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40)화 (340/385)
  • 340화. 꿈에서 깨다

    요순(姚询)은 여섯 살 때 궁으로 들어갔다.

    궁에 들어가기 전에 부왕은 요순에게 태자를 잘 따르라고 신신당부했다. 태자가 뭘 하든 그대로 하고 태자가 뭘 배우면 그도 같이 배우라 했다. 하지만 태자보다 잘해서는 안 되고 기꺼이 태자를 받쳐 주는 보조 역할이 되어 태자를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태자가 기뻐하면 황제와 황후가 기뻐할 것이고, 황제와 황후가 기뻐해야 궁에 남을 수 있었다.

    나중에 궁에 들어가고 나서 요순은 부왕의 당부가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순은 태자와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말타기와 활쏘기를 연습했지만, 무슨 짓을 해도 태자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는 점점 그런 사실에 익숙해졌다.

    태자는 무엇을 하든지 자신보다 나았다. 스승님이 자신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면, 자신은 아직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태자는 벌써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 수준이었다. 자신이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태자가 제출한 글씨는 늘 아주 단정해서 자신의 개발새발 써댄 글씨와는 차원이 달랐다.

    황제는 태자와 요순의 과제를 검사할 때마다 웃으며 요순을 혼냈다. 하지만 노는 시간을 반으로 쪼개어 글자 쓰기를 연습해도 요순은 태자만큼 쓸 수 없었다. 

    요순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곤 했다. 요순은 황제가 결코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태자에게는 달랐다. 황제는 태자를 엄격하게 대했다. 황제는 태자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해서 물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 관해 설명했다.

    황궁 안의 모든 사람은 그들을 각각 다르게 대했다.

    사람들은 요순에게 아주 친절했다. 어린 환관들조차 요순을 보면 전부 웃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태자에게는 아주 공손했다. 털끝만큼도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요순은 나중에 크고 나서야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순과 태자를 대하는 것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태자는 황태자였으므로 앞으로 황제가 될 사람이었다. 천하의 주인이 될 사람 앞이니 모두가 설설 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순에게는 황태자와 함께 자란 정이 있었으므로, 앞으로 평생 요순이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는 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요순은 이에 대단히 만족했다. 

    요순은 자신이 태자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자신의 것도 아니었던 것을 어찌 소망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가 정말로 태자를 질투했던 건 딱 한 번뿐이었다.

    그건 바로 황제가 상해(桑海)로 사람을 보내 청혼을 했을 때였다.

    하지만 이 질투는 오래가지 못했다.

    무애해각이 없어지고 태자가 죽자 요순은 얼떨결에 황위에 올랐다.

    등극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요순은 가끔 한밤중에 깨어나 침실 휘장에 있는 용무늬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이 자리에 앉을 사람은 분명 태자 형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마지막에 내가 앉게 된 것일까? 난 태자 형님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정말 황제가 될 수 있는 걸까?’

    나중에 요순은 아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황제가 되는 것에 익숙해진 지금처럼. 

    * * *

    고요한 밤에 황제는 자신이 책상에 앞에 앉아 상소문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상소문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봐도 끝이 없었다. 

    그는 점점 인내심이 사라져 아무렇게나 몇 획을 긋고는 한쪽으로 내팽개쳤다.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온몸이 서늘해졌다.

    황제는 그제야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은아! 호은아!” 

    사람을 불렀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황제는 화가 났지만, 너무 추워서 스스로 창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창문이 닫히자 침전이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똑! 똑!

    어디서 나는지 모를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보고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의 옷차림이 아주 낯익었다. 그의 몸이 물에 젖어 있어 얼마 안 있어 바닥에 물이 흥건해졌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상소문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당신…….”

    황제가 입을 떡 벌렸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을 본 황제는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하지만 문이 잠겨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황제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와 옥좌에 앉아 있는 사람을 향해 벌벌 떨며 말했다. 

    “태, 태자 형님…….”

    황좌에 앉아 있는 선대 태자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여전히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동생을 불렀다.

    “순아.”

    어릴 적에 같이 자라서 그런지 선대 태자를 봐도 황제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황제는 점차 두려움이 사라지고 심지어 조금 그리운 마음마저 들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형님, 보고 싶었습니다.”

    선대 태자는 눈을 내리깔고 황제가 방금 첨삭한 상소문을 들어 가볍게 건네주었다.

    “네가 방금 첨삭한 것이냐?”

    “예.”

    “다시 한번 제대로 보거라, 네가 첨삭한 게 맞느냐?”

    “예…….”

    그의 말투에 황제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선대 태자는 갑자기 책상을 힘껏 내리치며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들고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것을 첨삭이라고 한 게야? 직접 봐라, 네가 뭐라고 썼는지! 네가 이러고도 황제가 될 자격이 있느냐? 썩 꺼지거라! 이 자리는 분명 내 것이다!”

    그의 매서운 눈빛에 황제는 절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마음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황제는 늘 태자 형님의 말을 잘 듣는 동생이었다.

    황제가 애걸복걸하며 말했다. 

    “형님 화내지 마세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열심히 쓸게요. 열심히 쓰면 되잖아요?”

    “네가 열심히 쓴다고 얼마나 나아질 수 있겠느냐? 여태껏 이렇게 엉망진창이지 않으냐. 넌 항상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꺼져라! 남의 자리나 강탈한 이 도둑놈아!”

