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때려라
종정부는 사람들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었다.
이건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종정부는 황족의 사무를 처리하는 곳인데 평상시에 백성들이 구경하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백성들이 참관하는 것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궁에서는 일부러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 건데?”
누군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좀 더 일찍 온 구경꾼이 약간 잰 체하며 말했다.
“그것도 몰라? 요즘 경성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사건이 뭐겠어?”
“어……평왕 세손의 혼사?”
“신국공이 기생 소련(小怜)이의 머리를 올려준 거?”
“장(蒋) 장원이 성질 더러운 아내한테 쫓겨 온 거리를 뛰어다닌 일도 있었다던데!”
그 구경꾼은 “허어!”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자네들 머릿속에는 그까짓 남녀 사이의 자질구레한 일들 밖에 없어? 종정부까지 온 걸 보면 당연히 큰일이 난 거지! 큰일!”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더 감질나게 할 생각은 없었는지 솔직하게 말했다.
“승원궁 사건 말이야. 강왕께서 어제 귀경하셨어. 강왕이 오늘 평왕을 모시고 강왕세자를 압송해 와서 사람들 앞에서 죄를 묻는다고 하더군.”
“뭐? 강왕께서 돌아오셨어?”
백성들이 놀란 듯 잇따라 소리를 지르며 관아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염탐했다.
요 며칠 동안 강왕세자는 줄곧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는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거절한 후에 궁문 앞에서 석고대죄하며 황제를 압박했다. 이어서 정사당에 누명을 씌우는 등등의 짓들을 했다. 민보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마치 형제를 질투해 법도를 무시하고 황권의 전복을 꾀하는 야심가 같았다.
백성들은 이 일에 대해 떠들어 대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욕을 했다. 그 문인 학생들은 민심을 더욱 격렬하게 충동질하며 강왕세자를 사형시켜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강왕부가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뜻밖에도 강왕이 경성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제 아들을 대신해서 이 사건을 처리해주려는 걸까?
“비켜 주십시오, 비켜 주십시오.”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여러분 번거로우시겠지만, 자리를 좀 비켜 주십시오.”
사람들이 쳐다보니 저고리를 입고 부채를 든 학생들이었다.
백성들은 학생들을 향해 존경심을 드러내며 양쪽으로 피해 길을 내주었다.
학생들은 관아 밖에 서 있었는데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가 평왕부의 마차를 발견하고 말했다.
“평왕께서도 오셨나 보군.”
말을 꺼낸 이의 동료인 다른 학생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종정부로 왔으니 당연히 종정의 수장이신 평왕께서 나서야겠지.”
이들은 서로 눈길을 몇 번 주고받았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무거운 먹구름이 깔려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강왕세자가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강왕과 평왕이 동시에 강왕세자를 위해 보증을 서준다면 아마 정사당도 조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마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는 건 아니겠지?’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던 중 한 사람이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불충하고 불의한 사람을 어찌 다시 조정에 오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내 그들에게 미움을 사는 한이 있어도 정의를 부르짖을 걸세!”
그와 동행해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 의협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마다 마음속에 불길이 치솟아 즉시 여러 사람이 동의했다.
“이 형 안심해요, 저도 함께할게요!”
“저도요!”
학생들은 의분에 가득 차서 관아 입구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강왕이 감히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불법을 저지른다면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왔다. 왔어.”
관아 입구 쪽에서 마침내 인기척이 났다.
사람들이 그쪽을 바라보니 강왕이 평왕을 부축하며 나왔고 곁에는 수상 상용이 함께 있었다.
그들이 입구에 도착하자 시위가 앞으로 나와 의자를 놓았다.
강왕은 공손한 태도로 평왕에게 앉으라고 권한 뒤 입을 열어 말했다.
“백부께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평왕이 호인 같은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무슨 고생이란 말이냐, 본왕은 종정인데 당연한 일이지.”
말을 마친 그는 팔짱을 끼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이건 무슨 뜻이지? 평왕께서 오셨으니 직접 이 사건을 처리하는 거 아닌가?’
저쪽에서 강왕이 시위에게 지시했다.
“데려와라.”
시위가 대답하고 곧 사람을 끌고 왔다.
군중들 속에서 비명이 들렸다.
머리의 관과 겉옷이 벗겨져 있긴 하지만 저건 누가 봐도 강왕세자가 아닌가?
강왕이 엄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꿇어라!”
강왕세자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시위가 그를 눌렀다.
강왕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왕은 어제 귀경하여 내 아들이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런 연유로 종정부로 압송하여 죄를 물으려 하니 여러분들이 증인이 되어주길 청하는 바이오.
이 짐승만도 못한 놈이 승원궁의 수리를 맡고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가 하나요. 정사당에서 그에게 조사에 협조해 달라고 했는데 경시하고 태만하게 거절한 죄가 둘이요. 유언비어 몇 마디에 궁문 앞에 가서 석고대죄하며 폐하와 조상을 비난받게 만든 죄가 셋이오. 이 세 가지 죄는 부인할 수 없으니 처벌하지 않으면 여론을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오. 여봐라!”
시위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예!”
강왕이 차갑게 내뱉었다.
“때려라!”
시위는 큰 소리로 대답하며 즉시 형틀을 가져와 강왕세자를 위에 눕힌 뒤 곤장을 들어 세게 내리쳤다.
둔탁한 타격음이 강왕세자의 비명과 함께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진짜 때리잖아!”
