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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354)화 (354/385)
  • 354화. 갈 필요 없습니다

    상용은 물론 그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이틀 후.

    대리사경은 단숨에 장작감(*将作监: 중국 고대 궁실, 종묘 등 토목건축을 담당하던 기관)의 옛사람들을 모두 구속하고 심문했다. 

    여러 방면의 진술을 대조해보면 상씨 가문의 조카인 상평은 기록을 베끼는 것만 책임졌을 뿐 진짜 그것을 사들인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이후 강왕세자를 탄핵하는 상소문이 눈송이처럼 천자의 책상으로 날아들었다. 

    강왕부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재빠르게 또다시 장작감과 관련된 뇌물 사건을 폭로하며 이를 평왕부와 연루시켰다. 

    사건에 연루된 관리들이 서로 물고 늘어져 조정이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상용이 어떤 사람인가? 4년 전 선대 황제가 승하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내며 수상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강왕세자 하나 정도를 상대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강왕부가 내놓은 증거가 갈수록 이치에 맞지 않자 민심은 더욱더 흉흉해졌다. 

    * * *

    강왕부에서는 꽃병이 또 온 바닥에 나뒹굴었다. 

    강왕세자는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참모들을 매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왜 말들이 없느냐? 전에 너희들이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말해봐라! 이제 본 세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참모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강왕세자는 화가 치밀어 올라 그들을 가리키며 욕을 했다.

    “평소에는 모두가 재능 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 아니었나? 어째서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전부 벙어리가 되었단 말이냐?”

    잠시 후, 마침내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세자 전하, 소인이 어떤 방법이 하나 떠올랐는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강왕세자는 눈을 들어 그를 보니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문객이었다. 평소에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지도 않았고 공무를 논의할 때도 거의 입을 열지 않았는데 뜻밖에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앞으로 나선 것이다. 

    ‘설마 나의 문하에도 모수(*毛遂: 전국시대 평원군 조생의 문객, 관직에 스스로 자기를 추천한다는 모수자천이라는 성어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강왕세자는 기분이 많이 누그러져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빨리 말해라!”

    이 문객은 고개를 숙이고 공수하며 말했다.

    “세자 전하께서는 즉시 봉지로 돌아가겠다고 상소를 올리십시오!”

    강왕세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본 세자더러 패배를 인정하고 풀 죽은 개처럼 꼬리나 말고 꺼지라는 소리냐?”

    문객은 비록 당황스러워하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세자 전하께서는 폐하의 친형님이십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당연히 의심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무리 선동하고 심지어 평왕을 곤경에 빠뜨려도 정세를 전환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더구나 강왕께서 경성을 떠난 지 수년이 지났으니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강왕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심이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상용은 오히려 수상으로서 나라의 정책 결정 권한을 장악하고 있는 데다, 권력이 날로 커지고 있으니 우리가 이길 수 없습니다.”

    강왕세자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못 이긴다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인제 와서 뒷북이라도 치는 게야?”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자 전하, 전에는 전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에 저희가 반대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너!”

    그는 이어서 말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전하께서 가지 않겠다고 버티면 상황이 더욱 나빠질 뿐입니다. 민심이 이렇게 흉흉하니 반드시 출구를 터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자진해서 가시면 언젠가 돌아올 날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경성에서 쫓겨나시게 된다면 앞으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강왕세자는 화가 나서 또 벼루를 때려 부쉈다. 

    그러나 아무리 화를 낸다 해도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낙담한 채 자리에 앉으며 그 문객에게 물었다.

    “지금 가면 정말 돌아올 수 있는 게냐?”

    문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일은 범죄의 증거는 없고 혐의만 있을 뿐입니다. 전하께서 자진하여 봉지로 돌아가는 것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더구나 부왕께서도 계시지 않습니까!”

    강왕세자는 침묵했다.

    부왕.

    그는 부왕의 책망이 두려워 기죽은 채로 봉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온 지 일 년 만에 경성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으니, 부왕께서 어찌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겠는가? 그는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세자 전하,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문객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전하께서 봉지로 돌아가시면 부왕께 한바탕 꾸지람을 들을 겁니다. 허나 꾸지람을 하신다 해도 전하께서는 부왕의 가장 가까운 아들입니다. 시간을 더 끌면 결과가 더 나빠질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왕께서도 도와주실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이 말을 듣고 강왕세자는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경성을 떠나야 한다면 떠나는 거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말이야.’ 

    3년 혹은 5년이 지나 일이 흐릿하게 잊힐 때쯤 부왕과 함께 다시 돌아오면 모든 것은 그렇게 지나가 버릴 것이다. 

    * * *

    강왕세자는 빠른 걸음으로 정원으로 들어갔다.

    세자비가 소현주에게 사무를 보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를 본 소현주는 두려워 벌벌 떨며 인사를 하고 더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강왕세자의 눈에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 한때 가장 사랑했던 이 딸이 이제는 꼴도 보기 싫었다. 

    “이런 건 내버려 두고 어서 짐이나 싸시오.”

    세자비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유모에게 소현주를 데려가라고 한 뒤 그에게 물었다. 

    “짐을 왜 싸는데요?”

    “봉지로 돌아가야 하오!”

