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66)화 (366/385)
  • 366화. 반목

    경소소는 잠시 넋이 나간 듯 서 있다 고개를 돌려 유민에게 물었다.

    “지온 언니가 왜 저러지? 왜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야?”

    유민은 마음속으로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말하긴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지온 언니도 이제 결혼을 했고 부군도 돌봐야 하니, 바쁜 일이 많을 거예요. 당연히 예전과는 다르겠죠.”

    경소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루 통정 때문이라고?”

    유민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경 언니, 우리도 이제 가요.”

    경소소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마차에 오를 때까지 참고 있다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루 통정이 신임을 잃고 지금 네 오빠가 궁에 들어가 폐하를 모시고 있잖아. 그래서 지온 언니가 우리한테 화가 난 거라고? 믿을 수가 없네. 언니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유민도 믿지 않았다. 그녀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예민하게 눈치챘지만, 일단은 경소소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집으로 돌아와 유민은 유신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약속이 없던 유신지가 일찍 돌아와 있었던 덕분에 그녀는 헛걸음을 면할 수 있었다. 

    “큰 오라버니!”

    유신지는 자신도 법도를 잘 지키지 않으면서 허세를 부리며 여동생을 꾸짖었다.

    “이것 봐, 아주 천방지축이구나! 대체 어디가 양갓집 규수야.”

    유민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물었다.

    “내가 오늘 소소 언니랑 외출했다가 지온 언니를 만났거든. 근데 언니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지?”

    “어?”

    유신지가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상황이 어땠느냐? 자세히 말해 보거라.”

    유민은 당시 지온의 표정을 포함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유신지는 다 듣고 나서 웃음을 터트렸다.

    유민이 조급해하며 말했다. 

    “큰 오라버니! 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소소 언니는 그것 때문에 거의 울 뻔했는데 오라버니는 웃음이 나와! 웃을 거면 나중에 혼자 웃어!”

    유신지는 그제야 웃음을 거두고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다. 우리끼리 약속한 게 좀 있단다.”

    “아.”

    유민은 감탄을 내뱉었지만 큰오라버니의 말뜻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다면 다행이었다. 

    동생을 돌려보내고 유신지가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거 호흡이 너무 잘 맞는 거 아닌가?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가 강왕의 신임을 얻으려면, 당연히 루안과는 반목해야 했다. 

    * * *

    루안은 이번 휴가를 무려 열흘이나 받았다. 

    열흘 동안 그는 마치 자신이 이미 권세를 잃은 걸 전혀 모르는 것처럼 문을 닫아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열흘 후, 지온이 곁채에서 딴생각을 하며 부채를 부치고 있는데, 갑자기 정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드니 루안이 문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으로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지온은 그에게 다가가다가 차를 올리는 상에 부딪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상을 뒤집어엎을 뻔했다. 그녀는 그의 앞으로 걸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졌어요?”

    고찬이 뒤이어 약상자를 메고 나와 대답했다.

    “부인, 안심하십시오. 대인의 독은 이제 완전히 해독됐습니다.”

    지온은 믿을 수가 없어서 발돋움해 루안의 귀 뒤를 쳐다보았다. 정말 그 붉은 점이 보이지 않았다. 지온은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없어졌어, 드디어 없어졌어. 더 이상 그 빌어먹을 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지온이 달려들어 루안을 껴안는 것을 보고 고찬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물러갔다.

    시녀들도 자리를 피해 정원으로 갔다. 

    지온은 손을 거두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들 어디 갔지?”

    루안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다 나갔소.”

    지온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잠시 다른 건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게으름들을 피운다니까.”

    지온은 시녀들을 불러 목욕물을 준비하라 시켰다. 

    다 씻고 나서 그녀는 루안과 함께 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북양태비를 만나러 갔다. 

    북양태비는 그제야 루안이 요 며칠 동안 고생했다는 것을 알고 가슴 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 분노했다.

    대장공주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듣기로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 월월홍을 완전히 해독한 사람이 없다더구나. 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다.”

    루안은 그저 웃기만 했다. 

    “육체적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루안은 이미 오래전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

    4년 전 무애해각이 몰락하던 그날 밤, 루안은 은사가 참혹하게 죽는 것을 보았고, 사형과 사제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또 옥종화가 바다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녀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그리고 채 며칠 지나지도 않아, 그는 북양왕부로부터 부왕이 돌아가셨다는 급한 전갈을 받았다.

    루안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 태반을 잃게 되었다.

    그 후로 루안은 매일 밤을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추억 속에서 보냈다.

    그에 비하면 이 보잘것없는 독약 한 방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통정사.

    한 서기가 입에 떡을 물고 서류를 한 아름 안은 채 급하게 당직실로 가져가는 중이었다. 

    그는 오늘 늦잠을 자서 아침 먹을 겨를이 없었는데, 하필 통정사의 일은 곧장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일인지라,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떡 한 조각조차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서류가 너무 많아 힘겹게 끌어안고 불안하게 걸었다. 때마침 길모퉁이에 이르러 마주 오는 사람 그림자가 보이자 그가 얼른 소리쳤다. 

    “좀 비켜주십시오…….”

    그가 무심결에 입을 열자 입에서 떡이 떨어졌다. 그리고 서류에는 밀가루 얼룩이…….

    ‘망했네!’

    이때, 수건 하나가 날아와 서류를 덮었다. 그리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그를 누군가가 잡아주었다. 

    서기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상대방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어? 이 목소리…….’

    서기가 고개를 들어 보니 한동안 보지 못했던 루 통정이었다. 서기는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루, 루 통정, 돌아오신 겁니까?”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것들은 궁으로 보내는 건가?”

