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57)화 (357/385)
  • 357화. 사과하다

    “강왕이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이 소식은 온 경성에 널리 퍼졌고 당연히 정사당에도 전해졌다.

    젊은 관리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상야, 이 일을 어찌합니까?”

    상용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뭘 어찌한단 말인가?”

    “강왕세자 말입니다! 강왕이 돌아왔으니 저희가 전에 해놨던 일들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상용은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냥 원칙대로 처리하게.”

    그리고서 그는 다른 정무에 관해 물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오니 북하(北河)를 좀 보수해야 했다.

    그리고 서남 지역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군량을 요청하고 있었다. 

    “수상 어르신!”

    상용만큼 침착하지 못한 젊은 관리는 다급하게 캐물었다. 

    “이번에 강왕부가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면, 앞으로 그들이 상야를 안중에나 두겠습니까?”

    상용이 웃었다. 

    “그들이 나를 안중에 둘 필요는 없지. 그저 폐하를 안중에 두기만 하면 되네.”

    젊은 관리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나이 많은 동료들이 그를 말렸다. 

    “경림, 이건 원래 강왕세자와 얽혀 있는 사건이고 처음부터 수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네.”

    젊은 관리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천천히 깨달았다.

    강왕세자가 수상이 황위 다툼에 개입했다고 모함했기 때문에 이제 자신들은 앞에 나서서 강왕과 대적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역모죄를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기다려보게, 어떻게 할지는 곧 강왕이 알려줄 걸세.”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상용이 이 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관이 와서 황제가 부른다고 전했다. 

    * * *

    하룻밤을 쉬고 강왕은 궁으로 들어갔다.

    궁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차 안에서 강왕세자가 강왕세자비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요? 상용에 대해서는 안 묻고 루안에 대해서만 물었소. 물론 루안도 밉긴 하지만 날 사지로 몰아넣은 건 상용이지 않소!”

    강왕세자비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럼 당신은 아버님께서 어떻게 하시기를 바라는 겁니까? 상용을 경성에서 쫓아내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강왕세자가 불쾌해했다.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소?”

    강왕세자비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상용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수상이 정무를 총괄하고 있으니 그와 척져서 좋을 것이 없지요.”

    “하지만…….”

    강왕세자비가 또 말했다.

    “그리고 세자께서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이 정말 상용입니까? 당신이 경성을 떠나는 게 그 사람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

    강왕세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가 경성에서 떠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아마도…… 황제일 것이다. 그리고 황제의 앞잡이인 루안!

    “아마도 우리가 계략에 걸려든 거겠지요.”

    강왕세자비가 말했다.

    “이건 루안이 벌인 짓입니다. 당신과 상용이 적이 되게 만들어서 가만히 앉아서 어부지리를 얻으려 했을 겁니다.”

    금위가 통행을 허가해주자 세 사람은 마차에서 가마로 갈아타고 승원궁으로 직행했다. 

    황제는 친히 마중을 나왔다. 

    황제의 표정이 아주 부자연스러웠다. 그는 강왕이 가마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더욱 긴장했다. 

    황제는 여섯 살에 궁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들 부자가 어울린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가 의안왕이었을 때 강왕은 위엄이 있는 아버지였다. 그 후 얼떨결에 그가 지존의 자리에 올랐을 때 공교롭게도 강왕은 경성에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는 강왕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몰랐다. 

    강왕은 오히려 평온하게 눈을 들어 황제를 보고 절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황제가 그 모습을 보고 급히 손을 뻗어 강왕을 부축했다.

    “아버지…….”

    그는 호칭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말을 바꿨다. 

    “황숙께서는 예를 거두십시오.”

    강왕도 절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폐하, 오랜만입니다.”

    황제는 서서히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눈앞의 강왕도 다른 신하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도 똑같이 자신을 폐하라고 불러야 했고 똑같이 공손하게 절을 해야 했다.

