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41)화 (341/385)
  • 341화. 의문점

    호은은 루안을 보자마자 바로 안으로 들여보냈다.

    루안의 눈에 멍청히 한 곳을 응시하며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있는 황제가 보였다. 

    “폐하!”

    루안의 목소리를 들은 황제는 마치 생명줄이라도 붙잡은 듯이 그를 불렀다. 

    “루안!”

    루안은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호은에게 주변의 사람을 물리라고 눈짓한 뒤에 황제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뭘 보신 겁니까?”

    황제는 정신을 가다듬고 좀 전에 있었던 일을 그에게 말한 뒤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꿈이야 짐이 태자 형님을 너무 그리워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치겠지만, 아까 그 그림자는…….”

    “폐하, 놀라실 것 없습니다.”

    루안이 그를 위로했다.

    “폐하, 혹시 눈이 침침해서 그러신 것 아닐까요? 아마 날이 너무 어두워서 잘못 보셨을 겁니다.”

    “아니네, 진짜였네.”

    황제가 말했다.

    “짐이 잘못 본 것이 아니네. 정말 태자 형님의 그림자였어.”

    “확실하십니까?”

    “확실하네.”

    루안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황제가 물었다.

    “루안,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짐은 단지 자네에게 법사(*法事: 불교 행사) 같은 걸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을 뿐이네. 짐의 사촌 여동생인 지 부인이 도법을 배웠다니까…….”

    황제는 말을 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런 사소한 일로 밤늦게 신하를 궁에 불러들인 것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루안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폐하, 신의 부인은 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고 했습니다.”

    황제는 멍해졌다.

    “정말인가?”

    루안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세상의 귀신이란 대부분 잔꾀를 쓰는 것일 뿐입니다. 도법에는 비술이 많은데, 전부 눈속임이지요. 그저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만약 폐하께서 정말로 잘못 보신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고의로 그런 것이 분명합니다.” 

    루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황제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이런 짓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루안이 말했다.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훈향 같은 걸 쓰면 됩니다. 말씀하신 그림자는 날이 이렇게 어두우니 아마 방법이야 많을 겁니다.” 

    “그럼…….”

    루안이 그의 말을 끊었다.

    “폐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오늘 밤 신을 궁에 불러들인 것은 선대 태자가 떠올라 법사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황제는 루안의 말뜻을 알아듣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척했다. 만약 누군가가 고의로 자신이 악몽을 꾸게 한 것이라면 자신이 알아챘다는 사실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했다.

    루안은 침전 안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마지막으로 창가에 멈춰 섰다.

    그 주변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그는 촛불을 들어 비춰보더니 창문턱에서 아주 작은 재를 주워 수건에 쌌다.

    “폐하, 푹 주무십시오. 오늘 밤 이렇게 소란을 피워댔으니 그 사람이 또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황제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짐이 다른 데 가서 자는 건 어떤가?”

    루안은 찬성하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황제이신데, 어찌 악몽 따위에 놀라실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아주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짐을 모실 사람을 부르도록 하지.”

    루안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상의하러 오겠습니다.”

    “알겠네.”

    루안이 침전에서 나오자 호은이 웃으며 인사했다.

    “루 통정, 가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루안이 말했다. 

    “폐하께서 궁금하신 것은 이미 다 물으셨네.”

    “소인한테 루 통정을 궁궐 밖까지 전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수고가 많군.”

    * * *

    유신지는 밤새도록 취해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서야 깨어났다.

    그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려는데 다리 부근이 아주 무거웠다. 고개를 숙여 보니 자기 동생이 거기에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유신지는 머리가 다 아파 와서 발을 들어 그를 걷어차 버렸다.

    유모지가 아이고, 외치더니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며 잠에서 깼다.

    “형, 왜 사람을 발로 차고 그래?”

    유신지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가 방금 어디에 엎드려 있었는지 아느냐? 내가 널 안 걷어차고 그냥 깰 때까지 기다렸으면 아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을 게다.”

    유모지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형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유모지의 시선이 형의 사타구니로 떨어졌다.

    “아!” 

    유씨 가문 둘째 공자는 소리를 지르며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방을 뛰쳐나갔다.

    유신지는 나른하게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

    “저 바보.”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해도 유모지는 속아 넘어갔다.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해서 유신지는 하인을 불러 목욕 준비를 시켰다. 

    목욕을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몸에 장신구를 차기 시작하던 유신지는 갑자기 한가지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내 옥패는? 부선(浮舟)아!”

    부선이 머리를 빼꼼 내밀더니 들어와 말했다.

    “대공자님, 저는 못 봤습니다!”

    유신지는 이마를 두드리며 생각해보았다. 

    “실수로 잃어버렸나?”

    유신지가 다른 옥패를 찾아 걸고 갈아입은 옷들을 정리하는데 부선이 다시 들어왔다. 

    “대공자님, 주머니에 이게 있었습니다.”

    유신지가 종이를 받아 들었지만,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4월 초열흘에 취선루에 술값 216냥을 빚져 옥패 하나를 저당 잡힘. 추후 대금을 치르고 회수하겠음.》

    낙관이나 이름은 없었지만, 손도장이 하나 찍혀있었다.

    유신지는 아까 목욕할 때 엄지손가락에 붉은색 인주 같은 것이 조금 묻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유씨 가문 대공자는 부들부들 떨며 이 차용증을 쳐다보다가 한참 동안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루안!”

    * * *

    다음날 지온은 대장공주를 따라 입궁했다.

    두 사람은 먼저 태후가 있는 청녕궁에 갔다. 그런 다음 지온은 황후를 따라 승원궁으로 갔다.

