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저는 됩니다
다른 한편,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전 재상은 활짝 웃으며 아주 좋아했다.
부하 관리가 물었다.
“전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요?”
전 재상이 빙그레 웃었다.
“루 통정의 운수가 사납겠어.”
“네?”
‘이게 루 통정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기분이 좋았던 전 재상은 따지지 않고 가르쳐주기로 했다.
“요즘 무슨 일이 있었지?”
부하는 강왕부에 대해 생각해본 뒤 말했다.
“세자 전하께서 곤장을 맞으신 일 말입니까?”
전 재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부하는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그 외에 별일은 없었다.
전 재상이 탁자를 두드리더니 그에게 알려주었다.
“루 통정이 오늘 또 휴가를 냈지 않나. 어제 강왕부에 다녀왔는데 오늘 휴가를 냈지.”
“아…….”
관리는 그 뜻을 깨닫고 말했다.
“전하께서 그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으려 하시는 거군요.”
전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후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루안이 통정이 된 후부터 폐하의 눈에는 거의 루 통정 하나밖에 없었지. 무슨 일이든지 다 그에게 물어보고 말이야. 흥, 그러니 전하의 미움을 산 거 아니겠나?”
강왕의 요구사항에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젊고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루안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사람의 호감을 살 정도로 성격이 활발해야 한다는 말은 황제와 빨리 친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또 눈치를 살필 줄 알고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강왕을 대신하여 황제를 잘 돌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건 모든 방면에서 루안을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승원궁 사건에서 루안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가 떠오르자 전 재상은 절로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강왕의 요구 사항이 너무 과해서 그런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였다!
전 재상은 이리저리 생각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부하가 한 가지 의견을 냈다.
“재상 어르신, 새로운 사인(*舍人: 황제의 조서를 기안하는 관직명)을 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소문을 내면, 틀림없이 많은 젊은 관리가 앞에 와서 줄을 설 겁니다.”
전 재상이 생각해보니 수고를 덜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는 즉시 승낙했다.
“그래, 그렇게 하지.”
* * *
유신지가 한숨을 쉬었다.
“큰형, 왜 그래?”
유모지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유신지는 동생에게 아무렇게나 대답한 뒤 수박 한 조각을 가져와 맛도 모르고 먹었다.
유모지가 한참을 쳐다보더니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루 통정을 걱정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유신지는 깜짝 놀라 동생을 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가 빨라졌느냐?”
유모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큰형님을 이렇게 머리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내가 딱 두 명 알고 있거든. 하나는 루안이고 다른 하나는 지 부인이지. 형이 이미 약혼했으니 지 부인 쪽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그러니 틀림없이 루안의 일이겠지!”
“…….”
이 자식은 눈치가 빠를 필요가 없는 곳에서 쓸데없이 눈치가 빨랐다.
유신지는 무심하게 계속 수박을 먹었다.
하지만 유모지는 아직도 궁금한지 그를 계속 쫓아다니며 물었다.
“루안은 그냥 며칠 휴가를 낸 거 아니야? 뭘 걱정하는 거야? 그가 전의 그 사건에서 자주 강왕세자를 겨냥하긴 했지만 다 법에 따라 일을 처리했던 것뿐이잖아. 게다가 루안과 의견이 같은 사람도 많았는데 설마 강왕부에서 하나하나 다 보복할 수 있겠어?”
유신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강왕세자를 겨냥해봤자, 폐하한테 그렇게 큰 영향력이 없어. 하지만 루안은 매일 폐하를 모시고 있지. 강왕의 눈에는 그가 폐하 곁에서 이간질하는 것처럼 보일 게다.”
“그렇대도 형이 뭘 어쩌겠어? 루안은 벌써 미움을 살만큼 샀는데 이제와서 휴가를 내고 피해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지.”
형제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쪽에서 유 노태사가 바람을 쐬러 나왔다.
유모지는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움츠리고 도망가려 했다.
“큰형,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안타깝게도 유 노태사의 눈은 아직 멀쩡한지라 그를 보고 불러 세웠다.
“둘째야, 어딜 도망가는 게냐?”
유모지가 뒤를 돌아 웃는 얼굴로 손을 비비며 말했다.
“할아버지…….”
유 노태사가 유모지에게 물었다.
“너 또 무슨 사고라도 쳤느냐?”
유모지가 괴로운 얼굴로 웅얼거렸다.
“아닙니다…….”
“근데 왜 도망가?”
노태사가 부채로 유모지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전에 이 녀석한테 공부한 걸 복습하라고 했는데 분명히 안 했을 게다.”
유신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서길사(*庶吉士: 한림원의 관직명, 진사 가운데서 뛰어난 사람을 뽑음) 시험도 이미 끝났잖습니까? 왜 또 복습을 해야 하는 건데요?”
유모지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재상이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가 봐, 할아버지께서 나를 정사당에 들여보내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야.”
그리 말하며 유모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 비하를 하자는 게 아니라, 사실 내 능력으로 정사당에 들어가는 건 하늘에 별 따기잖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뿐인데.’
유 노태사가 꾸짖었다.
“이 못난 것! 이 할애비가 진작부터 네가 안 뽑힐 줄은 알았지만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유모지가 변명했다.
“할아버지, 분명히 안 될 거예요. 전 재상이 원하는 사람은 당장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사람이에요. 아직 정무 경험이 없는 절 왜 뽑겠어요? 아니면 큰형을 보내세요. 분명 전 재상이 좋아할 거예요!”
유신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정사당 승진은 원래 전례를 따르지 않았나요? 이유도 없이 왜 갑자기 사람을 모집하는 겁니까?”
