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몇 개의 질문
관리들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정양문 쪽의 대로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전부 문인이 입는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아직 서생인 자도 있고 이미 급제한 자도 있었다. 그들은 빠르지만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로 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상용에게서 가까운 곳까지 도착했다.
상용은 가슴이 철렁했다. 문득 작년에 보았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어찌 이리 오늘과 비슷하단 말인가? 설마……?’
“여러 어르신, 죄송하지만 좀 비켜주십시오. 저희가 강왕세자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르신, 똑바로 서세요. 거기 소저, 조심하세요…….”
학생들은 비록 크게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예의 바른 태도로 겸손하게 말을 하며 걸어왔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두 갈래로 갈라져 그들에게 다리 끝까지 길을 양보해주었다.
한창 매를 맞고 있던 강왕세자는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를 눈치채고 궁금증이 일었다.
학생들은 이미 멈춰 서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저쪽의 강왕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두에 선 한 학생이 소리쳤다.
“강왕세자 전하, 저희는 경성의 각 서원에서 왔습니다. 오늘 학회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세자께서 석고대죄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왔습니다.”
강왕세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니 과연 많은 학생이 와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그는 내심 기뻐하며 생각했다.
‘설마 이 학생들이 오늘 일을 듣고 내게 용기를 북돋워 주러 왔단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지, 이렇게 책을 읽는 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죄하며 스스로 벌을 주는 걸 좋아하지 않잖아?’
“서생들이었구려. 본 세자가 지금 제대로 인사하기 불편하니 양해해주게.”
강왕세자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 학생이 대답했다.
“저희가 세자 전하께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거기서 말씀하실 수 있고 저희도 여기서 들을 수 있으니 예의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기회라고 생각한 강왕세자가 대답했다.
“알겠네! 말해보게.”
이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질문을 외쳤다.
“듣자니 세자께서 오늘 스스로 사죄하며 처벌을 청하였다고 하시던데, 무슨 죄입니까?”
강왕세자는 속으로 이 질문은 너무 쉽다고 생각하며 좀 전에 외쳤던 세 문장을 되풀이했다.
학생들이 모여 작은 소리로 몇 마디 수군댔고 그 선두의 학생이 이어서 소리쳤다.
“첫 번째로 세자께서 직무를 소홀히 한 죄를 지었다고 하셨는데, 정사당이 대리사, 형부와 협동하여 조사하는 그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강왕세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쪽에서 또 물었다.
“두 번째로 세자께서 루 통정의 협조를 거절한 죄를 지었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은 이 사건을 담당한 관리이지 않습니까?”
강왕세자는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학생들이 계속 물었다.
“세 번째로 세자 전하의 부왕과 조부는 폐하의 친아버지와 할아버지이시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때 강왕세자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재차 물었고 하필 얼버무릴 수도 없는 질문이라 그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학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그를 향해 양손을 말아 쥐고 모으며 인사하고는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세자께서 관련되었다고 말씀하신 사건은 이미 조정에 입안되어 있습니다. 세자께서 죄를 저질렀다고 말씀하신 상대가 바로 그 사건의 담당 관리입니다. 그렇다면 세자께서는 죄를 인정하고 정사당이나 대리사 혹은 형부에 가시지 않고 지금 정양문에 와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강왕세자는 넋이 나갔다.
구경하는 백성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상용을 비롯한 관원들도 멍해졌다.
이 얼마나 간단한 이치란 말인가?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황제의 친형인 강왕세자가 이렇게 와서 사죄하니 백성들은 그의 존귀한 신분에 압도되어 그런 방면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사실 관리들은 이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들이 어디 강왕세자의 얼굴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낼 수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강왕세자의 뺨을 후려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정에는 강왕부에 기대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앞에서 그들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처럼, 이렇게 체면이 구겨질 정도까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역시 좋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런 질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런 학생들뿐이었다.
그들은 학식과 예절이 있으면서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 권세에 현혹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관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 여러 가지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들도 그들에게 좀 더 관용을 베풀었다.
사회의 때를 타지 않은 젊은이들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니 실수를 해도 이해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강왕세자는 그런 그들과 언쟁을 벌이다가 도리어 품위를 잃은 셈이었다.
수상 상용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누가 이 학생들을 부른 거지?’
관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머리를 굴렸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상용은 절로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이 일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누가 일부러 꾸민 짓인가?’
만약 우연의 일치라면 그들은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만약 일부러 꾸민 것이라면, 누군가 벌써 한참 전부터 이 일에 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세자 전하.”
회초리를 들고 있던 시위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강왕세자의 얼굴이 어두웠다.
