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65)화 (365/385)
  • 365화. 소문

    유신지의 차례가 되자 세 사람은 내심 기대했다.

    한 사람만 욕을 먹으면 창피하지만, 모두가 함께 욕을 먹으면 누구도 비웃을 수 없었다. 

    특히 이 유씨 가문의 대공자는 기세가 대단해서 오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모두 십중팔구 그가 황제의 측근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신지는 태연한 표정으로 황제 앞으로 가서 재빨리 상소문 몇 묶음을 펼쳐놓았다. 

    “폐하, 이것들은 사형 사건에 대한 재판입니다. 사건이 명백하고 증거가 충분하니 범인이 숨기지 않고 자백만 하면 통과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몇 건은 양형이 너무 무겁다는 의심이 드는 사건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범인은 오랫동안 죽은 사람의 핍박을 받아 격분하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용서할 만하니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건은 사건의 경위가 비교적 복잡한데 적용된 법령이 불합리한 것 같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말했지만, 황제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통과시킬 것은 통과시키고, 재심해야 할 것은 재심하는 것으로 분류했다. 마지막 사건은 유신지의 의견에 따라 형부와 대리사에서 판결의 합리성을 다시 따져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한 무더기의 상소문을 처리한 황제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자네가 일을 참 잘했군.”

    유신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폐하께서 매일 격무에 시달리시는데 소신의 변변치 못한 재주나마 보탤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그가 욕을 먹기를 기대했던 세 사람은 마음속으로 으르렁거렸다.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려던 거였어? 그럼 우리라고 왜 못 하겠어!’

    ‘어서방에 와서 폐하의 정무를 보조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수업을 하는 것이었구먼.’

    ‘정리가 어쩌고 총괄이 어쩌고 간에 그냥 폐하께 직접 어떤 것은 결재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지 알려주면 끝이 아닌가?’

    어차피 정사당에서 다시 검토하기 때문에 큰 실수가 생길 리 만무했다.

    쫓겨난 세 명의 관리들은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잘 모르고 헛되이 기회를 놓쳐버린 것에 대해 후회했다. 

    * * *

    면접이 끝난 뒤 당연하게도 유신지가 남겨졌다. 

    황제가 흥미로워하며 물었다. 

    “짐이 기억하기로 자네는 항상 루 통정과 함께 있었던 것 같은데?”

    “예, 같은 해에 급제한 동기이고 나이도 비슷해서 자주 왕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유신지는 자조하듯이 말했다. 

    “사실은 신이 루 통정과 친해지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루 통정 그 친구는 항상 쌀쌀맞았지요. 그런데 연유는 모르겠지만 신의 눈에는 그 사람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루안도 차츰 신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하더군요.”

    황제는 하하 웃으며 매우 감명을 받은 듯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예전에 무애해각에 있을 때도 루안은 그런 태도였지. 그때는 짐도 그와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네. 나중에 자주 만나게 되고 나서야 그 사람의 장점을 알게 되었지. 좀 쌀쌀맞기는 하지만 그가 자네를 친구로 여기면 분명 최선을 다할 거네.”

    유신지는 눈을 반짝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루안이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어느 방면으로 힘을 쓸지는 모르는 거지…….’

    유신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궁금한 척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무애해각 이야기를 하시니 신은 참으로 부럽습니다. 예전에 신도 그곳에 가고 싶었었는데 아쉽게도 집안에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안 그랬으면 지금쯤 폐하와 동창이었겠지요.”

    무애해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황제는 신이 났다. 

    “정말 안타깝지. 무애해각은 최고라고 할 만큼 좋은 곳이었네. 할 일이 없으면 바다에 나가 물장구를 치고, 아침에는 배를 타고 일출을 보러 나가고, 밤에는 낚시하러 가고…….”

    이때가 황제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는 3일을 꼬박 새워도 다 말하기 힘들었다.

    정오가 가까워 오자 유신지가 나서서 말했다.

    “폐하께서는 식사하러 가십시오. 남은 상소문들은 제가 정리해 두겠습니다. 그러면 오후에 오셔서 바로 처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황제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관에게 지시했다. 

    “유 추승한테도 점심 식사를 챙겨다 주거라. 소홀하게 대접하지 말고.”

    유신지는 감사 인사를 했다. 점심 식사가 배달되어 왔지만, 그는 대충 그러모아 두 세입에 쑤셔 넣고 전심전력으로 상소문을 정리했다.

    황제가 돌아왔을 때 상소문들은 이미 정리가 끝나 있었다. 유신지는 지시하거나 수정할 사항을 황제에게 알려준 뒤 물러났다.

    궁문 밖으로 나온 유신지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일이 정말 힘드네. 루안, 자네 말이야, 이번에는 정말로 한턱 내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러고 나서 그는 정사당으로 전 재상을 찾아갔다. 

    “어땠나?”

    전 재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에게 물었다.

    유신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기분이 좋으십니다. 하관이 임무를 잘 완수한 것 같습니다.”

    전 재상은 웃었다.

    처음에 그는 유신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번째로 유신지는 유씨 가문 사람으로 배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장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여전히 루안과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유 노태사가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해오자 전 재상의 생각이 바뀌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유씨 가문의 뜻이었다. 

    요 몇 년 동안 유씨 가문은 가세를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확실히 유 노태사가 퇴직하기 전보다는 못했다. 유씨 가문의 몇 명의 대인들은 모두 그 아버지에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맏손자가 재능과 학문 방면에서 모두 최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맏손자는 너무 젊었다. 순서를 기다려 중앙 정부로 들어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십여 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루안이 모두에게 또 다른 지름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이에 유씨 가문이 동요했다.      

