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46)화 (346/385)
  • 346화. 어찌 그리 급하시오

    다들 자기 말이 옳다고 우겨대니, 찻집 안이 시끌벅적했다. 

    강왕세자는 새에게 장난을 치며 그런 것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 

    장남이 가업을 계승한대도 뭐 어떤가? 아들이 없으면 결국 차남의 손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선대 황제처럼.

    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한마디 했다. 

    “폐하께서도 선제의 양자가 되어 황위를 계승하셨고 잘하고 계시잖아?”

    또 다른 누군가 바로 말을 받았다. 

    “자네는 종실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당금의 황상께서 왜 선대 황제의 양자가 되었는지 생각해본 적 없나?”

    방금 말을 했던 사람이 말했다.

    “그야 당연히 폐하께서 선대 황제의 슬하에서 양자처럼 자랐기 때문이겠지.”

    이 말은 바로 부정당했다. 

    “틀렸어! 그건 그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일 뿐이지. 가장 중요한 건 폐하께서 강왕부 출신이시고, 강왕부는 자손을 생산하는 능력이 왕성하다는 데 있어. 선대 황제께서 양자를 들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말이지.”

    이 얘기가 나오자 누군가는 또 다른 것을 떠올렸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폐하께서 등극하신 지 4년이나 되었는데도 후궁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강왕부는 자손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지 않았나?”

    뭔가 소문을 전해 듣고 온 사람이 은밀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 그 소문 들었나? 며칠 전에 폐하의 침실에서 뭔가를 발견했는데 자식을 낳기 힘들게 만드는 거였다더군. 지금 정사당에서 조사한다던데.”

    “뭐? 그런 일이 있었어?”

    이건 정말 놀라운 소식이라 찻집 안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말해봐, 얼른 말해봐!”

    그가 막 입을 열려던 차에 찻집 사장이 말을 끊었다.

    “여러분, 적당히 하세요! 우리가 알면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에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일을 못 듣다니? 하긴, 궁과 관련된 일은 입을 잘못 놀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

    그래서 모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 차를 마시며 다른 사람이 민보 읽는 것을 들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갑옷을 차려입은 시위들이 늑대처럼 찻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모두 무슨 일인지 몰라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설마 우리가 몇 마디 한 것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이렇게 빠를 리가 있나?’

    하지만 시위들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시위들은 달려 들어와 문가에 한 줄로 서서 지키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찻집이 절로 조용해졌다. 마중 나가던 주인마저도 걸음을 멈췄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젊은 관리가 뒷짐을 지고 들어왔다. 그는 눈으로 번개처럼 가게 안을 훑었고 그 시선이 마침내 강왕세자에게로 가서 멈췄다.

    그가 말했다.

    “강왕세자 전하, 하관이 황명을 받들어 사건을 처리하는 중이온데 잠시 저희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찻집 안의 사람들이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이게 뭐야? 강왕세자를 잡으러 왔다고? 어디서? 대체 어디서?’

    ‘세상에나, 감히 강왕세자를 잡으러 오다니,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상황이 아주 흥미진진했다. 다들 오랜 시간 항간의 풍문을 듣고 살았지만 이런 상황을 직접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왕세자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이 사람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루 통정!”

    루안이 담담한 표정으로 밖을 향해 손짓했다.

    “세자 전하, 어서 가시지요!”

    강왕부 사람들은 당연히 이 상황을 좌시하지 않았다. 한 참모가 나서서 물었다. 

    “루 통정, 감히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우리 세자께서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또 통정께서는 어떤 자격으로 구속하러 오신 겁니까?”

    루안이 흘끗 그를 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너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세자 전하의 체면이 상하실 것 같으니 가는 길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소!”

    강왕세자가 어찌 루안과 함께 갈 수 있겠는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루안에게 끌려가면 가만히 앉아 죄를 지었다고 시인하는 꼴이 아닌가? 찻집의 소문은 아주 빨라서 설령 강왕세자가 무사히 나온다더라도 괜한 오명을 뒤집어쓸 것이 분명했다. 

    참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루 통정, 우리 세자 전하는 어엿한 왕세자이십니다. 통정께서 잡아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잡아갈 수 있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신은 통정입니다. 이것이 형옥의 업무임은 제쳐두고, 명분도 없이 무슨 자격으로 세자 전하를 잡아간단 말입니까?”

    루안이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못 들었소? 본관이 방금 황명을 받들어 사건을 처리한다고 말하지 않았소. 폐하의 뜻이 그러한데 뭐가 명분이 없다는 게요?”

    ‘황명?’

    찻집 안의 구경꾼들이 절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강왕세자를 잡아 오라고 했다니, 이 형제가 서로 등을 돌리려는 건가?”

    “여태껏 강왕세자가 혈연을 등에 업고 황제에게 이래라저래라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했기에 황제가 사람을 보내 세자를 잡아 오라고 했단 말인가?”

    “어, 혹시 조금 전에 들은 그 소문 때문인가? 황제가 자식이 없으면 누구에게 가장 유리하겠는가? 의심할 여지 없이 강왕세자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조차 이런 생각을 떠올렸으니 강왕부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요 며칠 강왕부 사람들은 관원들이 이 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뒤에서 몰래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루안이 이렇게 직접 사람을 잡으러 오자, 그들은 절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 뭔가를 찾은 걸까?’

    어쨌든 세자 전하를 사람들 앞에서 데려가게 둘 수는 없었다.

    옆에 있던 강왕세자 밑의 문객이 말했다.

    “폐하께서 루 통정에게 이 사건에 협조하라고 명하신 것은 루 통정을 신뢰하셔서 그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상전의 말을 구실로 삼아 친왕세자를 함부로 잡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잡아가시려거든 증거를 보이십시오.”

