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47)화 (347/385)
  • 347화. 누가 소문을 냈나?

    두 사람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루안은 강왕세자를 바라보았다.

    “세자 전하,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강왕세자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표정이 흐렸다. 

    그는 승원궁의 벽돌 밑에서 약이 나온 사건에 집중하는 바람에 이 사건을 아직도 조사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루안이 대뜸 죄를 지은 궁녀가 강왕부와 관련이 있다고 하자 그는 잠시 이것이 대체 그를 속이려는 수작인지 아니면 정말 단서를 잡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참모는 강왕세자를 한 번 보더니 다시 루안을 보고 말했다.

    “보잘것없는 왕부의 노복일 뿐인데 세자 전하께서 수고하실 필요까지 있습니까? 루 통정께서 사소한 일로 소란을 피운 것이나 다름없군요. 차라리 소인이 통정을 따라가서 조사에 협조하면 어떻겠습니까?”

    루안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귀하는 왕부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소?”

    참모는 멍해졌다. 

    “그게…….”

    “벼슬도 없고 직책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강왕부를 대표한다는 말이오?”

    참모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루 통정께서 마음에 안 드신다면 왕부의 장사(*长史: 부(府)의 정령(政令)을 관장)를 보내겠습니다. 그럼 괜찮지 않겠습니까?”

    루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물었다.

    “세자 전하, 정말 안 가시겠습니까? 그분은 령(令) 공자의 유모입니다. 만약 장사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하관이 다시 왕부에 가서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왕세자는 화가 나서 웃음이 다 나왔다.

    이건 명백한 협박이었다. 

    강왕세자가 가지 않으면, 루안이 다시 잡으러 올 거라는 말이었다.

    정말 그런다면 당당한 친왕세자인 자신의 명성이 어떻게 변하겠는가? 관병들이 자신을 잡으러 뻔질나게 드나들면 잠깐의 웃음거리 정도가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참모가 다시 말하려는데 강왕세자가 입을 열었다.

    “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이상 내가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있겠나? 그럼 루 통정을 따라 한 번 다녀옴세. 하루빨리 범인을 찾아 폐하를 편히 주무시게 해드려야지.”

    루안은 그제야 웃음을 지으며 손을 바깥쪽으로 뻗었다. 

    “대의를 이해하는 전하의 깊은 마음에 하관은 탄복하였습니다. 가시지요.”

    시위들은 오는 것도 빨랐지만 가는 것도 빨랐다. 강왕세자가 찻집을 나서자 시위들도 곧 뒤따라 물러갔다.

    그들은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들이 떠나자 찻집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야! 오늘 엄청난 사건을 보았군. 와, 다들 이해했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침묵이 깨지자 순식간에 찻집이 발칵 뒤집혔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기 바빴다. 

    “루 통정께서 깔끔하게 말해주셨잖아? 누군가 폐하의 침실에다 나쁜 짓을 했다고. 그와 관련된 궁녀가 마침 강왕부와도 관계가 있어서 강왕세자에게 협조를 요청한 거고.”

    이 말을 하자마자 그는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자네 바보인가? 그저 협조만 필요한 거면 강왕세자 본인이 갈 필요가 뭐가 있어? 왕부의 장사가 나서도 충분한 일인데. 그건 분명히 듣기 좋게 돌려서 한 말일 뿐이고 사실상 강왕세자를 잡아간 거지.”

    “설마? 그럼 자네 말은 강왕세자가 궁녀를 매수해서 폐하를 놀라게 한 거란 말이야?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한다고?”

    “뭐가 그렇게까지인데? 그게 정말 작은 일 같아? 놀라서 병이 난다는 말이 없는 말도 아니잖나.”

    이 말은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바로 인정을 받았다.

    “누가 아니래? 우리가 붙이는 문신(*门神: 문짝에 붙이던 귀신의 형상으로 대문을 지켜 잡귀를 쫓고 불행을 막아준다는 귀신)이 다 어디서 온 거겠어? 당(唐) 태종처럼 영민하고 용맹스러운 사람도 악몽에 놀랐다는데.”