    전 재상이 생각해보니 절대적으로 충성할 만한 가난한 집안 자제를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유씨 가문과 협력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될 것 같았다!

    전 재상은 정사당 내에서 인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상 상용에 훨씬 못 미쳤고, 재능과 학문, 능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창보다 약간 뒤떨어졌다. 유씨 가문의 조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는 더 부족할 것이 없었다. 

    ‘유신지와 루안의 친분은…… 허허, 젊은이가 우정을 하늘만큼 소중히 여긴다고 한들, 유씨 가문의 앞날과 비교가 되겠는가? 오히려 친분이 두텁기에 유신지 공자가 자신이 루안 보다 못한 것에 질투를 더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는 유신지를 격려한 뒤 돌려보내고 강왕부로 가서 보고했다.

    유신지는 전 재상의 숙직실에서 나와 대리사에 가서 공무를 깔끔하게 인계하고 자신의 물건을 모두 정사당으로 옮겼다.

    그는 바로 퇴근하면서 새로운 동료가 된 이들에게 술을 마시자고 청했다. 그는 이렇게 떠들썩하게 전근 절차를 마쳤다.

    * * *

    술시(*戌時: 오후 7-9시) 끝자락 쯤이 되어 술자리가 파할 때쯤 되자 새 동료들은 이미 그와 똘똘 뭉쳤다. 이들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옛 친구처럼 굴었다. 

    유신지는 약간의 취기를 얼굴에 띠고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눈에 익은 거리를 지나며 그는 말했다.

    “저 앞에 보이는 게 루안의 집이지? 벌써 잠자리에 들었나 모르겠군.”

    부선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공자, 가서 물어볼까요?”

    이런 시각에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지만, 공자께서 루 통정 집의 담벼락을 기어오른 적도 있는데, 이까짓 게 무슨 대수겠는가?

    유신지는 순간 마음이 동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됐다.”

    막 루안의 업무를 빼앗아 놓고 찾아가서 우쭐대는 건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다.

    * * *

    루안의 독이 재발하자 고찬은 이참에 한 번에 남은 독을 제거하기로 정했다. 루안은 아예 휴가를 내고 문을 걸어 잠근 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바깥일이 전해져도 루안은 그저 듣고 있기만 했다. 

    그는 유신지가 정사당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미간을 찌푸리며 한등에게 지시했다. 

    “소희에게 잘 살펴보라고 전해라.” 

    한등이 대답했다.

    * * *

    그가 외출하지 않더라도 지온은 외출해야 했다.

    날씨가 좋아서 지온은 조방궁으로 갔다. 

    청옥과 함옥이 뜻밖의 방문에 기뻐하며 연이어 말했다.

    “사저,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집안일이 많았어요.”

    두 사람도 이미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는가? 루 통정이 신임을 잃었다는 소문이 이미 도처에 자자했다.

    “도관은 요즘 어때요?”

    청옥이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무능해서인지 요즘 향불을 하러 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지온은 들어올 때 참배객이 많지 않은 것을 보고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나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청옥이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사람들이 전부 루 통정이 강왕에게 미움을 샀다고 수군거리고 있어요. 게다가 대장공주께서도 이곳에 머무르지 않으시니 신분 높은 분들도 오려고 하지 않네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평민들도 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지온이 화신의 신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화신첨은요?”

    “화신첨은 나름 많은 사람이 찾고 있어요.”

    결국엔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게 되긴 하겠지만 지금은 너무 위험했다.

    지온은 잠시 생각해보다 말했다.

    “화신첨을 잠시 중단하는 게 좋겠어요.”

    “사저?”

    청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향불을 하러 오는 참배객이 적고, 화신첨만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데 왜 중단하라는 것일까?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조방궁은 지금 다른 수입이 있어 먹고 사는 걱정은 없을 테니 향불값을 못 벌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나한테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있어 사매들까지 말려들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사저!”

    함옥이 급하게 말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다 사저 덕분인데, 설마 그런 걸 두려워하겠어요?”

    청옥이 도리어 침착하게 말했다. 

    “함옥아, 사저 말을 듣는 게 좋겠어. 루 통정께서 신임을 잃으셨으니 지금은 최대한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게 좋아. 사저께서는 늘 집에 계시니 무슨 짓을 하기 힘들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있는 이쪽은 다른 사람의 계략에 당하기 쉬울 거야.”

    “그렇구나…….”

    지온이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사매들이 나를 좀 도와줘요.”

    * * *

    지온은 사매들에게 말을 마치고 사방전에서 나오다가 아는 사람과 부딪혔다.

    “지온 언니!”

    신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온을 향해 이렇게 소리를 지를 사람이 경소소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지온은 그 자리에 서서 경소소와 유민이 함께 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경소소는 입을 열자마자 불평했다.

    “지온 언니, 오랜만이야! 집으로 보낸 초대장도 다 거절하고 말이야. 혹시 루 통정이 언니를 못 나가게 하는 거 아니야? 정말 너무하네!”

    경소소는 통통 튀는 성격 덕택에 지온과 잘 지내는 것이긴 했지만 말투도 늘 이런 식이었다.

    유민도 이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동조하며 말했다. 

    “맞아요! 지온 언니, 요즘 만나기 너무 힘들어요!”

    지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집안일이 바빠서 외출할 시간이 없었어.” 

    그러고 나서 몸을 낮추고 인사하며 말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먼저 가볼게.”

    경소소는 잠시 멍해졌다가 지온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지온 언니!”

    하지만 지온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사람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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