사람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어. 누군가가 그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한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공자께서 딸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하니 기꺼이 우리를 위해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보면 그때 분명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땐 나도 강왕세자비가 강왕세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을 줄은 몰랐다. 일이 그렇게 되다 보니 강왕부에 잠입해서 사람을 빼내오는 건 너무 위험해서 그의 딸을 구해줄 수가 없었지. 그래서 다른 사람의 꾐에 넘어간 것 같구나.”

    한등이 분개하며 말했다.

    “공자께서 몇 달 동안 그를 보호해주고 또 사람을 보내 소현주의 안위까지 살펴주셨는데, 어찌 그리 사리 분별을 못 한답니까?”

    “인간으로서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니 그걸 비난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루안은 담담하게 한 마디하고 화제를 돌렸다.

    “강왕부에 잠입하는 것이든 제사 행렬에 잠입하는 것이든 전부 쉬운 일은 아니야. 다시 말하면 그를 돕는 사람의 힘이 작지 않다는 소리지.”

    경성에서 4년을 지낸 그 역시도 강왕부에 잠입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큰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계획 역시 작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안이 긴장하는 이유였다.

    한등이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강세안은 권력도 없고 병력도 없는 사람인데 상대는 그를 매수해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요? 쓸 거라곤 그저 무공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강세안은 무공이 쓸만했다. 그가 정해군에서 밀정을 하기도 했고 또 강호에서 여러 해 방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를 사주해서 강왕을 암살하려는 걸까요?”

    한등이 손뼉을 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공자, 그럼 우리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이고!”

    루안이 그의 이마를 때리고 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말했다.

    “꿈도 야무지구나. 강왕을 죽이면 누가 이득을 보는데?”

    “…….”

    한등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강왕부에서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니 원한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게 아니겠습니까, 복수하려는 건지 누가 압니까?”

    루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헛꿈 그만 꾸고 할 일이나 해라!”

    “아.”

    한등은 잔뜩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사람을 찾으러 나갔다. 

    루안은 등불 밑에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강세안을 찾지 못한다면 이 모든 생각은 그저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에는 대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사람이 많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강세안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 * *

    황후는 태후를 모시고 황제를 보러 갔다가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류명주를 불렀다. 

    황제는 류명주와 함께 식사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비로소 웃었다. 

    “밤이 깊었다. 내일 대제가 있어 너를 곁에 두기 어려우니 어서 가서 쉬도록 해라.” 

    황제가 말했다.

    류명주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 먼저 주무십시오. 폐하께서 잠이 드시면 돌아가겠습니다.”

    황제가 손사래를 쳤다. 

    “짐이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내일 종일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니 지금 잘 쉬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짐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가거라.”

    류명주가 감동한 얼굴로 일어나 인사했다. 

    “폐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신첩은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 * *

    류명주가 간 후, 황제는 소희의 시중을 받으며 잠시 정리하고 쉬었다.

    행궁은 바로 산 아래에 있어서, 밤바람이 찼다. 황제는 잠이 들었지만, 점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때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와 황제는 소름이 쫙 끼쳤다.

    황제는 얕은 잠을 자다가 결국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호은아! 호은아!”

    그가 소리쳐 불렀다. 

    호은이 급히 침전으로 들어왔다.

    “폐하!”

    “혹시 울음소리를 못 들었느냐?”

    황제는 또 한참을 귀를 기울여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안 들리는구나?”

    호은은 이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황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게냐?”

    그의 물음에 호은이 고개를 들었고 빨개진 그의 눈이 보였다.

    황제는 그제야 깨달았다.

    “네가 울었단 말이냐? 까닭 없이 밤에 왜 울었느냐?”

    호은은 눈가를 훔치고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폐하 용서해주십시오. 방금 소인이 궁전 밖에서 선대 황제의 친필이 적힌 비석을 보고 선대 황제께서 살아 계셨을 때가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황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대 황제께서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었지.”

    “예, 소인이 막 궁에 들어왔을 때 잘못을 저질러 하마터면 대태감(大太监)에게 맞아 죽을 뻔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침 선대 황제께서 지나가시다 소인의 불쌍한 모습을 보시고 소인을 구해주셨습니다.”

    호은이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소인은 그제야 폐하를 곁에서 모실 기회를 얻게 되었고 사는 것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가 선대 황제 이야기를 꺼냈지만, 황제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선대 황제께서는 인자하신 분이니 네가 이리 오랫동안 기억하며 힘들어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실 게다.”

    황제는 어차피 잠에서 깨버려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네가 말한 비석이 어디에 있느냐?”

    호은이 손을 뻗었다. 

    “행궁 밖에 있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옷을 입고 침전에서 나왔다. 

    행궁은 경비가 삼엄했다. 금군이 안에서 3겹, 밖에서 3겹으로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황제는 따로 사람을 부르지 않고 호은에게 초롱을 들려 천천히 산책하듯 거닐기 시작했다. 