    “태자 형님, 태자 형님, 아닙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네가 그런 게 아니라고?”

    태자가 점점 다가오자 그의 몸에 있는 짠 바닷물이 자신의 몸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황제는 그 물이 마치 맹렬한 기세로 밀려오는 재앙처럼 느껴져서 두려워하며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네가 한 짓이 아니라면 우리 한 번 처지를 바꿔보자꾸나. 네가 밑으로 내려가고 내가 여기 남는 것이지. 어떠냐?”

    이렇게 말하며 선대 태자는 황제의 팔을 잡아당겼다. 황제는 물에 빠진 기분을 느꼈다. 황제는 필사적으로 팔을 휘둘렀지만, 여전히 몸은 가라앉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 * *

    “아!” 

    황제가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호은이 인기척을 듣고 급히 들어왔다.

    “폐하, 폐하!”

    황제의 몸에 땀이 흥건했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을 흔들었다.

    “괜찮다.”

    호은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꿈을 꾸셨습니까? 이게 다 소희 때문입니다. 폐하께서 잠이 드셨다고 이렇게 창가에 폐하가 그대로 계시게 하다니 얼마나 추우셨습니까! 폐하, 침상으로 가서 편하게 주무십시오.”

    황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됐다. 우선 목욕부터 해야겠다. 물을 준비 하거라.”

    “예.”

    호은은 명령을 전하러 갔다. 

    황제는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아직 창문이 닫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문득 그 꿈이 떠올라 닫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리고 황제는 창밖에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마치…….

    “악!”

    호은이 황제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고 다급하게 돌아왔다. 황제는 또다시 놀란 듯이 의자에 주저앉아 창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호은이 다급하게 물었다.

    “창문 닫아! 창문 닫으라고!”

    황제가 소리를 질렀다.

    “귀신이다! 귀신이 있어!”

    호은이 급히 가보았지만, 창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호 총관!”

    다른 환관이 등불을 들고 왔다.

    호은이 급히 말했다.

    “빨리 찾아봐라, 주변에 뭔가 있는지 살펴보아라.”

    환관들은 대답한 뒤 빠르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호은이 돌아와 보고했다.

    “폐하,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황제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간신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아마 짐이 잘못 본 것이겠지.”

    * * *

    루안에게 얻어먹을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이 아닌지라 유신지는 기뻐서 술 몇 주전자를 더 시켰다.

    그렇게 마시다 그들은 취해버렸다.

    이 자리의 주인공이 다 취할 정도였으니 유모지와 원씨 집안의 대공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루안이었는데 그는 볼이 약간 빨개졌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았다.

    루안은 매일 약주를 마시는 것이 습관이 돼서인지 오히려 쉽게 취하지 않았다.

    갑자기 계단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벌컥 열리고 한등이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궁에서 부르십니다!”

    루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이 밤에 왜 갑자기 궁에서 부른단 말이냐? 무슨 일이 있느냐?”

    한참 뛰어온 한등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폐하께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습니다.”

    황제의 일이라면 더 이상 뭉그적거릴 수 없었다. 루안은 즉시 일어나 계산을 했다.

    주인이 빙그레 웃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16냥 7전입니다. 잔돈은 깎아드릴 터이니, 216냥만 주시지요.”

    루안은 잠시 멍해졌다 물었다.

    “뭐가 이리 비싼가?”

    주인이 차림표를 가지고 와서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귀빈들께서 드신 술이 오래 묵은 좋은 술이어서 그렇습니다. 10냥짜리 한 주전자, 30냥짜리 한 주전자, 가장 비싼 것은 50냥짜리 한 주전자였습니다.”

    술이란 물건은 비싼 데에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이번 식사는 보통 사람들의 몇 년 치 식사비용과 맞먹었다.

    루안은 상당히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평상시에 크게 돈 쓸 일이 별로 없던 그의 지갑 안에는 몇십 냥의 은표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뒤를 돌아 한등에게 물었다.

    “너 돈 좀 가지고 왔느냐?”

    한등이 손을 펼치며 말했다.

    “잠깐 사람을 찾으러 나온 건데 무슨 돈을 가지고 왔겠습니까!”

    루안이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값나가는 것이라고는 지온과 한 개씩 나눈 꽃무늬 옥추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남한테 줄 수 없었다. 

    그는 흘끗 곁눈질하더니 유신지의 허리에 있는 옥패를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우선 이걸로 저당 잡고, 나중에 다시 계산하러 오리다.”

    주인이 공자들을 살펴보니 모두 평범한 차림새가 아니었다. 옥패도 확실히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라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일이 있으시면 얼른 가서 처리하셔야지요. 이런 작은 일은 제쳐두셔도 됩니다.”

    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등에게 술에 취한 그들을 돌려보내라고 분부한 후 먼저 말을 타고 가버렸다. 

    정국공이 이미 부임한지라 오늘 밤 당직자는 경씨 집안의 조카였다.

    루안을 본 그는 사람을 시켜 궁문을 열고 말했다. 

    “폐하께서 승원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람을 시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루안이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겅씨 가문 공자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폐하께서 귀신을 보셨답니다.”

    “귀신을 봤다고?”

    루안이 눈을 찌푸렸다. 

    경씨 가문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많이 놀라신 것 같습니다.”

    루안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시위의 호송을 받으며 승원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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