유 노태사가 말했다.
“겉으로는 전 재상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폐하의 사람을 찾는 걸 게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또 유모지를 질책했다.
“네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이 할애비가 몰라서 이러겠느냐? 루안 그 녀석이 강왕을 만나고 휴가를 낸 걸 보면 분명히 강왕에게 미움을 산 게 아니겠느냐.
전 재상이 이리 소문을 퍼트린 건 사실 폐하를 보좌할 사람을 구하기 위한 거란 말이다. 할애비도 네가 뽑힐 거라고 기대한 게 아니야. 그저 폐하 앞에 얼굴이라도 비추라는 것이지. 근데 네가 이리 못나게 굴 줄은 몰랐다!”
유모지는 욕을 먹고 감히 찍소리도 못 했다.
유 노태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는 영재들을 떠올려 봤지만, 아들뻘들은 천거할 수 없었고 손자 세대는 이렇게 무능했다.
그가 좀 더 꾸짖으려 하는데 유신지가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둘째 말이 맞습니다.”
“응? 둘째가 뭐라고 했더라?”
유신지가 말했다.
“저 아이는 안 되도 저는 됩니다!”
유 노태사는 잠시 멍해졌다.
“너…….”
유신지가 빙그레 웃었다.
“전 재상이 언제 사람을 모집하는 겁니까? 바로 신청하러 가겠습니다. 전부터 한낱 통정일 뿐인 루안이 일도 잘하고 잘나가는 게 얼마나 질투가 났는데요. 지금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다니 제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폐하 곁에는 사람이 부족하니 이번에는 제가 출세해서 그보다 더 높아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 * *
루안이 휴가를 낸 지 여러 날이 지났다.
황제는 책상 위의 상소문을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평상시에는 루안이 총결하여 알려주니 적은 노력으로도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사라지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황제가 잠시 멍하니 있는데 밖에서 호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도착했습니다.”
황제의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다.
“들라 해라.”
어제 강왕은 그의 곁에 사람이 너무 적으니 몇 명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황제는 차마 거역할 수 없어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감시당하는 나날을 힘들게 견뎌왔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고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주 꺼려졌다.
젊은 관리들이 순서대로 들어왔다. 재능과 학식이 모두 최고인 사람들이었다.
황제는 정신이 산만한 상태로 그들의 소개를 듣고 있었다.
문득 한 목소리가 그의 주의를 끌었다.
“신 유신지는 원래 대리사에 근무했습니다…….”
황제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마침내 누군지 떠올렸다.
“자네였구먼!”
유신지는 예전에 과거 시험에서 탐화랑이 되었던 자였고 그 과거 시험은 황제가 등극하고 치른 첫 번째 시험이기도 했다. 마침 루안과도 동기여서 황제의 마음에는 어느 정도 그에 대한 인상이 예전부터 남아있었다. 더욱이 그가 몇 번이나 루안과 함께 있는 것을 보기도 했으니 황제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있겠는가!
유신지는 황제의 시선에도 전혀 어색해하는 기색 없이 웃으며 말했다.
“예.”
간략히 자기소개를 한 뒤 그들은 바로 일을 시작했다.
두꺼운 상소문들을 몇 부로 나누어 각자 분류하여 표기했다.
황제의 짜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는 속으로 저들이 이렇게 돕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사람이 검토 후 상소문을 올렸다.
“폐하, 이것들은 소신이 정리한 공부(工部)의 보고서입니다. 이건 제방을 보수하는 것이고 이건 황릉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궁을 개축하는 것이고 이건 운하에 관련된…….”
황제는 끝까지 들을 인내심이 없었다.
“다 돈을 요구하는 거란 말인가? 그럼 자네가 결재해도 되는지 아닌지 좀 계산해보게.”
그는 멍해졌다.
“폐하, 그게…….”
그가 결재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어찌 알겠는가? 각각의 항목은 전문가가 계산한 것인데, 한 번 보고 어떻게 결론을 내라는 말인가? 아닌 것 같으면 폐하께서 직접 공부 사람들한테 재심사하라 명령하면 될 것을!
황제가 또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나?”
하지만 그는 차마 폐하 앞에서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니면 자신이 어디에서 왔든지 간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는 말을 삼키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황제의 질문에 젊은 관리는 바삐 머리를 굴렸다.
‘사람을 찾아서 장부를 조사하고 계산하려면 어쨌든 3~5일은 걸리겠지?’
그는 무리해서 대답했다.
“이틀입니다.”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틀이라니? 너무 오래 걸리는구먼.”
“…….”
황제 앞에서 일하는 것이 원래 이렇게 어려웠단 말인가! 그는 이것도 아주 빠른 거라고 생각했다.
황제는 벌써 손을 흔들어 다음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은 병부의 상소문을 들고 왔다. 마정(*马政: 관용마의 구매, 양육, 훈련에 관련한 업무), 모병, 군량……. 그는 전체를 총괄하여 말하긴 했지만 내용이 너무 세세했다. 그가 내리 몇 단락을 이야기하자 황제는 머리가 아파 왔다.
“중요한 것만 말하게!”
두 번째 사람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이게…… 다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는 이미 몇십 쪽의 상소문을 하나, 둘, 세 항목으로 정리했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중요한 것만 말하란 말인가? 항목별로 의논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루안이 몹시 그리웠다. 이 사람들은 일하는 게 시원치 않고 전혀 쓸모가 없었다.
뒤이어 세 번째 사람도 상소문을 올리러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이 의기소침한 얼굴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