    승원궁에 도착했을 때 루안이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폐하!”

    황제의 눈 밑이 시꺼먼 것을 보니 분명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았다. 

    황제는 지온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사촌, 예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지온이 몸을 굽히며 예를 올렸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 방문은 루안이 황제에게 미리 언질을 해 둔 것이었다. 이때 호은이 와서 보고했다. 

    “폐하, 준비되었습니다.”

    지온이 말했다. 

    “폐하,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지온은 황후와 동행하여 배전(*配殿: 정전의 좌우에 세워진 곁채)으로 갔다.

    안에는 이미 향상(*香案: 향로, 촛대, 제물 등을 올려놓는 긴 탁자)이 세워져 있었다. 지온은 향상 위에 있는 향을 들어 불을 붙이고는 독특한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을 사람들한테 감추기는 쉽지 않았다.

    바깥에 있던 내관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누구야? 안에서 뭐 하는 거야?”

    “그것도 모르는가? 루 통정의 부인, 대장공주의 양녀잖아! 조방궁의 그분 말이야. 어제 폐하께서 악몽을 꾸셔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저분을 부르셨나 보군.”

    “그분이었구나! 근데 이건 법사가 아니잖아? 이런다고 효과가 있을까?”

    “작년 연말에 태후마마께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셨을 때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저분을 모셨었는데 그 후로 많이 좋아지셨대.”

    “자네들 들어본 적 없는가? 저 루 통정의 부인이 바로 화신의 제자야! 조방궁의 화신첨이 바로 저분 때문에 시작된 건데 아주 영험하다더라고.”

    “진짜? 화신첨은 소원을 이루어준다던데. 한 번 가서 해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궁 밖으로 나갈 수가 없군.”

    “자네가 제비를 흔들어서 뭐 하게? 설마 자네의 소중한 물건이 다시 자라나게 해달라고 빌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뭐라는 거야! 난 그냥…….”

    내관들은 웃고 떠들며 자기 일을 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배전을 바라보았다. 

    궁에 들어가 환관이 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는 집이 가난해서 책이라곤 읽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귀신을 믿었다. 게다가 화신첨은 명성까지 자자했으니 그들의 믿음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잠시 후, 안에서는 법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황후가 지온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호은은 물 한 통과 버드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그녀들 곁을 따라갔다. 

    그녀들은 승원궁을 끼고 사방을 돌며 몇 걸음 걷다 멈추고 호은에게 버드나무 가지로 물을 뿌리게 했다.

    단오(端午)에 오독(*五毒: 다섯 가지 죄악, 독소)을 몰아내는 것과 비슷했다. 이건 살풀이였다. 보아하니 황제는 자신에게 악귀가 들러붙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온이 궁전을 돌며 황제가 어젯밤에 잠들었던 창문의 바깥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호은이 꼼꼼하게 악을 쫓는 물을 뿌렸고 그녀는 어슬렁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 며칠 비가 오지 않았지만, 화단의 초목은 여전히 푸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온은 문득 복도 기둥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긁힌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창문을 두드렸다.

    루안이 창문을 열고 그녀를 보더니 곧 방 밖으로 나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오?”

    “저것 좀 봐요.”

    루안의 안색이 살짝 변하는가 싶더니 루안은 소희에게 사다리를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황제도 밖으로 나와 루안이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루안은 긁힌 자국에 대고 탁본을 떴고 곧 궁전의 처마에서도 같은 자국을 발견했다. 

    루안이 손에 묻은 먼지를 털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폐하, 원인을 찾았습니다.”

    황제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무엇인가?”

    “호 공공, 그림 한 폭과 명주실 한 타래만 가져다주세요.”

    호은이 황제를 한 번 보더니 루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린 내관에게 물건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건이 모두 도착했다. 루안이 아까처럼 위로 올라가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그림을 말아서 처마 밑에 걸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실을 지온에게 건네주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 기둥 뒤로 가서 숨어 보시오.”

    지온이 그의 말대로 했다. 

    “좋소, 당겨보시오.”

    지온이 힘껏 당기자 펄럭이는 소리가 나더니 말아 올라가 있던 그림이 펼쳐졌다. 

    황제는 갑자기 나타났던 그 그림자가 떠올라 안색이 변했다.

    “다시 당겨보시오.”

    지온이 그의 말대로 하자 또다시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이 다시 말려 올라갔다. 

    황제는 이런 장치를 보고 알아차렸다.

    어젯밤에 자신은 누군가의 계략에 당했다. 누군가는 그림으로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이다.

    루안이 주먹을 말아 쥐고 예를 갖추며 말했다. 

    “이 명주실은 별로 질기지 않은데 아마 상대방이 쓴 것은 좀 더 유연한 종류일 겁니다. 그리고 그림도 종이의 움직임이 좀 큽니다. 어젯밤에 쓴 것은 아마도 비단 종류인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움직여서 폐하의 눈에 더 흐릿하게 보였을 겁니다.”

    황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자신의 침소에 감히 이런 계략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그럼 자신의 목숨을 해치는 것도 별로 어려울 게 없다는 뜻이 아닌가!

    “폐하께서 어젯밤에 꿈을 꾸신 건 바로 이 향 때문입니다.”

    루안은 수건을 꺼내 그 안에 있는 재를 보여 주었다. 

    “이건 신이 어젯밤에 창턱에서 찾은 겁니다. 폐하께서 안에서 자고 있을 때 누군가가 창밖에서 향을 피워 폐하가 꿈을 꾸게 만든 것 같습니다.”

    황제가 매섭게 복도 기둥을 때렸다.

    “참으로 괘씸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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