    “예.”

    서기는 서류를 복도에 있는 의자에 내려놓고 손을 뻗어 떡을 던져버렸다. 그는 수건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루 통정, 하관이 세탁해서 돌려드릴까요?”

    루안은 개의치 않고 계속 그에게 물었다.

    “오늘은 누가 입궐할 차례인가?”

    황제가 루안을 좋아했기 때문에 루안이 휴가를 내지 않았을 때는 루안이 전부 궁에 들어갔었다. 

    서기가 대답했다.

    “조(赵) 대인입니다.”

    그는 또 다른 통정이었다.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당직자인 조 통정이 자진 출두했다. 

    “루 통정, 오셨는가?”

    그는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몸은 좀 나아졌나? 루 통정, 이렇게 병약해서야 어찌 폐하의 신임을 감당할 수 있겠나, 정말 걱정이구려!”

    루안이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다 나았네. 조 통정이 이리 걱정을 다 해주다니 정말 고맙구려.”

    ‘누가 널 걱정했다고 그래?’ 

    조 통정은 입을 삐죽거리며 심부름꾼에게 서류를 받으라고 지시하고 루안에게 인사했다. 

    “루 통정, 휴가를 끝내고 막 돌아왔으니 무리하지 말게. 이것들은 내가 궁에 보낼 테니 루 통정은 안심하고 쉬게.”

    루안은 여전히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 통정은 가지도 않고 갑자기 생각난 듯 또 말을 꺼냈다. 

    “자네가 유씨 가문의 대공자와 사이가 좋다 들었는데? 유유상종이라더니 역시 틀린 말은 아닌가 보군. 전에는 루 통정이 폐하의 신임을 얻더니, 지금은 폐하께서 대공자를 아주 신임하신다네. 자네가 없는 동안 유씨 가문의 대공자가 있어 준 덕분에 폐하의 기분이 아주 좋으셨다네. 매일 매일 웃음꽃이 피었지.”

    “그랬나?”

    루안은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지만 눈빛은 약간 침울해진 것 같았다. 

    루안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자 조 통정은 반대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나는 먼저 궁으로 들어가겠네. 루 통정, 다음에 보세.”

    그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루안은 소매에서 다른 새 수건을 꺼내 손을 닦고 자신의 당직방으로 들어갔다.

    그 서기는 땀을 흘리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엄마야, 무서워 죽겠네!”

    루 통정이 입구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서늘했다. 

    벼슬길은 역시 험난했다. 앞에서는 호형호제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서로 반목하며 원수가 되고 또 한순간에 누가 이길지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의 생각엔 수완이 뛰어난 루 통정이 유씨 가문의 대공자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하지만 대공자 뒤에는 태사부가 버티고 있으니 가문에서 쫓겨난 루 통정은 비할 바가 못 되긴 했다.

    ‘됐다. 됐어. 윗사람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그게 나 같은 하찮은 서기랑 무슨 상관이겠어. 그냥 이 연극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지.’

    서기는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생각을 바꿨다.

    ‘아무리 그래도 루 통정을 응원해야지. 모두 통정이 악랄하다고 수군대지만, 사실 아래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잘해주잖아…….’

    * * *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루안이 궁에 들어가는 순번이 돌아왔다. 

    황제는 루안을 보고 아주 기뻐했다. 그는 유신지에게 공무만 얼른 처리해 두고 남원(南园)으로 낚시를 하러 가자고 했다. 

    노는 걸로 치면, 루 통정이 어디 유신지와 비교나 되겠는가!

    유신지는 웃으며 폐하께서 먼저 가 계시면 자기가 일을 마무리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황제는 아무 생각 없이 내관을 데리고 가버렸다.

    루안과 유신지는 둘만 남아 조용히 상소문을 정리했다.

    어떤 상소문들은 즉시 회답하기 어려운 것이라 책상 위에 남겨두었다. 

    루안이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자 유신지가 그의 팔을 잡았다.

    유신지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루 형, 내가 함세. 막 큰 병에서 회복되었으니 몸이 허약할 게 아닌가. 좀 더 쉬는 게 좋겠네.”

    루안이 손을 풀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문서 정리나 하는 거니 나도 할 수 있네.”

    “당연히 자네도 할 수 있지. 그저 지금은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일세.”

    유신지는 그를 쳐다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네가 없는 며칠 동안 폐하께서 나더러 일을 처리하라고 하셨네. 물론 아무 문제 없이 잘 처리했지.”

    “그건 그저 임시방편이었을 뿐이고, 이제 내가 돌아왔지 않나.”

    루안이 대답했다. 

    유신지가 허허 웃었다.

    “어찌 그걸 임시방편이라고 표현하나? 나는 폐하의 사인(*舍人: 황제의 조서를 기안하는 관직)일세. 폐하를 도와 이런 일을 처리하는 것이 내 직무이니 이 일은 원래 내 몫이지.”

    루안은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신지가 또 말했다.

    “폐하께서 아직 낚시터에서 날 기다리고 계시네. 루 형은 지체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서 쉬시게.”

    때마침 내관이 재촉하러 왔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루안의 손에서 상소문을 빼앗아 상자 안에 넣어 잠근 뒤 내관을 따라 가버렸다.

    * * *

    궁을 나설 때 늘 무표정했던 루안의 얼굴은 훨씬 더 음침하고 차갑게 변해있었다. 그의 이런 표정은 보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외부로 퍼져 모든 사람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루 통정이 정말로 권세를 잃은 것 같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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