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33)화 (333/385)

333화. 낯선 부부

마차 안에서 지온이 농담을 했다.

“루 통정,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요?”

루안이 힐끗 그녀를 보았다.

“이게 다 부인 덕이 아니겠소?”

그는 손을 뻗어 작은 탁자 위의 회색 종이를 집어 가볍게 털었다.

“민보(坊报)에 내리 사흘이나 실었으니,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요.”

지온이 빙그레 웃었다.

“사흘이나 실었으면서 당신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안 했네요!”

“허허, 소달이 얼마나 오만하게 제멋대로 날뛰는지, 그를 쓰러뜨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되 또 어떤 것은 암시적으로 표현해야 하오. 그래야 그 바보가 못 알아보지 않겠소.”

지온이 처음 민보를 만들었을 때 루안은 곧바로 이것이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가치가 지금 이렇게 증명된 셈이었다. 꼬박 3년 동안 사람들에게 비난만 받았었는데 뜻밖에도 3일 만에 루안의 명성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었다.

언론을 무기로 삼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강왕부에 경고할 수 있겠어요?”

지온이 천천히 말했다. 

“이번에는 면전에서 선전포고하듯이 이 일을 까발려야지만 강왕부에서도 감히 당신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루안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이렇게까지 할 때는 다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거요.”

꼬박 4년을 갈고 있던 칼을 이제 마주칠 때가 되었다. 

지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볍게 루안의 어깨에 기댔다. 지온은 그와 고락을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주씨로부터 드디어 소식이 도착했다.

강왕세자는 그를 등지고 서서 창밖에 만발한 살구꽃을 보고 있었다. 

“그 강세안이란 자가 오씨 가문의 시위였던 적이 있느냐?”

“예. 마침 세자비께서 시집오기 2년 전이었습니다.”

“언제 떠났느냐?”

“세자비께서 왕부로 시집을 오셨을 때입니다.” 

강왕세자가 하하 하고 웃기 시작했다. 

“오씨 가문에서는 모르고 있었나?”

주씨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오씨 가문에는 이제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볼 때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강왕세자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 지금껏 매사에 주도면밀한 그 여자를 좋아했었지.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그때도 일을 그렇게 잘 처리했던 게로군. 하긴 아무도 모르게 숨기지 않았다면 그 여자가 어찌 감히…….”

주씨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강왕세자가 다시 물었다.

“그 당시 산파와 태의는 모두 찾았나?”

주씨가 대답했다.

“산파는 이미 죽었고, 태의는 찾았습니다.”

“그래서?”

주씨는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인정했습니다.”

강왕세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가봐.”

“예.”

주씨는 서재에서 나오다 뒤를 돌아보았다. 강왕세자의 살기 가득한 뒷모습이 눈에 보이자 가슴이 떨렸다. 

참모가 그를 맞이하며 초조하게 물었다.

“세자 전하의 반응은 어땠나?”

주씨가 고개를 저었다.

“별 반응이 없으셨소.”

참모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화를 안 내셨다는 말인가?”

주씨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 같으면 다른 사람 앞에서 화를 내겠소?”

참모는 잠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잠시 묵묵히 서 있었다. 주씨가 먼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이 안에 말을 좀 전해줄 수 있소? 소현주에게 좀 잘해주라고 전해주시오.”

참모가 주씨를 바라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겠네.”

* * *

세자비는 창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녀들이 밖에서 대화하고 있었다. 

“세자비께서 왜 저러시는 거예요? 며칠 동안 먹지도 않으시는데, 계속 이러시면 어떻게 버티시겠어요?”

어린 시녀가 어수룩하게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다른 시녀가 좋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지금 뭘 먹는지 안 먹는지가 대수야? 너는 왜 일의 경중을 몰라?”

어린 시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시녀는 어린 시녀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을 한탄하듯 말했다. 

“너 왜 이렇게 둔하니! 세자비께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생각해봐!”

어린 시녀가 기억하기로, 그날 세자비는 세자에게 압송되어 왔고 머리가 깨져 아주 난처해 보였다. 그런데 세자는 태의를 부르라고도 하지 않고 사람을 불러 그녀를 잘 감시하라고 한 뒤 그냥 가버렸다. 

그때 세자의 눈빛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꼭 사람을 죽일 듯한 눈빛이었어…….’

어린 시녀는 몸서리를 치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언니, 세자비께서 무슨 잘못을 하셨더라도 그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겠지요? 중매를 통해 정식으로 맞아들인 세자비잖아요…….”

하지만 시녀는 전혀 낙관할 수 없었다. 

그날 세자비와 함께 나갔던 시녀는 이미 맞아 죽었다.

시녀는 세자비가 광명사 쪽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식으로 맞아들인 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새장가를 못 가는 것도 아니고 세자 같은 사람이 참을 리가 있겠는가…….

‘그때가 되면 세자비에게만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집에 있는 사람 전부가 아마…….’

그녀는 입술을 떨다가 결국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말 그만하고 할 일이나 해.”

‘세자비처럼 상식적인 사람이 어째서 하필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까?’

이때, 갑자기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시녀들은 황급히 서서 들어오는 강왕세자에게 인사를 했다.

“세자 전하.”

강왕세자는 그녀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세자비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왕세자가 소식지 한 권을 그녀 앞에 매섭게 내던지며 불을 뿜는 것 같은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吴)씨, 아주 의기양양하시겠군? 10년 동안이나 날 이렇게 가지고 놀았으니 말이야, 난 남의 새끼를 내 새끼인 줄 알고 지극 정성으로 키우고 당신이 최고의 아내라고 착각했지. 내 믿음에 대한 당신의 보답이 결국 이건가?”