    강왕세자는 기분 나쁜 말투로 말했다. 

    “그렇군요.”

    세자비는 도리어 가만히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강왕세자는 원래부터 심기가 불편했는데,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화가 더 뻗쳤다.

    “짐을 싸라 했는데 못 들었소?”

    세자비가 웃었다.

    “세자 전하, 이건 패배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그녀의 눈빛에서 비웃음을 본 강왕세자는 격노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표정이오? 내 진작 당신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슨 궁문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는 말만 듣지 않았어도 그놈한테 이 지경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거요!”

    “예, 예, 맞습니다. 모두 소첩의 잘못입니다.”

    세자비가 무성의하게 말했다.

    “아직도 짐 싸러 안 가고 뭐 하는 거요?”

    세자비가 눈을 들고 빙그레 웃었다. 

    “왜 짐을 싸야 하나요? 세자 전하께서는 안 가셔도 됩니다!”

    강왕세자는 더욱 화가 났다.

    “지금 안 가면 쫓겨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 말이오?”

    “아닙니다.”

    “그럼?”

    세자비의 가면이 벗겨진 이후로 강왕세자가 그녀 앞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훈계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자진해서 물러나면 의심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가는 거라 말할 수 있으니 여전히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을 거요. 그들한테 쫓겨날 때까지 기다리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거란 말이오.”

    세자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 전하께서 이번에는 생각을 제대로 하셨군요. 아주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근데 당신은 아직도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뭐 하는 거요?”

    세자비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 없이 꾸물거리며 뒷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만약 부왕께서 돌아오신다면요?”

    강왕세자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를 손으로 가리켰다.

    “당, 당신…….”

    세자비가 말했다.

    “부왕께서 이미 귀경길에 오르셨습니다. 부왕이 도착하시길 기다렸다가 이 일을 처리하면 되니 당신이 갈 필요가 없습니다.”

    강왕세자는 한숨 크게 들이마시고 나서야 이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소?”

    “제가 불렀으니까요!”

    세자비는 찻잔을 받쳐 들고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날 당신이 궁문에서 돌아오자마자 편지를 써서 봉지로 보냈습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도착하려면 아직 며칠 남았군요.”

    그날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지고 나서 강왕세자비는 강왕세자가 다시는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즉시 결단을 내려 강왕에게 편지를 썼다.

    아니나 다를까, 강왕은 편지를 받자마자 경성으로 오기로 했다.

    강왕세자의 표정이 변화무쌍했다. 잠깐은 기뻐했다가 또 갑자기 두려워하는 것이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듯했다. 

    세자비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의 기분을 가라앉히려 부드럽게 타일렀다.

    “부군, 걱정하지 마세요. 부자지간은 결국 부자지간입니다. 부왕께서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당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부왕께서 상경하시면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부왕 앞에 가서 잘못을 인정하세요. 부왕께서는 잠시 화를 내시겠지만 결국은 도와주실 겁니다. 참, 승원궁에 약을 묻은 것은 동생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왕을 도와 그 자리를 손에 넣으려고 했던 거라고 말씀하세요.”

    * * *

    루안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지온이 물었다.

    “왜 또 이렇게 늦었어요? 요즘 그 사건에 매달리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 사건 때문에 일이 더 많아졌소.”

    루안이 말했다. 

    “하나같이 싸워 대느라 바쁘니, 그래도 누군가는 일해야 하지 않겠소?”

    지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가 씻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지온이 유 노태사에 대해 말했다.

    “일부러 대공자를 불러다 한 말씀 하신 걸 보니 유 노태사께서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루안이 말했다.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이 정상이오. 워낙 위험한 일이니 말이오. 강왕부 쪽을 한동안 속일 수야 있겠지만 평생을 속일 수는 없소. 상 수상도 당연히 속으로는 알고 있겠지만 그저 지금은 나를 상대하기 귀찮을 뿐일 거요.”

    지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후 다시 그에게 물었다.

    “강왕이 소식을 듣고 경성으로 오지 않을까요?”

    “그럴 거요, 그러니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해야 하오.”

    이 말을 마치자 루안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고 이마를 짚었다.

    지온이 이를 보고 긴장하여 물었다.

    “왜 그래요, 어지러워요?”

    루안은 “윽” 하는 신음만 냈다. 

    지온이 그의 귀 뒤쪽을 보니 그 붉은 점은 더욱 선명해져서 마치 피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초조해졌다.

    “발작이 온 거예요? 당신 약은요?”

    루안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손을 끌어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소, 가서 약주 한 잔만 따라주시오.”

    “알았어요.”

    지온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찬장을 열었다.

    찬장 안에는 술이 한 항아리 있었고 그 외에 약을 담은 도자기 병도 몇 개 있었다.

    지온이 세어 보니 전보다 세 병이나 더 많았다.

    ‘그럼 이 3개월 동안 약을 먹지 않았다는 건가?’

    그녀는 조금 마음이 아팠다. 가능한 한 빨리 약성을 제거하려고 한 알도 먹지 않은 게 아닌가?

    루안은 버티기 힘들었는지 이미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지온이 얼른 약주 한 잔을 따라 그를 부축하여 천천히 입으로 흘려 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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