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45)화 (345/385)
  • 345화. 아무것도 없다 (2)

    사건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증거도 없이 친왕세자의 목숨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루안은 서류를 상 수상에게 제출한 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왔어요?”

    루안이 집에 도착하자, 지온이 루안이 귀가하는 소리를 듣고 옷을 걸치며 나왔다.

    그녀가 문에 기대있는 모습을 보고, 루안은 빠르게 걸어가 그녀를 안았다.

    하지만 곧 그녀를 놓아주고는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오늘 밖에서 한참 뛰어다니느라 몸에 땀이 났으니 좀 기다리시오.”

    지온이 웃음을 터뜨리며 하녀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지시하고는 루안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루안이 다 씻고 나니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온이 그와 함께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어머님은 이미 잠자리에 드셨으니 내일 바쁘지 않으면 아침에 인사해요. 아니면 그냥 관아로 가도 되고요. 내가 말씀드릴게요.”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얼른 먹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이야기를 나눴다.

    “사건에 진전이 없는 건가요?”

    “무슨 마음을 읽는 술법이라도 부리는 거요? 그걸 어찌 아오?”

    지온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은데요? 지금 뭔가 다른 수작을 부릴 생각을 하는 거죠? 그 말인즉, 정상적인 방법이 안 통한다는 거겠죠.”

    이렇게 말하며 지온이 손을 뻗어 루안의 미간을 눌렀다.

    루안이 지온의 손을 잡아당겨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이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 아쉽지 않소.”

    지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분석했다.

    “그래도 증거를 조작하면 안 돼요. 관리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관리들이 다 바보는 아니잖아요. 이제 우리는 사람의 심리를 건드리는 수밖에 없어요.”

    루안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당신 혹시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지온이 고개를 젓고 루안을 바라보았다. 지온은 손가락을 천천히 미끄러뜨리다 루안의 가슴께에서 손을 멈추고 가볍게 웃었다.

    “내가 당신 마음속에 살고 있어서 그렇지요.”

    “…….”

    루안이 못 참고 지온의 손을 한 입 깨물었다.

    “당신 왜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요?”

    지온이 하하 웃었다. 

    “언변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루 통정을 속일 수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지온은 그를 안고 가볍게 등을 토닥였다. 

    “이제 그만해요. 당신 지금 피곤하잖아요. 얼른 자요.”

    지온의 목소리를 들으며 루안의 눈꺼풀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루안은 곧 잠이 들었다.

    지온도 루안을 잠시 바라보다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가 요 며칠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녀 역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정말 이상했다. 예전에는 혼자가 너무 편했는데, 둘이 함께하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같이 있는 것이 벌써 습관이 되어버렸다. 

    * * *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는데 지온은 몸에 풍랑이 덮치는 듯한 느낌에 잠을 깼다. 지온은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웅얼댔다.

    루안은 참는 듯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하면 계속 자요. 내가 하겠소.”

    ‘이러면서 잠을 자라니!’

    지온은 화가 나서 그를 호되게 깨물었다.

    그들은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그렇게 뒹굴뒹굴했다. 지온이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으며 그를 밀쳤다.

    “몇 시에요? 관아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안 가오.”

    루안은 게으름을 피우며 누워있었다. 

    “요 며칠 동분서주했더니 피곤해 죽겠소. 좀 쉬어야겠소.”

    “휴가 냈어요?”

    루안이 손을 내저었다.

    “한등한테 시키면 되오.”

    그가 떼를 쓰며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지온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옷을 걸치고 서아를 불러 한등에게 말을 전하라고 시켰다.

    루안은 계속 누워서 지온을 보고 있다가 지온이 말을 마치자 그녀를 다시 이불로 끌어들였다.

    “당신도 좀 더 자요. 이것 보시오. 눈 밑이 아직 까맣잖소.”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지온은 또 그를 물려고 했다.

    이렇게 또 정오까지 둘은 누워있었다. 밖에서 북양태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온은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어 일어나 몸을 씻었다.

    “일어나요. 안 그럼 점심도 못 먹겠어요.”

    그녀가 얼굴로 던진 옷을 맞은 루안이 웃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의 초조함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 * *

    황궁은 암울하고 처량한 안개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황후가 다가와 황제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했다.

    “폐하, 수라를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제가 무기력하게 손을 내저었다.

    “짐은 입맛이 없소.”

    황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 벌써 며칠 동안 제대로 식사를 못 하셨습니다. 이러면 옥체가 버티지 못할 겁니다.”

    “옥체?” 

    황제가 조소했다.

    “짐이 잘 먹는다고 몸이 좋아질 리가 있겠소?”

    “폐하…….”

    황제는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다.

    “4년 동안 후궁에 아무런 소식이 없었소. 짐은 짐이 뭔가를 잘못해서 박복하고 자식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정말 이럴 줄은…….”

    그의 낙담한 모습을 보고 황후가 손을 뻗어 그를 잡았다.

    “그런 거라면 폐하께서는 기뻐하셔야지요! 폐하께서 아직 후사를 보지 못하신 것이 사실은 소인이 음해하여 벌어진 일일 뿐, 폐하의 덕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짐은 자식을 못 낳을 거 아니오.”

