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벽돌 밑의 비밀
“폐하.”
지온이 화단 쪽으로 가며 말을 이었다.
“궁에 있는 화초들은 분명 물을 주는 주기가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시면 같은 화단인데도 왼쪽과 오른쪽의 흙이 젖은 정도가 다릅니다.”
황제가 다시 보니 과연 그랬다.
“폐하께서 꿈속에서 들은 물소리는 아마 여기서 낸 소리일 겁니다.”
누군가가 방 밖에서 일부러 물소리를 냈고 화단에 방울방울 튀는 물소리가 황제가 꿈을 꿀 때 들려왔던 것이다.
이 물소리는 그로 하여금 쉽게 죽은 선대 태자를 떠올리게끔 했다.
“찾아라!”
황제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짐의 침소에 귀신인 척 농간을 부리다니? 찾아내서 짐 앞으로 데려와라!”
호은이 얼른 대답하고 즉시 시위를 불러들였다. 그는 승원궁에서 일하는 환관과 궁녀들도 모두 데려왔다.
황후는 지온을 데리고 옆방으로 피했다.
궁녀가 차를 올리자 황후는 아주 복잡한 눈빛으로 천천히 차를 마시는 지온을 바라보았다.
“지 사촌, 정말 대단하군!”
그녀가 말했다.
“지난번 옥비의 일도 자네가 먼저 발견했었지. 자네가 여인의 몸이 아니었다면 형옥도 충분히 장악할 수 있었을 게야.”
지온이 찻잔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웃었다.
“마마,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많이 살펴보고 궁리했을 따름입니다.”
황후가 웃었다.
“그렇게 많이 살피고 궁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물었다.
“좀 전에 본궁이 자네가 벽돌 몇 개에 도장을 찍는 것을 보았는데, 왜 그런 건가?”
지온이 그녀에게 눈을 찡긋하며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마마, 제가 잠시 뜸을 들이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조금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아하니 뭔가 큰일이 있는 것 같았다.
황후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왠지 긴장되었다.
궁은 드나들기 쉽지 않은 곳이라 곧 수사의 결과가 나왔다.
지온은 공공과 궁녀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지만, 굳이 보러 가지 않았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었다. 어쨌든 결론이 이렇게 났으니 말이다.
* * *
정오가 지나자 승원궁이 마침내 조용해졌다.
황제가 돌아왔다.
지온은 황후를 따라 방에서 나가다가 마침 정문으로 들어오는 루안을 보았다.
그는 수건으로 천천히 손을 닦고 있었는데 낮게 내리깐 눈매가 싸늘했다.
지온은 몸에 절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방금 직접 두 손으로 혹형을 집행한 것 같이 보였지만,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루안은 고개를 들어 지온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수건을 내려놓았다.
그는 다시 따스하고 자상한 남자로 돌아와 있었다.
* * *
황제는 이미 분노에 휩싸여있었다.
처음에 공공과 궁녀들은 황제가 법사를 하려는 건 줄 알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수사하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시위들은 수색으로 금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시위들은 내부의 적을 몇 명 잡아냈다.
안타까운 것은 배후의 주동자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설사 황제가 이미 생각해 둔 대상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황후와 지온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황제가 화를 누르며 말했다.
“사촌누이, 오늘 수고가 많았네. 시간이 늦었으니 황후와 함께 화춘궁에 가서 식사를 들도록 하게.”
황제는 지금 정말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라서 그들을 대접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온이 앞으로 나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폐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한 가지 올릴 말이 있습니다.”
황제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했다.
“뭘 말인가?”
지온이 말했다.
“소첩이 일찍이 스승님을 따라다니며 기문오행술(*奇门五行之术: 기문둔갑을 근거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술수)을 배웠습니다. 좀 전에 증거를 찾을 때 승원궁의 벽돌 몇 장이 특이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황제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무엇이 특이하다는 건가?”
“이 벽돌 몇 장이 약간 돌출되어 있었는데 황실 장인의 솜씨라기에는 좀 조잡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첩이 방위를 확인해보았는데…….”
지온이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우연히 어떤 진법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진법…….”
“예.”
황제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지온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마 밑에 뭔가 숨겨져 있을 겁니다.”
“…….”
궁전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잠시 후, 황제가 말했다.
“호은아, 장인을 찾아오너라.”
“예.”
방금 전의 수사는 규모가 작았지만, 이번 것은 오히려 궁벽을 건드려야 할 정도라 규모가 작지 않았다.
장인이 머뭇거리며 보고했다.
“폐하, 궁전의 벽돌은 모두 특별히 구워서 만든 것이고 쌓는 기법도 독특합니다. 한 번 파내면 고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황제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짐이 파라고 하면 파라!”
장인은 황제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장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보고하러 들어왔다. 그는 궁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엎드렸다.
“폐하…….”
그의 옆에 늘어선 상자를 본 황제의 얼굴이 몹시 일그러졌다.
“안에 뭐가 있느냐?”
그가 소리쳤다.
장인이 부들부들 떨며 상자 하나를 열었다. 안에 자루 하나가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자루를 열었더니 조잡한 조약돌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황제가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려는데 지온이 소리쳤다.
“폐하, 안 됩니다!”
황제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온이 말했다.
“이것은 도가의 단약을 만드는 물건인데, 대부분 독이 있습니다.”
독이라는 말을 들은 장인은 하마터면 손에 든 자루를 떨어뜨릴 뻔했다!
“독…….”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지온이 말했다.