    “그러니까 강왕세자가 일부러 폐하를 놀라게 했단 거야?”

    “그건…….”

    대화가 이 대목에 이르자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다들 계속 토론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더 하면 너무 깊이 파고들게 될까 봐 시치미를 떼며 찻잔을 들었다. 

    “차나 마시자고! 차나 마시게.”

    사람들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들은 이 일에만 관심이 있어? 더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군?”

    사람들이 잇따라 말을 꺼낸 자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그 사건이 사실이었어, 방금 강왕부 사람이 직접 인정했잖아.”

    ‘응? 무슨 사건?’

    사람들은 돌이켜 생각해보고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맞아, 폐하가 자식을 못 낳게 침실에 누군가 수작을 부렸다는 소문이 있었지.”

    그리고 그들은 영종제와 선대 황제까지 언급했다.

    ‘잠깐만, 그럼 영종제와 선대 황제도 피해를 입었다는 거야? 맙소사!’

    찻집에 있던 사람들이 순간 말을 잃었다.

    자신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폐하께서 놀라신 것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이거야말로 정말 심각한 사건이었다!

    * * *

    불과 반 시진도 안 되어 강왕세자는 궁에서 나왔다.

    궁궐 문밖에서 기다리던 부하들이 그를 에워쌌다.

    “세자 전하, 괜찮으십니까?”

    “세자 전하, 루안이 전하께 무슨 불경한 짓이라도 했습니까?”

    난데없이 이런 일을 당한 강왕세자의 말투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겠느냐? 괜찮다!”

    부하들은 믿지 못했다.

    “저 루안이란 놈이 이 틈에 전하께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닐까요?”

    강왕세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유모의 상황을 묻고 또 그날 밤 나의 행적을 물었다.”

    세자는 마음속으로 조소했다.

    ‘그런 명백한 단서를 남길 리가 있겠는가? 북양왕가 넷째 공자가 정말 나를 얕잡아봤구나.’

    참모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루안이 찻집까지 쫓아와서 사람을 잡아가 놓고, 결과가 겨우 이거라고? 정말 그답지 않은데!’

    하지만 눈앞에 뻔히 펼쳐진 상황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한참 만에, 누군가 결국 입을 열었다. 

    “세자 전하께서 괜찮으시면 된 게지. 우리는 일단 왕부로 돌아가세.”

    * * *

    다음날 수상 상용은 상소문을 매섭게 책상에 던지고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누구 대답해 줄 사람 없소?”

    의사당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상용의 얼굴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본 수상이 몇 번을 말했소? 이 사건은 조용히 처리해야지 소문이 나버리면 황실의 위엄이 손상될 거라 하지 않았소. 그런데 결과가 이거요? 방금 본 재상이 외출했더니 이미 항간에 소문이 쫙 퍼져 있더군. 심지어 마부나 떡장수까지도 다 그 얘기를 하고 있었소!”

    “영종제, 선대 황제, 그리고 지금의 폐하까지 3대 황제가 모두 자손을 갖지 못하게 하는 음해를 당했는데 이제야 발견했다고 떠들어 대고 있었소. 이런 비화를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었단 말이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오? 황실의 비밀이 언제부터 장사꾼들이 밥 먹고 차 마시며 떠들어대는 이야깃거리로 전락했단 말이오? 황실의 체면은 어디로 가고 또 내 체면은 어디로 갔단 말이오? 누가 소문을 낸 거요? 자진해서 나오시오!”

    아무도 인정하는 사람이 없으니 상용은 한 명씩 지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리사, 이 일은 당신들이 주관했는데 혹시 업무 인계하면서 말이 새어 나간 것 아니오?”

    대리사경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상 수상, 대리사는 일찌감치 위아래로 입을 다 봉했습니다. 하관이 보증하건대 이 일은 절대로 우리 쪽에서 발설한 건 아닙니다.”

    당당하게 나오는 그의 모습에 상용은 어쩔 수 없이 목표를 바꿨다. 

    “형부는 어떻소? 실수가 없었던 게 확실하오?”

    형부의 설 상서 역시 말했다.