    “아닙니다.”

    황후가 위로했다. 

    “영종황제와 선대 황제께서도 모두 자식이 있지 않았습니까? 두 황제께서는 평생 이 일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폐하께서는 지금 발견하셨습니다. 몸조리만 잘하시면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겁니다.”

    황제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색이 좀 좋아졌다. 하지만 또 그 생각이 떠오르자 이가 갈렸다. 

    “정말 가증스럽군! 그 소인배는 짐을 음해했을 뿐만 아니라, 짐이 모후와 고모님을 뵐 면목도 없게 만들었어!”

    이 말을 들은 황후의 표정이 약간 미묘해졌다. 

    ‘영종황제와 선대 황제가 남에게 해를 입은 것이라면, 왜 황제가 면목이 없단 말인가? 모해자가 자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이군.’

    황후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폐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태후와 대장공주께서는 모두 사리에 밝은 분들이십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황후의 위로로 인해 황제의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그는 식사를 가져오라 한 뒤 억지로 먹었다. 

    * * *

    다음날, 황제는 아침부터 루안이 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마침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어떤가?”

    그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루안을 바라보았다. 

    이런 그의 표정에 루안도 차마 냉정하게 말하기 곤란했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고개만 저었다.

    황제는 몹시 실망했다. 가슴 가득히 차오른 분노를 쏟아낼 길이 없었다. 분노가 마치 우리에 갇혀있는 짐승처럼 이리저리 맴돌며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정말 그를 처리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루안이 말했다. 

    “이 일은 아주 깨끗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계속 추궁한다 해도 다른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기만 할 겁니다.” 

    “하지만 짐은 이렇게 단념할 수가 없네!”

    황제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도대체 짐을 얼마나 미워하고 있단 말인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인데도 짐이 등극하자마자 이렇게 악랄한 계략을 세우다니 짐의 황위를 뺏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루안은 황제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물었다.

    “폐하, 강왕 전하께 말씀드릴 생각은 없으십니까?”

    황제는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형님은 황숙의 적장자네. 원래부터 둘 사이의 관계가 짐보다 가까웠지. 말을 해봤자 한바탕 욕이나 하고 말게야. 황숙은 절대 짐이 화풀이로 그를 죽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거네.”

    루안은 황제가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안도했다.

    루안이 말했다. 

    “그럼 폐하께서는 강왕세자를 죽이고 싶으신 겁니까?”

    황제는 침묵했다.

    그 약을 발견했을 때 황제는 간절히 강왕세자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로 죽이는 것은 사실 그도 좀 두려웠다. 

    ‘어쨌든 그는 짐의 친형이고, 더구나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한참 후 황제가 말했다. 

    “그를 죽이는 건 현실적이지 않겠지?”

    루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분은 친왕세자입니다. 증거도 없이 단죄할 수는 없습니다.”

    황제는 분을 참지 못했다.

    “지금쯤 아주 우쭐해하고 있겠지? 본인이 한 짓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니 말일세.”

    루안이 느긋하게 말했다. 

    “그렇겠지요. 폐하께서 등극하시기 전에 승원궁을 보수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 그때 강왕부에서 이 일을 계획했을 겁니다. 이런 기회를 틈타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강왕세자뿐이지요. 다들 알고는 있지만, 증거가 전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황제가 분개하며 책상을 내리쳤다. 

    “그를 죽이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그가 의기양양한 꼴까지는 보고 싶지 않네!”

    루안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쩌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 * *

    강왕세자는 요즘 기분이 좋아서 아침 일찍부터 새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찻집에 도착하니 안에서는 다들 민보를 읽고 있었다.

    민보는 생겨난 지 겨우 반년 남짓밖에 안 됐지만, 벌써 적지 않은 경성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이나 저녁에 퇴근한 후에 사람들은 모두 찻집이나 주루에 모여 이야기꾼이 읽어주는 민보를 들으며 의견을 나누었다. 심지어 그 내용을 가지고 말다툼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했다. 

    강왕세자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꾼이 민보를 읽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는 형제가 재산을 다투는 이야기를 읽는 중이었다.

    한 집에 두 형제가 있는데 장남은 자식이 없고 차남은 자식이 여럿이라 가업을 누가 물려받을지 다투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장유유서이지. 줄곧 장남이 가업을 물려받아 왔는데 어찌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어?”

    “하지만 장남한테 자식이 없으면 대가 끊기는 거 아니야? 차남에게 준다고 해도 잘못된 건 아니지.”

    “지금 자식이 없다고 나중에도 없으란 법이 있나? 게다가 양자를 들일 수도 있잖아!”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야? 양자가 절대 친자보다 나을 수가 없지!”

    “차남에게 주었는데 장남이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어쩌려고?”

    “맞아! 장남은 역시 장남이지, 가업을 잇지 못한다고 해도, 또 아이를 못 낳는다고 해도 어쨌든 물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못 물려받는다는 법이 어디 있어?”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나? 장남이 물려받은 가업이 결국 양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걸 알면, 가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진심으로 경영하겠어? 아비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손자로 이어져야 비로소 안정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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