    ‘그래, 나는 지금 황제야. 내 앞에서는 부왕도 그저 한 명의 신하일 뿐이지.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어.’

    황제는 이렇게 생각하고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평소 신하를 만나는 것과 같이 그를 대했다.

    “황숙께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일단 궁전으로 들어가서 좀 앉아 쉬시지요.”

    이렇게 말을 한 그는 뒤따르는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소매를 흔들며 몸을 돌려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강왕세자는 그의 이런 행동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다시 강왕을 쳐다보니 확실히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왕세자는 더욱 화가 났다.

    ‘저 두 부자의 마음이 이렇게 잘 통하다니! 여기서 조연은 나란 말인가?’

    궁전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황제가 친절하게 물었다.

    “황숙께서는 귀경하시면서 어찌 서신 한 통도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짐이 사람을 보내 마중을 했을 텐데요.”

    강왕은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황제는 많이 성숙해져 있었다. 생김새가 날카로워진 것뿐만 아니라 용포가 받쳐주니 제법 제왕의 위엄까지 보였다. 

    ‘좋아, 아주 실망스러울 정도까지는 아니군.’

    “신이 순간 마음이 동해 온 것인데 폐하를 귀찮게 할 수야 있겠습니까.”

    강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요 몇 년 동안 일이 뜻대로 잘 풀리셨습니까?”

    이건 황제 노릇을 잘하고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강왕세자는 참지 못하고 황제를 쳐다보았다.

    ‘이 자식이 이 틈에 고자질하는 건 아니겠지?’

    강왕세자는 부왕에게는 둘 다 똑같은 아들이니 유독 자신만 편애할 이유가 없다는 강왕세자비의 말이 절로 떠올랐다. 만약 여섯째가 자신이 한 짓을 일러바친다면 부왕이 자신을 훈계할지 아닐지는 정말로 가늠하기 힘들었다.

    강왕세자는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결국 이를 악물고 흉악한 눈빛을 드러냈다. 

    ‘감히 고자질을 하면 이참에 이놈과 시원하게 갈라서고 부왕에게 이놈이 딴마음을 품었다고 고해버리겠어.’

    하지만 황제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왕은 맏형과 가장 가까웠고 자신을 곁에 두고 키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황제는 부왕을 만나도 남 같았다. 형이야말로 강왕부의 사람이었으니, 자신이 일러바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제는 강왕이 이런 방면에 대해 넌지시 물어오자 마음속으로 잠시 생각해본 뒤 점잖게 대답했다.

    “황숙께서 이리 염려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강왕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소연도 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걸 보니 황제가 이 4년 동안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았다.

    두 부자가 인사를 마치자 강왕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승원궁에서 오래된 물건이 발견됐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을 꺼내자 황제와 강왕세자는 자기도 모르게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들의 눈빛은 번개처럼 부딪쳤다.

    황제는 루안의 당부를 떠올리며 말했다.

    “황숙께서 놀라셨다니 짐의 잘못입니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 탓에 이야기가 새어 나가 온갖 비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 짐이 제대로 못 한 탓입니다.”

    강왕은 그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황제인 그가 누군가의 음해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분노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하지만 황제는 이 기회를 틈타 맏형을 탓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책임을 짊어지기까지 했다.

    강왕은 안심이 되는 동시에 기뻤다.

    이 사건이 불거진 뒤 지금까지 명성에 가장 많은 흠집이 난 곳은 바로 강왕부였다.

    사람들은 강왕세자가 동생을 질투해 약을 묻어 음해했다고 떠들어 댔다. 또 강왕부가 일찍부터 딴마음을 품어서 몇십 년 전부터 황위를 빼앗으려 모의를 했다고 수군거렸다. 

    소문이 계속 이렇게 퍼지면 황위 계승의 합법성마저 의심받게 될 것이 뻔했다. 

    여섯째가 단번에 요점을 파악하는 것을 보니 황제로서 완전히 허당은 아닌 듯싶었다.

    강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투도 더욱 부드러워졌다.

