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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 (352)화 (352/385)
  • 352화. 상 수상의 화술

    상 수상도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지 않아 다음날 몸이 불편하다며 관아에 가지 않았다.

    하인이 휴가를 신청하고 돌아오니 문지기가 강왕부에서 사람을 보내 문병을 왔다고 보고했다. 

    상용은 이것이 조금 두려웠다. 그는 마음속으로 강왕부의 소식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노부인이 불평했다.

    “강왕부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 걸까요? 피곤해서 하루 쉬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굳이 문병을 와서 휴식을 방해하다니. 노야, 제가 사람을 시켜 내쫓겠습니다.”

    노부인이 봤을 때, 남편은 꾀병이 아니라 진짜로 몸이 불편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상용은 항상 아프지 않으면 병가를 내지 않았었다. 

    상용의 부인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상용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말했다.

    “아니요, 들어오라고 하시오.”

    “노야?”

    상 부인이 의아해했다.

    상용이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내 말대로 하시오.”

    그의 부인은 응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강왕부의 참모가 들어왔다. 그의 눈에 상용이 일상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 수상께서 자신을 들어오게 한 것은 그래도 여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상용이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 선생이었군. 앉게.”

    참모가 강왕세자의 관심과 염려를 전달하자 상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 전하께서 염려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지. 요즘 일이 많아서 이 늙은이가 아주 피곤했다네. 이제야 하루 쉬는 것뿐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네.”

    참모가 즉시 대답했다.

    “상 수상께서 승원궁 사건 때문에 바쁘신 것 아니십니까? 세자께서 어제 왕부로 돌아오셔서 상 수상께 폐를 끼쳤다고 많이 후회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상 수상께서 몸이 안 좋으시다는 말을 듣고 가서 문병을 드리라고 명하신 겁니다.”

    상용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 나리께서 예의를 아시는 분이시군. 이 사건이 좀 힘든 편이기는 하네. 그래도 제일 바쁜 곳은 형부와 대리사지.”

    참모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상 수상, 항상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세자 전하께서는 늘 수상을 존경하고 계십니다. 저희에게 수상은 나라의 기둥과 같은 분이고 수상께서 정사당의 방향을 잡아주셔야 저희도 마음이 놓입니다.”

    상용이 모호하게 말했다. 

    “세자께서 과찬을 하시는군. 이 늙은이는 폐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네. 안타깝게도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아 몸이 날로 쇠약해지고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주어진 본분을 다하려 노력하는 수밖에.”

    상용은 이렇게 몇 마디하고는 졸린 기색을 내비쳤다.

    참모는 하는 수 없이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 

    상용의 부인이 병풍 뒤에서 나오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강왕부에서 지금 뭐 하는 걸까요? 어제는 그렇게 소란을 피우더니 오늘은 또 비위를 맞추는 겁니까?”

    상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제 소란을 피웠으니 비위를 맞춰야 하지 않겠소.”

    상용의 부인도 수십 년 동안 내조를 했기 때문에 정사에 능통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마침내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강왕세자가 아무래도 꺼림칙했나 보군요. 당신하고 척을 지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상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그 일이 내가 한 짓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을 거요. 허허, 내가 한가한 것도 아닌데 그런 객기를 부려 뭘 한단 말이오. 양쪽 다 다치지 않도록 지금 솔직하게 해명하는 것도 좋겠지.”

    강왕세자가 정사당에 덤터기를 씌우려고 해서 당연히 그도 화가 났다. 하지만 이 일은 강왕부를 적으로 돌릴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부인이 물었다.

    “노야, 당신의 말뜻을 강왕부에서 알아들을까요?”

    상용이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꾸짖었다. 

    “왜 못 알아듣겠소? 내가 그리 분명하게 말했는데요!”

    * * *

    강왕부의 참모가 상 수상의 저택에 들어서자 조 선생은 정원으로 쪽지를 보냈다. 

    지온이 글씨를 연습하다가 붓을 든 채 웃었다.

    “상 수상께서 이 일에서 발을 빼고 싶으신 모양인데 너무 늦었지!”

    조 선생은 그녀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부인,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지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때쯤이면 강왕부에 소식이 전해졌을 걸세. 우리는 이 연극이 시작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조 선생은 앞채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답답했다. 동료들이 민보를 흔들며 의기양양하게 구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하하하, 다들 오늘 민보를 봤나? 경성의 찻집과 술집에 소문이 쫙 났는데, 이번에는 강왕세자의 잘못이 까발려졌다는구먼.”

    조 선생은 민보를 빼앗아 위의 머리기사를 확인하고는 불현듯 큰 깨달음을 얻었다. 

    상 수상은 화술에 능해서 말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그런 화법을 즐겨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말을 명확하게 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강왕세자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쪽에서 사람을 보내 먼저 고개를 숙였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여론이 이미 대세가 된 것을 발견한다면 그가 상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

    강왕부. 

    아직도 상용의 말뜻을 추측하고 있던 강왕세자에게 갑자기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성에는 이미 형이 동생에게 질투를 품고 여러 가지 일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는 잠시 추측을 멈추더니 몹시 화를 냈다.