    행궁을 나서자마자 누군가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냐!”

    순찰하던 군사가 이쪽의 등불을 보고 경계했다.

    호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폐하께서 여기 계시네.”

    순찰 소대의 대장이 사람을 이끌고 왔다. 정말 황제인 것을 본 그는 황급히 몸을 낮추고 인사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짐은 여기서 좀 걸을 테니 자네들은 가서 일 보게.”

    호은이 덧붙였다. 

    “폐하께서는 선대 황제의 친필이 적힌 비석을 보러 가시는 걸세. 어, 바로 저기라네.”

    순찰대장이 살펴보니 그 비석은 행궁 옆에 있고 그들이 순찰하는 길 위에 있었다. 주위에 수상한 사람은 없으니 안전할 것 같았다. 그는 별말 없이 공수하며 인사했다. 

    “예!”

    군사들은 계속 순찰을 하고 황제는 천천히 비석 앞으로 걸어갔다. 호은이 초롱을 들어 비석 위의 글자를 비췄다. 

    황제가 고개를 들고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선대 황제의 친필이로구나.”

    그는 어린 나이에 입궁했기 때문에, 강왕부 쪽이 친부모라는 걸 알고 있는 것 외에는 황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더구나 강왕이 냉담하고 엄숙했던 것에 반해 선대 황제는 상냥하고 친절했기 때문에 황제의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선대 황제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짐도 여기에 선대 황제 폐하의 친필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이렇게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데 네가 마음을 많이 썼구나.”

    황제는 감동했다. 

    호은이 소매를 들고 눈물을 닦으며 흐느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소인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의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 황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왜 또 그러느냐? 아무 일도 없는데 죽긴 왜 죽느냐?”

    호은이 빨갛게 변한 눈을 들었다. 

    “폐하께서 한동안 무슨 일이 있으면 계속 소희를 부르시기에 소인은 폐하께서 소인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황제는 얼굴이 뜨거워져 불편해하며 말했다.

    “너는 대총관(*大总管: 총괄 관리자)이라 내정 전체를 관리하고 있지 않으냐. 곁에서 시중드는 일 같은 것들은 어린 내관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런데도 너는 짐이 널 배려하지 않았다는 게냐!”

    호은은 깜짝 놀라더니 곧 표정이 밝아졌다.

    “알고 보니 폐하께서 소인을 배려해주신 거였군요. 소인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폐하를 오해했습니다. 소인 죽어 마땅합니다!”

    호은이 말하며 또 무릎을 꿇으려 하자 황제가 급히 부축했다.

    “됐다. 밖에서는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 없다.”

    “예, 폐하.” 

    호은이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한참 비석을 바라보았다. 호은이 손으로 비석을 닦으며 말했다.

    “밑에 진흙이 묻어서 좀 닦아야겠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대 황제의 유작인데 더러운 채로 두면 안 되지. 가서 두 사람만 불러와라.”

    호은은 망설였다.

    “그럼 폐하께서 혼자…….”

    황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금군이 여기 있는데 무슨 일이 있겠느냐?”

    호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인이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폐하. 잠깐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그는 초롱을 남겨둔 채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황제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서 있다 보니 주위가 칠흑같이 어둡고 밤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것이 왠지 으슬으슬해졌다. 능산(陵山)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저기 시체가 얼마나 많이 묻혀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털이 쭈뼛하고 서는 것 같았다. 

    ‘호은이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것이냐?’

    바스락바스락…….

    황제는 심장이 두근거려 초롱을 들고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냐?”

    황제는 금군이 부근에서 순찰하고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자신이 부르기만 하면 분명히 바로 달려올 것이다.

    발소리가 난 뒤 군화 특유의 쇳소리가 소리가 났고 이어서 쉰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를 놀라게 하다니. 소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금군인가?’

    황제는 어둠 속에서 사람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역시 갑옷을 입은 군사였다.

    황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자네 혼자인가? 다른 사람들은?”

    그 군사가 천천히 걸어왔다. 초롱을 비춰보니 수척하지만 준수한 얼굴이었고 전혀 흉악해 보이지 않았다. 

    “폐하, 소인 잠시 소변을 보러 나왔습니다. 폐하께서 여기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가 점점 가까워지자 황제는 본능적으로 조심하며 그를 제지했다. 

    “그럼 그만 돌아가게.”

    황제가 경계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군사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낮추며 예를 올렸다. 

    “예.”

    황제는 그가 뒤를 도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몸을 돌려 비문을 계속 보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두 척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황제가 초롱을 들어 올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황제가 옆을 돌아볼 새도 없이 칼 한 자루가 매섭게 황제의 가슴을 찔렀다.

    “아악!”

    비명이 어둠을 갈랐다. 

    순찰하던 금군이 즉시 황제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금군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자객은 두 번은 찌르지 못하고 몸을 돌려 도망갔다. 

    황제가 쓰러지자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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