    “상 수상, 이 사건을 맡은 이후로 우리 형부에서 차출한 사람들은 거의 집에 돌아간 적이 없는데, 어디 나가서 이러쿵저러쿵 떠들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못 믿으시겠으면 우리 쪽에 와서 한 번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지금도 거기서 자고 있습니다!”

    상용은 더 화가 났다.

    “당신들이 전부 아니라고 하면 설마 우리 정사당에서 소문을 냈단 말이오?”

    의사당은 침묵만 맴돌았다. 마침내 어떤 사람이 겁에 질려 손을 들었다. 

    “상, 상 수상, 하관이 알고 있습니다.”

    상용이 쳐다보니 말을 꺼낸 이는 기록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였다.

    “그게 누군가?”

    그 관리가 대답했다.

    “강……왕부입니다.”

    상용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잘못 안 건 아니겠지?”

    이 사건의 혐의가 가장 큰 자가 누구인가? 아마 누구나 다 강왕부를 떠올릴 것이다! 그들은 황실의 적자가 끊기면 이득을 보게 되는 쪽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강왕부가 스스로 소문을 냈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 * *

    강왕세자비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뭐라고요?”

    그녀는 화장하면서 강왕세자와 거울을 통해 눈을 마주쳤다. 

    강왕세자는 몹시 초조해하는 모양새였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곳곳에 소문이 자자하오. 이 루안이란 작자가 정말 계략이 대단하오! 일부러 찻집까지 찾아와서 날 데려간 건 그 기회를 빌려 이 일을 널리 소문내려 한 게 아니겠소.”

    “그래서 계략에 빠졌단 말입니까? 그래 놓고 밤새 이상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셨다고요?”

    강왕세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세자비는 가슴을 누르며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세자 전하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강왕세자가 말했다.

    “당연히 얼른 해명해버리고 흘러가게 두면 되지 않겠소. 부왕과 조부의 청렴한 평판에 좀 손상이 가긴 하겠지만 말이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황제가 부정한 방법으로 즉위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조정에 동요를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황족이 자신들의 가문 하나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세자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저 유언비어가 널리 퍼졌을 뿐이지요. 이런 소문이 퍼지기는 쉬우나 해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이런 황실 비화인 경우에는 더 그렇지요.”

    “아무리 어려워도 시도해봐야지 않겠소.” 

    강왕세자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오.”

    만약 이 사실이 봉지에 전해져 부왕이 알게 된다면 분명히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강왕세자가 귀경한 이유는 정세를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또 문제를 일으킨다면 부왕은 그가 일을 성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망친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세자비가 말했다.

    “세자 전하, 소첩이 한 가지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강왕세자가 급하게 물었다.

    “그게 뭐요?”

    “옷을 벗고 황궁 입구에 가서 석고대죄하십시오. 폐하께서 가라고 하시더라도 종일 무릎을 꿇고 있는 겁니다.”

    강왕세자는 어리둥절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세자비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말했다. 

    강왕세자는 그녀를 한참 쳐다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오 씨,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 기회를 빌려 날 괴롭히려는 거요? 나더러 사죄하라 하면 그만이지 옷을 벗고 처벌까지 청하라고? 이게 온 경성의 백성들더러 다 와서 구경하라는 게 아니면 뭐요? 그럼 내가 뭐가 되겠소?”

    세자비는 웃는 얼굴로 연지를 고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가지 마십시오. 그래봤자 사람들은 몇 마디 떠들어대기만 하겠지요. 그럼 부왕께서는 혐의를 피하려고 당신을 봉지로 부르실 테고 당신은 앞으로 8년이고 10년이고 경성에 돌아올 수 없게 될 겁니다. 참 별일 아니지요, 안 그렇습니까?”

    조롱하는 그녀의 말투를 듣고 강왕세자는 이를 갈며 꾸짖었다. 

    “정말 말을 그따위로밖에 못하겠소? 하늘 같은 부군이란 말도 모르오?”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던 강왕세자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 

    이렇게 가다 보면 정말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부왕에게는 황위의 계승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일 테니 그때가 되면 자신을 희생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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