    “상용 이 노인네가! 이게 네가 최선을 다해 본분을 다하는 거란 말이냐? 그래! 네 본분은 바로 병신 같은 여섯째 놈을 두둔하는 거였지!”

    참모들이 급히 그를 둘러쌌다.

    “세자 전하 고정하십시오, 고정하십시오!”

    강왕세자는 벌써 십여 개의 꽃병을 집어 던졌는데, 더 이상 깨뜨리면 사기도 힘들었다. 

    * * *

    불과 하루 만에 여론은 바람처럼 온 경성을 휩쓸었다.

    다음날 조회(朝会) 때가 되자 마치 이미 끓는점에 도달한 물처럼 부글거렸다. 

    “상 수상.”

    “상 수상.”

    상용이 조방(朝房)에 들어서자 여러 관리가 잇따라 인사를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자리에 앉자 내관이 정성스럽게 차를 올렸다.

    “상 수상.”

    누군가가 다가오며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어제 민보…….”

    상용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는 민보라는 것이 나타나자마자 민의를 선동하기 쉬운 이 물건을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저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만 다뤄왔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허나 어제 민보에 그 우스꽝스러운 일이 실린 것을 보고 상용은 이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폐하께서 민보를 극찬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뭔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느릿느릿 차를 마시며 물었다.

    “뭘 말인가?”

    그 사람이 옆을 흘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 간관(*言官: 천자의 잘못을 간언하는 직위)이 오늘 탄핵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상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문 듣고 그것을 보고하는 것이 간관(*言官: 천자의 잘못을 간언하는 직위)의 직무이지.”

    일이 이렇게 소란스러워졌으니 어사가 상소문을 올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관리가 그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럼 저희는…….”

    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내감이 큰 소리로 조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급히 말을 거뒀다. 중신들은 줄줄이 궁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공무를 논의하기 시작하자마자 어사들이 나서서 강왕세자의 죄상을 하나하나 진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왕세자가 일부러 궁문 앞에서 석고대죄하며 스스로 벌을 준 것은 악의를 품고 황제를 압박하려 한 것이라 간언했다.

    “폐하, 승원궁에 약이 묻혀있던 사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용의자인 강왕세자는 가만히 앉아 사건의 진전을 기다리기 힘들어 궁문으로 달려 나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했으니 그 심보가 정말 고약합니다.”

    “더구나 이 일이 새어 나가게 된 경위가 무엇입니까? 바로 강왕부가 협조를 거절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댔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황실의 위엄이 땅에 떨어지고 조정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이 일을 추궁하지 않는다면 백성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을 것입니다.”

    황제는 정말 이 말들을 따라 그를 추궁하고 싶었다. 하지만 루안의 당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일은 짐도 알고 있네. 강왕세자가 그리 주도면밀한 사람이 아니라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지만 꼭 짐을 압박하려 했던 건 아닐 걸세.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죄를 인정해버리는 것은 불공평한 일일세.”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상용은 황제의 입에서 예상 밖의 말이 나오자 순간 주저하며 루안이 있는 쪽을 흘끗 건너보았다.

    ‘이건 아마 루안이 알려준 것이겠지? 이 새파랗게 어린 자식이 황제한테 미치는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구나…….’

    하지만 이 일은 이렇게 처리해버리는 편이 좋았다. 계속 소란을 피워봤자 결코 좋을 게 없었다. 

    그가 막 앞으로 나가 황제의 말에 맞장구를 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뛰쳐나와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상용이 얼핏 보니 전(钱) 재상이었다. 

    이 전 재상은 강왕부와 왕래가 좀 있는 사람이었다.

    상 수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쓸데없는 말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그가 나서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황제가 물었다.

    “전(钱) 재상,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전 재상이 대답했다. 

    “폐하, 몇몇 대인들의 의견에 신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게.”

    전 재상이 말했다.

    “대인들께서 방금 민중의 분노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이 생각을 좀 해보았습니다. 이 민중의 분노가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께 궁문에서 사죄한 일 때문에 생겨난 것 같지만, 결국 그 근원을 따져보면 승원궁에 약이 묻혀있던 사건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러했기에 신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신도 물론 강왕세자께 잘못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일을 근본적으로 수습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명실상부하게 죄를 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모호한 죄명을 씌운다면 백성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겁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어서 상용은 몹시 만족스러웠다.

    황제도 지금 이 일로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그에게 말했다.

    “전 재상의 말이 일리가 있구려.”

    어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이 그리 한참을 떠들어 댔는데도 결국 이렇게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럼 바깥 여론은 어떡한단 말인가?

    물론 이런 여론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어쨌든 강왕세자에게 죄를 물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은 할 수 없는데…….’

    상용은 해결 방안을 궁리하면서 전 재상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마침 어제 신이 장작감(*将作监: 중국 고대 궁실, 종묘 등 토목건축을 담당하던 기관)에서 오래된 기록을 찾았는데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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