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63)화 (363/385)
  • 363화. 당신과 함께

    강왕세자는 약을 먹은 뒤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부왕께서는?”

    강왕세자비가 대답했다.

    “폐하께서 미복을 입고 오셨습니다. 부왕께서는 폐하와 이야기를 나누러 가셨습니다.”

    강왕세자는 단번에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가 다친 요 며칠 동안 부왕은 그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고 오히려 여섯째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다. 

    * * *

    앞서 한등이 돌아와서 소식을 알리자 북양태비는 즉시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여봐라, 다 같이 강왕부로 가자!”

    대장공주가 그녀를 불렀다.

    “자네가 강왕부에 가서 뭘 한다는 겐가? 사람을 빼앗아 오기라도 하려고?”

    “아니면?”

    북양태비가 소리쳤다.

    “그럼 그 영감탱이가 내 아들을 모욕하는 걸 그냥 내버려 두란 말이야?”

    대장공주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자네 아들은 다 큰 남자인데 무슨 모욕을 당한다고 그러나? 이렇게 사람들을 데리고 강왕부로 쳐들어간다니 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어서 그래?”

    ‘곽여단은 제멋대로 날뛰는 게 아주 버릇이 됐어. 경성이 북양이랑 같은 줄 아나?’

    “그럼 나더러 아들 일에 마냥 손 놓고 있으란 소린가? 그 늙은이가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

    “그렇게 심하지는 않을 걸세…….”

    “자네 아들이 아니니 심하지 않단 소리가 나오겠지.”

    대장공주가 화를 냈다. 

    “그 아이가 내 사위인 건 잊었나 보지? 나라고 그 아이가 무사하길 바라지 않는 줄 알아?”

    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했다.

    지온이 한등에게 질문을 마치고 돌아보니 바로 이렇게 싸우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녀는 이마를 누르고 말했다.

    “두 분 어머니!”

    시끄럽게 싸우던 두 사람은 그녀의 양쪽 팔을 하나씩 붙잡으며 물었다.

    “온아, 내 말이 맞니? 틀리니?”

    “온아, 내 말에 더 일리가 있지 않니?”

    이건 마치 두 명의 마누라가 자신을 찾아와 옳고 그름을 가려달라고 조르는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닌가?

    ‘난 이 집 며느리 아니었나?’

    지온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했다.

    “시어머님의 걱정도 일리가 있어요. 강왕이 이렇게 그이를 집으로 부른 건 아마 본때를 보이려고 한 거겠지요.”

    지온이 자기 편에 서는 것을 보고 북양태비는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뒤이어 이 말이 루안에게 변고가 생길 거란 말이라는 걸 깨닫고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대장공주가 막 말을 하려고 하는데 지온이 또 입을 열었다.

    “어머니의 말씀도 맞아요. 여기는 경성이고 그는 4품 관리에요. 강왕의 말 한 마디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을 거예요.”

    “온아…….”

    지온이 침착하게 말했다.

    “두 분께서는 조급해하지 마세요. 한등 말로는 루안이 다른 사람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해요. 만약 그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했으면 당시에 설 상서에게 통정사에 가서 말을 전해달라고 했을 거예요. 그럼 고찬이 바로 알았을 테고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지도 않았겠지요. 제 생각에는 그 사람이 뭔가 계획이 있어서 혼자서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북양태비가 생각해봐도 그 말이 맞았다. 만약 루안에게 처음부터 뭔가 계획이 있었다면 경솔하게 끼어드는 것이 오히려 그의 계획을 그르치게 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괜찮을 거란 소리니?”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여 대인도 계시잖아요? 그분은 대학사이시니 폐하한테 가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두 분께서는 제대로 식사를 하시고 그늘에서 쉬고 계세요. 그 사람은 아마 좀 늦게 돌아올 것 같아요.”

    북양태비와 대장공주는 그녀의 말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원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

    그녀들이 간 후 정씨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온을 쳐다보았다.

    “사실 자네도 별로 자신 없는 게지, 안 그런가?”

    지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제야 초조함을 드러냈다.

    “강왕이 이렇게 부른 걸 보면 분명히 무슨 증거를 잡은 걸 거예요. 소달을 죽인 일이든 강왕세자와 대적한 일이든 간에 강왕이 그 사람을 가만히 두지는 않겠지요.”

    “그럼 우리가…….”

    “강왕부에 쳐들어가도 소용없어요.”

    지온이 복도 기둥에 기대어 입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사람이 서신을 전하지 않은 건 그래봤자 아무 소용없기 때문이에요.”

    “그럼 우리가 이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지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아요. 그이는 지금 폐하의 심복이니까 그를 죽이려면 강왕도 폐하의 반응을 고려해야 할 거예요. 게다가 북양왕부도 있으니까 조금 더 꺼리겠지요.”

    요 몇 년 동안 조정이 동요하는 틈을 타 각지에서 수시로 의용군이 나타났고 조정에서는 북양왕부를 더욱 꺼렸다. 

    형제가 서로 반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루혁이 이것을 구실로 삼을지 누가 알겠는가?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밤의 장막이 내리자 마침내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한등이 쏜살같이 달려와 소식을 알렸다.

    “돌아왔습니다. 공자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지온이 흠칫하고 얼른 달려 나가 보니 과연 마차 한 대가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시위가 조심스럽게 한 사람을 부축하여 내려주었다.

    루안은 깨어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홍조가 사라지고 전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 그는 지온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지온은 가슴이 조여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온은 그가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변에 사람이 모두 물러나고 나서야 물었다. 