“이것들은 만성독이라 만진다고 죽지는 않아요.”
황제의 표정을 본 지온은 마음속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동정심이 솟아났다. 루안이 앞으로 나서며 황제에게 권했다.
“폐하, 우선 태의를 부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황제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원사가 도착했다.
황제가 그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뭔지 자네가 한 번 확인해보게.”
“예, 폐하.”
원사가 대답한 뒤 그것을 주워 잠시 들여다보았다. 얼마 안 있어 얼굴색이 변한 원사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폐하!”
황제는 도리어 냉정함을 되찾고 물었다.
“아는 물건인가 보군, 말해 보게.”
원사가 입술을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
“이것은 도가의 단약을 만드는 약물로 그 자체의 독성은 약해서 치명적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접촉하면 어, 어떤…….”
“뭐가 어떻다는 겐가? 빨리 말하게!”
황제가 소리 질렀다.
원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불임의 효과가 있습니다!”
불임, 그러니까 황제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려 했다는 말이었다.
이 4년 동안 후궁에서 줄곧 아무런 회임 소식이 없었고, 유일하게 한 번 있었던 것도 그저 천한 계집이 간통한 것에 불과했다!
황제는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폐하! 폐하!”
황후가 급히 다가가 황제를 부축했다.
황제는 풀린 눈으로 황후를 보고 있었다. 황제의 눈에서 조금씩 눈물이 흘러나왔다.
“황후, 알, 알고 보니 사실은 이랬구려! 이제 앞으로 우리, 우리는…….”
아마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몇 대에 걸쳐 황제가 자손을 얻기 힘들었던 원인이었다!
루안은 천천히 서성거리며 원사에게 계속 물었다.
“이 약들은 넣어둘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원사가 말했다.
“단약을 연마하는 물건은 광석 종류가 많아서 십여 년, 심지어 몇십 년 동안도 보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재에는 풀 종류도 들어있는 것 같은데요.”
“예.”
“이 풀들은 얼마나 된 것 같습니까?”
원사가 뒤적이며 자세히 보더니, 대답했다.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아마 3, 4년쯤 된 것 같습니다.”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를 보았다.
“폐하, 들으셨습니까? 3, 4년 전이면 폐하께서 등극하셨을 때입니다!”
황제는 멍해졌다.
황제는 이 약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묻혀있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전의 선대 황제, 영종황제 역시 자식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우 3, 4년밖에 안 된 것이라니, 그렇다면 이 약들은 바로 자신을 겨냥한 것이지 않은가? 어찌 이럴 수가!
“조사해라! 철저히 조사해라! 3년 전에 승원궁을 수리하지 않았느냐? 누가 이걸 넣었단 말이냐!”
황제가 노발대발했다.
지온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한쪽으로 비켜섰다.
* * *
이 소식이 청녕궁에 전해지자 태후가 곧바로 달려왔다.
테후는 상자들을 보고 무릎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승원궁이 지어진 지 여러 해가 지났으니, 이 악독한 진법도 틀림없이 오래전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이 약이 3, 4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그전에는 약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황실의 자손이 드물고 대가 끊긴 것은 다른 사람의 흉계에 제대로 걸려들었기 때문인 것이다!
“선황 폐하!”
태후가 눈물을 쏟았다.
“폐하께서는 늘 자손을 얻기 힘든 것이 본인이 덕을 잃은 탓이라고 생각하셨지요. 그게 아닙니다. 정말 아니었어요. 폐하께선 간악한 흉계에 당하신 겁니다. 다른 사람이 꾸민 음모에 당하셨어요!”
대장공주도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오라버니, 아버지…….”
두 사람은 얼싸안고 통곡했다.
지온은 그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들었다.
3대 전의 황제였던 영종제는 자손을 얻기 힘든 것이 자기 몸이 허약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선대 황제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선대 태자가 계승했다면 그 역시도 그랬으리라.
이렇게 세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적자 혈통을 유지할 수 없어 결국 대가 끊어지고 말 것이 분명했다.
“태후마마, 어머니, 두 분은 일단 울음을 그치셔요. 이렇게 뒤에서 못된 짓을 한 소인배가 있으니 그 사람을 찾아내야지요. 공연히 남을 해치는 짓을 하면 안 되잖아요?”
대장공주가 눈물을 훔치며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옳다! 올케,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울었어요. 더는 울고 싶지 않아요. 울어야 한다면, 우리 원수를 울게 만들어야지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폐하, 명을 내려주십시오!”
황제가 어리둥절해했다.
“고모님, 무슨 명을 내리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사람을 내려달라는 거지요! 정사당의 재상들, 대리사, 형부, 그리고 내정까지 전부 말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근본과 관련된 큰일입니다. 그들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합니다!”
황제가 몇 대에 걸쳐서 누군가의 계략에 당해 자식을 낳지 못했다. 황실의 계승이 위태로운 지경인데 누가 이 일에서 빠질 수 있단 말인가?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은, 들었느냐? 가서 조칙을 내려라!”
“예.”
그다음으로 이어진 일은 지온이 더 이상 끼어들 수 없었다. 지온은 배전에 남아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황실을 3대째 괴롭힌 음모가 이렇게 터질 줄은 몰랐다.
영종제의 재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음모가 벌어진 시초는 벌써 5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이 승원궁을 지은 장인도 한참 전에 죽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의문점이 남았다.
그렇다면 3, 4년 전에 누가 또다시 약봉지를 넣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