    “이 일은 세자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신이 오늘 폐하께 사과를 드리고자 데리고 온 겁니다.”

    이 말이 나오자 황제와 강왕세자는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아버지!”

    강왕세자가 소리쳤다.

    강왕은 차가운 눈길로 힐끗 그를 쳐다보고 말했다.

    “왜, 아직도 네 잘못을 모르겠느냐? 승원궁에서 불순한 것이 발견되어 정사당이 황명을 받들어 추적하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이냐? 협조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정사당과 맞서서 폐하께 심려를 끼쳤으니 사과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의 차가운 눈빛에 강왕세자는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부왕이 여섯째 편에 섰으니 설사 자신이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정해야만 했다.

    “소자의 잘못입니다.”

    강왕세자가 굴욕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강왕세자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이를 악문 채 황제에게 사과했다.

    “폐하, 신이 사려 깊지 못한 탓에 충동적으로 행동하여 이런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강왕이 여기 있으니 황제는 체면을 생각해주어야 했다. 황제는 가식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형님, 무슨 그런 말을 합니까? 우리는 날 때부터 형제인데 용서하고 말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강왕세자는 마음속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당장은 참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두 형제가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강왕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가 풀렸으면 되었습니다. 한 집안 형제들끼리 남의 이간질 때문에 싸워야 하겠습니까.”

    황제는 복잡한 눈빛으로 강왕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큰형이 내 집의 대를 끊으려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저 오해라고만 하시는구나. 역시 아버지의 마음이 큰형을 향해 있어 나는 전혀 안중에도 없으신 게로군.’

    강왕세자의 마음도 원망으로 가득 찼다. 부왕이 여섯째에게 사죄하라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부왕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아들도 중요하지 않은 거야. 그저 자신이 황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중요하겠지.’ 

    두 아들은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고, 강왕도 이를 눈치챘지만 강왕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모두 자신이 여기 없었던 탓이었다. 이제 자신이 돌아왔으니, 맏이든 여섯째든 감히 경솔하게 굴지 못할 터였다. 

    강왕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폐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정 대신에게든 백성들에게든 반드시 해명하셔야 할 겁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속으로만 구시렁댔다. 

    ‘이걸 어떻게 해명한단 말인가? 설마 내가 나서서 큰형이 죄가 없다고 보증이라도 서주라는 말인가? 내가 그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치고, 다른 사람들이 바보도 아닌데 그 말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강왕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호은에게 지시했다.

    “정사당에 가서 상 수상을 오라고 해라.”

    * * *

    루안은 모처럼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 채 두 입도 못 먹었는데, 밖에서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씨 가문의 대공자께서 오셨습니다.”

    지온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오늘 관아에 안 가도 되는 날이에요?”

    루안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지가 자신들과 놀 때도 보통 밖에서 만났지 집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루안이 지온의 어머니들에게 사과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나도 같이 가요.”

    지온도 젓가락을 놓았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것이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응접실에서 유신지는 초조한 표정으로 방안을 빙빙 돌았다. 유신지는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루안을 덥석 잡았다. 

    “빨리 따라오게!”

    “어딜?”

    루안이 반대로 그의 손을 잡아 눌렀다. 

    유신지가 말했다.

    “강왕이 귀경했다는 거 자네들도 알고 있지? 그가 지금 강왕세자를 끌고 종정부(宗正府)로 가서 평왕에게 죄를 물어 달라고 청할 거라더군.”

    루안과 지온의 얼굴색이 변했다. 

    종정부는 황족의 사무를 관장하는 곳이었다.

    ‘강왕은 차(車)를 버리고 장군(將)을 지키려는 걸까, 아니면 큰일을 작게 만들려는 속셈인 걸까?’

    루안이 말했다. 

    “강왕세자의 죄를 묻는다면 아마 내가 증인이 되어야 할 것 같으니 가보세.”

    유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은 나도 관련이 있네, 같이 가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