    “강왕이 당신한테 독을 먹였어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지온을 잡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소, 몸속에 있던 독성은 이미 많이 사라졌소. 이따가 고찬이 와서 침을 놓으면 분명히 누를 수 있을 거요.”

    루안이 음식을 조금 먹고 나니 목욕용 물이 벌써 준비되어 있었다. 루안은 북양태비가 오는 것을 보고 고찬을 데리고 안으로 피했다.

    북양태비는 그를 보지 못하고 물었다.

    “안이는? 돌아온 거 아니었어?”

    방 안에서 루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그의 대답을 듣고 북양태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아 있으면 됐다!”

    루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셨어요? 어째 제가 무사하길 바라신 것 같지가 않은데요!”

    말을 마치자마자 고찬이 침을 놓는 바람에 루안은 숨을 헉 들이쉬었다. 

    이에 북양태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왜 그래?”

    고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비마마, 하관이 침을 놓고 있습니다. 통정께서 좀 다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북양태비는 조급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도리어 화가 나고 말았다.

    “그 늙은이가 널 때렸어?”

    루안이 애매하게 대답했다.

    “별일 아닙니다. 이틀 정도 쉬면 됩니다.”

    이렇게 말한 뒤 그는 또 아프다며 고찬에게 소리를 질렀다. 

    “살살 안 하느냐?”

    고찬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직 두 번 더 남았습니다. 곧 괜찮아지실 겁니다.”

    북양태비는 그제야 안심하고 말했다.

    “알겠네, 천천히 침을 놓게, 난 이만 가겠네.”

    지온은 태비를 문밖까지 배웅하고 돌아와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루안의 상체에는 은침이 가득 꽂혀 있었고 앞에는 그가 토해낸 검은 피가 보였다. 

    “좀 어때요?”

    지온은 다급하게 그에게 다가갔지만 차마 루안의 몸을 만질 엄두가 안 났다. 

    루안의 얼굴은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전에 약주를 자주 마셔서 생겼던 연홍빛도 보이지 않았다. 지온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눈을 뜨고 힘없이 웃었다.

    고찬이 대답했다.

    “통정께서 오랫동안 해독제를 복용하지 않으셨는데, 오늘 또 이렇게 독을 먹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히려 전에 눌러놓았던 독성이 전부 올라왔습니다.”

    “그럼 어떡하나?”

    지온이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고찬은 얼른 말했다.

    “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왕이 갖고 있던 해독제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게 약성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 약성이 아직 가시지 않은 틈을 타서 하관이 남은 독을 모두 한곳으로 몰아서 최대한 쫓아내는 중입니다.”

    “그 말은 전부 해독할 수 있고 앞으로는 발작할 일이 없다는 소린가?”

    “예.”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네는 침을 놓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고.”

    “예.”

    * * *

    고찬이 침을 다 놓고 나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고찬은 루안이 잠이 들자 물러 나왔다.

    지온이 방에 들어오니 루안이 그녀를 불렀다.

    “온.”

    그녀가 걸어갔다.

    “왜요? 물 마실래요?”

    루안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뭐가 그리 바쁜 거요, 여기 좀 누우시오.”

    지온은 미소 지으며 잠시 주변을 정리하고는 불을 끄고 루안과 함께 누웠다.

    루안이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소. 나 혼자였다면 괜찮았겠지만 지금은 당신이 있어 하루하루가 두렵소.”

    지온이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서두르지 말아요. 양어머니가 계시니 난 괜찮을 거예요.”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당신과 함께 무애해각으로 돌아가 글을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하면서 살고 싶소…….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다로 나가 해 뜨는 것을 보고, 달이 떠오르면 파도 소리를 들으며 노을을 감상하고 말이오. 당신이 원한다면 아이도 둘 정도 낳을 수 있겠지…….”

    * * * 

    물가에 있는 누각에서 강왕은 몸을 숙이고 먹이를 쫓는 물고기 떼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젊은 관리가 그의 뒤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러니까, 조회가 있든 없든 루 통정은 매일 어서방에 가서 폐하의 시중을 든다는 겐가?”

    젊은 관리가 몸을 굽히며 대답했다. 

    “예.”

    강왕의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통정사는 안팎의 상소문을 주관하고 있는 데다 민정을 보고하고 의논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궁에 들어가는 것은 정상이었다. 다만 루안의 위에 통정사(通政使)가 있고, 동급에도 또 다른 통정이 있는데, 궁에 들어가는 순번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더구나 정사당에도 매일 당직자가 있는데 그가 계속 시중들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자네 같은 시서(*侍书: 제왕을 모시고 문서를 관장하는 관리)들은?”

    젊은 관리는 조금 망설이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책을 읽으실 때 신과 같은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이 말은 다른 일들을 할 때는 그들을 부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강왕은 말뜻을 알아듣고 손을 내저었다. 

    젊은 관리는 몸을 굽혀 예를 표한 후 물러갔다. 

    길 내관이 얼음이 든 음료를 들고 들어왔다. 

    “전하, 아직 만나 뵙고자 기다리는 분이 몇 분 더 있습니다.”

    “만날 필요 없으니 돌아가라 해라.”

    강왕은 흥이 나지 않았다. 

    ‘방금 그 한 명이면 충분해. 루안 이 자식, 정말 재주도 좋구나. 내가 여섯째 곁에 그리 많은 사람을 배치해 두었는데 쓸모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니.’

    음료를 다 마신 강왕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길 내관에게 지시했다.

    “전해(*钱海: 전 재상의 이름)에게 본왕이 젊고 재능 있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활발한 성격에 눈치를 잘 살피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전해라……. 그런 사람을 찾으면 강왕부로 데려오라 하고.”

    길 내관이 알겠다고 한 뒤 말을 전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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