이런 질문을 받고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 자신이 오늘 벌인 연극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강왕세자는 마음속으로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 뒤 감정을 억누르고 성실한 말투로 대답했다.
“학생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가 보군. 물론 이 일을 정사당이 주관하긴 하지만 본 세자는 황족의 종친이네. 폐하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정사당에 가면 누가 감히 본 세자를 맡겠는가? 누가 진정으로 공평하게 법을 집행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그들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자신의 신분이 너무 높아 관리들이 자신을 심문하기 어려우니 다 그들을 생각해 이런 행동을 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백성들이 생각해보니 이 말도 일리가 있었다.
포청천 같은 연극에서 사건을 심리할 때 보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의 신분이 너무 높으면 황제에게 지시를 청하지 않던가!
민심이 바뀌는 것을 본 강왕세자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지었다.
‘흥! 말 한마디로 나를 잡겠다고?’
그가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학생 중에서 한 명이 나와 말했다.
“세자 전하의 말씀이 아주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자께서 대인들을 차마 난처하게 할 수 없으셨던 거라면 어찌하여 폐하를 난처하게 하시는 겁니까?”
강왕세자는 잠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그래서 그는 학생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폐하께서 강왕부 출신이신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전하의 부왕과 조부는 폐하의 친아버지와 할아버지이시기도 하지요. 지금 경성에는 승원궁의 사건이 강왕부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한쪽은 친혈육이고, 한쪽은 대를 이은 선조입니다. 전하께서는 대체 폐하께서 이 일을 어찌 처리하라고 이런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이 말이 나오자 정양문 주변이 조용해지고 많은 사람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 일의 꼬인 부분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만약 강왕부가 정말 황실을 음해했다면 강왕부의 피를 이어받은 황제는 아주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고 그 학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는 어려서부터 입궁하여 선대 황제의 슬하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선대 황제 폐하와 부자의 정이 깊고 선대 황제께서 당신을 길러준 은혜를 잊지 않고 계십니다. 지금 누군가가 선대 황제를 모함하여 해친 것을 알았으니 폐하께서는 응당 선대 황제를 위해 정의를 바로 세우려 하시겠지요.
그런데 하필이면 용의자가 친아버지와 조부이니 얼마나 난처하시겠습니까? 그렇기에 폐하께서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일을 정사당에 맡기신 겁니다. 그런데 세자께서는 그 마음을 알아주지는 못할망정 정양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폐하를 다그치는 것으로 응수하신 겁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생이 감히 묻겠습니다. 전하께서는 폐하가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하를 위로하면 강왕부를 대신하여 혐의를 부인하는 것과 같으니 선대 황제를 뵐 면목이 없어질 겁니다. 그렇다고 전하에게 벌을 주면 피를 나눈 형제를 외면하고 친아버지와 조부에게 오명을 씌우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옳습니다!”
옆에 있던 그의 동료가 손을 들고 소리쳤다.
“이건 폐하를 들들 볶는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학생들이 응원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사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협박을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가다가는 폐하께서 죄기소(*罪己诏: 제왕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자책하며 내리는 조서)를 내리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렇게 친동생을 모함하여 해치다니 악독하기 그지없습니다!”
학생들의 분노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서생들의 말이 일리가 있어! 폐하께서 이 상황에서 어찌하시겠어? 양쪽이 모두 가족인데.”
“세자는 이런 생각도 안 해본 거야? 형이 되어서는 어쩜 아우 생각을 이렇게 하나도 하지 않을 수가 있지?”
“아이고, 잊었어? 영종제와 선대 황제뿐만 아니라 폐하까지 피해를 보셨다니까!”
“어쩐지 루 통정이 세자를 불러 묻더라니, 세상에 무슨 이런 형이 다 있담…….”
강왕세자는 말문이 막혔다.
‘이 서생들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죄기소(*罪己诏: 제왕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자책하며 내리는 조서)를 내린다니! 거기까지는 생각도 안 해 봤는데!’
오늘 정양문에 무릎을 꿇은 것은 솔직히 말해서 고육지책이었다. 처참한 자기 모습을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동정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여론이 자신에게 기울지 않고 증거가 없는 한 혐의를 피하려고 경성을 떠날 필요는 없었다.
황제가 곤란해지든 말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곤란하면 또 어떻단 말인가? 그 자식은 황궁에 숨어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을 테고 결국 재상들이 나서서 해결해 줄 텐데?
까놓고 말해서 그의 오늘 이 연극은 황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강왕부와 맞서는 조정 대신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의 선동으로 인해 마치 자신이 황제에게 악의적인 계략을 꾸민 것처럼 되어 버렸다.
승원궁에 묻힌 약 사건까지 갖다 붙이면 혐의가 더 무거워질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