세자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그 소식지를 주워 대충 보더니,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왜 웃나?”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 강왕세자는 더욱 화가 났다.

세자비가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이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당신을 비웃었지요. 내가 당신을 가지고 놀지 않았습니까.”

“너!”

강왕세자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쥐고 조르기 시작했다. 

세자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으로는 차갑게 웃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안색이 점점 파래지고 심지어 눈까지 감기기 시작하자 강왕세자는 갑자기 손에 힘을 풀었다. 

“이렇게 죽으려고?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해주지!”

세자비는 엎드려 두어 번 기침하고 순순히 일어나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직도 그런 것에 연연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 왕부에 들어온 첫날부터 난 이것이 전쟁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기면 만인지상(万人之上)이고 지면 아무것도 안 남는 거지요. 이미 오래전에 마음의 준비는 끝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강왕세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웃었다.

“전쟁? 그게 당신한테 어울리기나 한가?”

세자비는 천천히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온화하고 침착하게 웃었다. 

“나한테 안 어울리면, 당신한테는 어울리겠습니까? 당신도 감히 제왕의 자리를 꿈꾸는데 나라고 안 될 건 뭐가 있겠습니까?”

세자비의 이런 말투에 강왕세자는 격분했다. 그는 자신을 도와 집안일을 처리하던 온화하고 자상했던 아내가 사실은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세자비가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난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화를 낼 건 또 뭐 있습니까? 난 당신이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고 항상 본인이 이 집안의 여섯째였던 폐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폐하가 운이 좋아서 어릴 때부터 선황의 곁에서 자랐고, 선제의 양자이기에 황위에 오를 명분을 얻은 것으로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이 황위에도 쉽게 앉을 수 있었던 거라고 말입니다.”

세자비는 고개를 들고 강왕세자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가 미련한 건 틀림없지만, 그래서 당신은 또 어디가 그리 똑똑하단 말입니까? 부왕께서 보낸 참모들이 아니었으면, 또 당신 뒤에서 내가 손을 쓰지 않았으면 당신이 지금처럼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당신은 너무 거만해서 심지어 자기와 한 이불을 덮는 사람조차 이해하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이 평범하다는 걸 직시할 수 있었겠습니까?”

“너…….”

세자비는 계속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늘 기회를 봐서 부왕의 첩들을 괴롭히시지요. 당신은 그런 어머니를 경멸하고요.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아야 질투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당신이 첩들과 자러 가도 난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왜냐하면 난 당신과 자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가 그 의무를 분담해주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강왕세자는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세자비의 옷깃을 잡았다.

세자비는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고개를 들어 자신의 깨끗한 목덜미를 드러내고 그가 편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스스로 목을 대령하니 강왕세자는 오히려 목을 조를 수 없었다.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지 못하고 그저 세자비의 목을 누르기만 했다. 

두 얼굴이 지척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강왕세자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아주 낯선 기분이 들었다. 

강왕세자는 자신이 여태껏 세자비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 때는 두 사람도 당연히 금실이 좋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전의 일이었다. 후에 강왕세자에게는 각양각색의 미모를 뽐내는 첩들이 생겼고 세자비와 혼인했을 때의 감정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세자의 기억 속의 세자비는 언제나 현숙하고 일을 잘 처리해 여태껏 자신을 걱정하게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왕세자는 향락을 즐길 만큼 즐기고 나면 세자비의 곁으로 돌아와 조용함과 편안함을 누렸다.

그렇게 충분히 쉬고 나면 강왕세자는 또 밖으로 나가 자극을 찾았다. 

이제야 세자는 이 여인의 생김새가 이러한 것을 알았다. 세자비는 나이가 서른에 가까웠는데도 여전히 주름 하나 없이 피부가 환할 정도로 하얬다. 요 며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 약간 수척해져 눈이 커 보이는 것이 한층 더 아름다웠다. 

예전의 세자비는 사람을 볼 때 얼굴에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얼굴에 가면을 쓴 것처럼 그녀의 진정한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허나 지금의 그녀는 냉담하고 업신여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라앉을 것같이 어두운 눈빛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세자비는 여전히 비웃으며 강왕세자를 보고 말했다.

“왜요, 내가 당신이랑 자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나니 자존심이 상하십니까? 전하는 역시 진실을 듣지 못하시는군요. 사실 나는 아이를 떼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집올 수도 있었습니다. 근데 내가 왜 윤이를 낳았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그 아이가 내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자비의 눈에 눈물 고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강왕세자는 가슴에 꽉 차 있던 미움이 순식간에 타서 재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놈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럼 왜 시집을 왔어?”

세자비는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처럼 연민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꿈은 언젠가 깨기 마련이니까요. 내가 부귀영화를 쫓기로 한 이상 그에 마땅한 희생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자 전하, 10년 동안 부부로 산 정이 있으니 이별을 앞두고 한마디 조언을 해 드리겠습니다. 무언가를 원한다면 아무리 소중해도 필요 없는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녀의 미소가 마치 밖에 핀 살구꽃같이 아름다워서 강왕세자는 애증을 느꼈다. 

강왕세자의 목젖이 움직였다. 강왕세자의 눈에 불꽃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가 그녀를 끌어당겨 침대에 던졌다. 그리고 강왕세자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럼 당신의 꿈을 한 번 더 깨뜨려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