시위가 매섭게 몇 장을 때리자 강왕세자의 바지에 핏자국이 묻어났다.
처음에는 강왕세자도 참아보려고 했으나 계속 맞다 보니 견디기 힘들었다.
강왕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네 잘못을 알겠느냐?”
강왕세자가 이를 악물었다.
“소자가 잘못했습니다. 소자가 조정의 관리에게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됐고, 폐하까지 연루되게 만들어서는 안 됐습니다…….”
마지막 말을 할 때쯤에는 식은땀까지 나서 강왕세자는 형틀에 얼굴을 묻고 아픔을 참으며 끙끙거렸다.
강왕세자는 경성에 온 뒤로 항상 도도한 모습이었다. 그가 나타날 때마다 수행원들이 앞뒤로 호위했고 사람들은 그를 추켜세웠다. 이만큼 낭패스러웠던 적이 언제 있기나 했을까!
보다 못한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너무 세게 때리는 거 같은데!”
“그러게, 경험 많은 형리가 때리면 열 장만 넘어가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고 하더군. 세자한테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만, 이렇게 때리면 적어도 몇 달은 꼬박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그 일은 증거도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세자 말고 그럴 사람이 또 누가 있다고? 얼마 전까지 날뛰던 걸 생각해봐! 폐하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잖아.”
“그야 그렇지만 죄를 물으려면 증거가 있어야지. 그냥 좀 오만하게 군 게 죽을죄는 아니잖아!”
“…….”
여론이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고 듣다 못 한 학생들이 나서서 따져 물었다.
“강왕 전하, 이건 큰 책임은 회피하고 작은 것만 취하시려는 겁니까? 세자 전하의 죄가 어찌 경시하고 태만한 것에만 있단 말씀이십니까? 설마 승원궁에 약을 묻은 사건을 이렇게 슬쩍 곤장을 때리는 걸로 넘어가려 하시는 겁니까?”
강왕은 그 학생을 바라보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본왕도 그 일을 듣고 깜짝 놀랐다네. 폐하의 안위를 위해 본왕은 정사당을 도와 끝까지 조사할 걸세! 만약 정말 이 불효자가 한 짓이라면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고 본왕도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을 생각이네!"
그는 말을 끝내고 상용을 향해 말했다.
“상 수상, 수고스럽겠지만 수상께서 증인이 되어주시오. 이 불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본왕이라도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이 밝혀진다면 사형도 달게 받을 것이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끝나자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형리가 강왕세자를 매섭게 때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러면 정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아직 사건이 정확하게 규명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강왕세자를 때려죽이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강왕이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다시 물었다.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았나?”
그 학생은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결국 공수하며 물러났다.
“없습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세워진 마차 옆에서 유신지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구먼. 우리가 그간 했던 고생이 전부 헛수고가 됐어.”
루안은 아무 말도 없었다.
유신지가 조심스럽게 그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자네 무슨 계획이 있는 건가?”
루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별수 있나?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수밖에.”
강왕세자가 기절한 것을 본 시위가 마침내 때리는 것을 멈췄다.
백성들은 강왕세자의 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온이 마차 벽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도 그만 돌아가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시오. 난 대공자와 동행하겠소.”
마부가 말머리를 돌려 앞서갔다.
루안과 유신지는 말을 타고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 이르자 루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유 형, 부탁할 게 있네.”
루안은 평소에 그를 대공자 아니면 유 추승(*推丞: 대리사에 속한 관원)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유 형이라고 부르니 유신지는 과분한 대우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어? 무슨 부탁인가? 말해 보게.”
루안이 말했다.
“만약 언젠가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네가 내 어머니와 부인을 고향으로 좀 데려다주게.”
유신지는 가슴이 철렁해 고삐를 꽉 잡아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 자네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건가?”
루안이 그를 보며 웃었다.
“긴장할 것 없네. 무슨 계획이 있다는 건 아닐세. 그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고 난 벌써 누군가의 눈엣가시가 되지 않았나. 무슨 일이 생긴대도 이상할 게 없지.”
유신지는 묵묵히 서 있었다.
소달을 죽였을 때부터 루안은 이미 자신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였고 강왕부와도 원수가 된 셈이었다. 이 고비만 넘기고 나면 강왕이 그를 가만둘 리가 있겠는가?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유신지는 그저 위로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을 걸세. 분명 정사당에서 그를 막지 않겠나.”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를 제외하고 강왕의 귀경을 가장 불쾌하게 여길 만한 곳이 바로 정사당이었다.
이제야 정국이 안정되고 정사당에서 대권을 장악했는데, 누가 태상황(太上皇)이 돌아오길 원하겠는가?
하지만 그저 한낱 통정일 뿐인 그를 언제까지 정사당에서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미리 말해두는 거네, 그럴 날이 꼭 온다는 말은 아닐세.”
유신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가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데 당연히 나도 자네를 도와야지.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기꺼이 돕겠네.”
루안은 웃음을 머금고 가볍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렇게 오랫동안 안 보이면 내 아내가 걱정할걸세. 난 먼저 가보겠네. 다음에 다시 모이세.”
“어이…….”
유신지는 그가 재빠르게 골목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루안의 집으로 따라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그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밥 사는 게 겁나서 도망간 건가? 루안 이 자식은 정말 고집불통이라니까, 지난번에 술도 내 돈으로 샀잖아!’
유신지는 씩씩거리며 고삐를 당기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