    이 말을 들은 루안은 불쾌감을 내비쳤다.

    “자네 지금 황명을 구실이라 했소?”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얼른 입을 막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했다.

    그 문객은 잠시 멍해졌다가 급히 덧붙였다.

    “루 통정, 말을 고의로 왜곡하지 마십시오. 소생은 그저 폐하께서 이 사건에 협조하라고 하신 것이지 사람을 잡아갈 권리까지 주신 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우리 세자 전하는 평범한 신분이 아니시니 설사 무슨 일을 저지르셨더라도 폐하께서 직접 성지를 내리셔야 합니다. 통정께서 그런 성지를 가지고 계신 겁니까?”

    루안이 미소 지으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버무렸다. 

    “하관은 세자 전하께 가서 사건 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했을 뿐이오. 귀하는 뭘 그리 심각하게 말을 하는 게요? 마치 세자 전하가 이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벌써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하는구려.”

    “…….”

    문객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북양왕가 넷째 공자가 정말 헛소리를 잘하네. 같이 가서 사건 처리에 협조해 달라는 것은 사람을 잡아가겠다는 걸 완곡히 돌려 말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같은 뜻이 아니라니!’

    루안이 다시 말했다.

    “다들 잘 생각해 보시오. 하관은 처음부터 세자 전하에게 예를 갖추어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을 뿐이오. 만약 한사코 거절한다면 하관이 궁에 한 번 더 다녀와야 하겠지요. 세자 전하, 전하께서도 일을 그렇게까지 꼴불견으로 만들고 싶으신 건 아니시겠지요?”

    그 참모가 강왕세자를 흘끗 보니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세자의 생각을 눈치챈 그가 계속 말했다.

    “루 통정, 말끝마다 황명을 갖다 붙이며 사람을 억압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 형님에 대한 우애가 깊으시고 또 존중하시는데 어찌 실질적인 증거도 없이 사람을 보내 세자 전하를 잡아 오라고 하시겠습니까? 세자 전하를 데려가려거든 먼저 증거를 내놓으십시오.”

    루안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참모는 이 상황을 보고 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역시 증거는 없는 것이다. 그럼 자신이 무례하다고 탓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루 통정, 이건 너무 독단적이십니다. 증거가 하나도 없으면서 이 사건이 세자와 관련이 있다고 확정해 버리는 건 괜히 생사람 잡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행동하시는 것을 보니 통정께서 전에 형부에 계셨을 때는 판결을 어떻게 내렸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맞습니다!”

    문객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오랫동안 조사해놓고도 아무것도 못 찾지 않았습니까. 분명 조사한 사람들이 무능력한 탓이겠지요. 그런데 어째서 지금 또 상상만으로 사건을 단정하려 하십니까? 세자 전하께 동기가 있는 것 같으니 그냥 세자 전하로 확정하려는 겁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일이 많다고 해서, 증거도 없이 사건을 단정 지어 버리면 모든 게 난장판이 되지 않겠습니까?”

    “세자 전하께서 폐하를 음해했다는 말은 더욱 가소롭지요. 폐하께 자손이 없다고 설마 세자 전하의 자식을 양자로 들이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세자의 후사도 적자 한 분뿐이신데 그분을 양자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분명한 것은 선대 황제와 영종제를 해치고 지금도 폐하를 해치려는 자가 어딘가에 있다는 겁니다. 무능하여 진짜 범인은 찾지도 못하고 함부로 누명을 씌우려 하다니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사건에 진척이 없어서 폐하께서 탓하실까 두려우니 아무렇게나 세자 전하를 갖다 붙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런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요. 확실히 형부 출신이라 누명을 씌우는 것도 아주 익숙한가 봅니다!”

    그들은 이렇게 몇 마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루안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구경꾼들의 귀에도 이 말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백성 중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여 자백받는 일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형옥의 관리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 아니었던가? 예로부터 멍청한 관리들은 사건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의심스러운 인물을 찾아다 누명을 씌워 사건을 처리하곤 했다. 

    다만 이 수법은 늘 권력도 세력도 없는 평민들에게만 쓰여 왔다. 설마 친왕세자에게까지 이런 수법을 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관점으로 보니 이 루 통정은 정말 대담한 사람이었다. 

    루안은 그들의 말을 끊지 않고 그들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정말 알아들을 수가 없군.”

    그는 고개를 들고 웃는 듯 마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자네들한테 본관이 그 사건 때문에 왔다고 말했단 말이오?”

    참모와 문객들이 모두 놀라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루안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지금 승원궁에 약이 묻혀있던 사건을 말하고 있는 거 아니오? 그 사건은 상 수상께서 직접 주관하시는데 본관이 어찌 사람을 잡으러 온단 말이오? 본관이 오늘 온 이유는 다른 사건 때문이오.”

    강왕부 사람들은 그의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참모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루안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일전에 누군가 승원궁에서 귀신 행세를 하여 폐하를 놀라게 하였소. 조사해보니 내관 두 명과 궁녀 한 명이 연루되어 있었지. 본관이 그 궁녀의 어머니를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강왕부의 유모였던 적이 있었소. 그래서 본관이 강왕세자 전하에게 사건 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특별히 청하러 온 거요. 개를 때리더라도 주인의 체면은 생각해야 하지 않겠소. 강왕부의 하녀와 관련이 있으니 세자 전하께 협조를 구하려 한 것인데, 두 사람은 본관이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오?”

    참모와 문객들은 모두 얼이 빠져 말문이 막혔다. 

    ‘이 사건이었다니? 이건 이미 벽돌 밑에 약을 숨겨둔 그 사건 때문에 어영부영 넘어간 게 아니었나?’

    루안은 다시 그들을 바라보며 얼굴에 비웃음을 띄웠다. 

    “본관은 그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어찌 그리 마음이 급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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