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방 (330)화 (330/385)
  • 330화. 은혜와 원수의 도리

    “너무 잘 됐다!”

    푼수 같은 유신지의 넷째 여동생은 손뼉까지 치며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축하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큰 오라버니, 드디어 노총각 소리를 안 듣게 됐네!”

    유신지는 듣기 싫어서 얼른 말을 끊었다. 

    “그 일은 어떻게 된 거요? 오늘 아침에 들었는데 소달이 갑자기 감옥에 투옥됐다더군. 그날 광명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소. 당신들이 꾸민 일 아니오?”

    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신지는 이마를 때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신들 정말 대단하군, 이런 구질구질한 일로 소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다니, 강왕세자도 믿는 거요?”

    “다 믿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누가 그 사람더러 그렇게 성질을 내라고 했나요? 이제 곧 화풀이하려고 할 텐데 세자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간 늦을 거예요.”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

    지온이 유민을 쳐다보았다.

    “당분간은 없어. 말이 새어 나가지만 않으면 돼.”

    유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신지는 여동생과 경소소를 잘 감시할 생각이었다.

    유민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둘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신지가 웃으며 아둔한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랑 상관없는 일이다. 그냥 차나 맛있게 마시거라. 오늘 들은 말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고. 알았지?”

    “싫어!”

    유민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큰 오라버니, 나한테도 알려줘!”

    유신지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동생에게 당부했다.

    “이건 아주 큰 사건이다.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 유씨 가문 전체의 존망도 달렸지. 이 큰 오라버니가 너한테 말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직은 네가 알면 좋지 않아서 그렇다.”

    유민은 놀라서 멍해졌다. 

    “그, 그 정도로 심각해?”

    “응, 그 정도로 심각해.”

    유신지가 떡을 건네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 먹으면서 조용히 들어.”

    지온은 그들 남매가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유신지 공자는 벌써 눈치를 챘어.’

    * * *

    두 번째 재판은 바로 그날 오후였다.

    이 일은 밤을 넘겨서는 안 됐다. 강왕세자는 잠시 격분한 것일 뿐이어서 갑자기 뭔가를 깨달을지도 몰랐다. 그가 이게 음모란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강왕부에는 참모들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강왕세자가 움직일 시간이 없도록 반드시 빨리 처리해야만 했다. 

    일단 루안이 주심관(*主审官: 주심 재판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강왕세자가 아무리 소달을 싫어한다고 해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 분명했다.

    소달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밖으로 소식을 전하려다 이 일이 루안을 화나게 해서 연속으로 재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엄 태의는 처음부터 루안이 안배한 것이었다.

    혹시 소달이 밖으로 소식을 전하려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본관은 진심으로 대했는데 소 장군이 이렇게 말과 본심이 다를 줄은 몰랐군.”

    이번에는 법정에서 안건을 심리하는 것이 아니어서 루안은 아무렇게나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서기들과 시위들은 여전히 질서정연하게 명령을 따랐다. 그들은 예사롭지 않은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내감(*内监: 환관의 다른 이름)이 당장에라도 옥에 나타나, 뽕나무 종이를 들어 소달의 얼굴에 붙일지도 몰랐다. 내감이 숨쉬기 힘들어서 괴로워하는 소달의 얼굴에 술을 한 모금 내뿜고, 또 그 위에 뽕나무 종이를 한 장씩 붙이면서 귓가에 대고 음산하게 입김을 불며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당신한테 한 장 붙였으니 난 이제 9품관(九品官)이로군. 승진도 하고 돈도 벌고…….”

    ‘1품이 될 때까지 계속 붙이면…… 아니야, 1품이 될 때까지 못 붙여, 그 전에 죽는다.’

    상상하던 소달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나를 이렇게 모함했는데 내가 어떻게 자네를 믿겠나? 정말 이 소달이 누가 적이고 아닌지 구분도 할 줄 모르는 줄 아나?”

    이 말을 들은 루안이 웃으며 나른하게 다과상에 팔꿈치를 기댔다. 루안에게서 풍기는 음울한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소 장군, 자네가 적을 알아보긴 했군. 하지만 내가 어떤 인물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루안이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우리가 원수라는 걸 알아야 하네. 본관이 자네와 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난 자네에게 아무런 빚 진 게 없지. 그런데 자네의 그 세자 나리는? 자네가 강왕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나? 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적은 얼마나 많나? 저기 있는 문서들을 좀 보게. 태반이 장군이 강왕부때문에 저지른 일일세. 하지만 강왕세자는 사이가 틀어지자마자 자네한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지. 그 사람은 자네에게 빚을 진 거라네.”

    소달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루안은 차를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나는 은혜와 원한을 분명히 구분하는 사람이고,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지. 근데 왜 나를 못 믿겠다는 건가?”

    소달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루안의 말에 설득되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비록 루안의 평판은 좋지 않았지만, 그의 부하들은 정말로 충성스러웠다. 북양에서부터 쫓아온 그들은 북양에서의 출세를 마다하고 그를 따라 도망친 자들이었다. 

    ‘듣다 보니…… 정말…… 세자보다 믿을 만한 것 같은데?’

    소달이 얼이 빠져 있는 사이 밖에 있던 시위가 들어와 루안의 귓가에 대고 한마디 했다.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접실로 모셔라.”

    “예.”

    시위가 나가자 소달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누가 왔나?’ 

    루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 장군, 일어나게. 자네가 만나야 할 사람이 왔네.”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 혹시……정국공?’

    소달은 깜짝 놀랐다. 루안이 그런 말을 할 당시 소달은 루안이 시간을 좀 끄는 거라고 생각했다! 정국공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줄을 대지 않았는데, 어찌 쉽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가 궁에 들어오는 순간 황제가 바로 알게 되지 않겠는가?

    루안은 소달이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일어나 뒷방을 가로질러 응접실로 들어갔다.

    소달도 시위에게 압송되어 그 뒤를 따랐다.

    응접실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평상복 차림에 모자가 달린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루안이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하자 그는 일어나 고개를 돌리고 모자를 벗었다. 

    ‘역시 정국공이구나!’

    소달은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정국공의 차림새로 볼 때 분명히 정문으로 들어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루안이 오래전부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궁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건가?’

    “이렇게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루안이 예를 깍듯이 차리며 정국공을 맞이했다.

    정국공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위가 이 늙은이를 어디에 쓰려는지 모르겠구먼?”

    소달은 이 호칭을 듣고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루안의 부인은 대장공주의 양녀이고 대장공주는 정국공의 며느리였다.

    바꿔 말하면 루안은 정국공의 조카사위가 되는 것이다.

    경씨 가문은 딸이 적어서 정국공은 루안을 자기 집안의 사위로 대했다.

    ‘이들은 분명 한 집안사람이구나!’

    루안이 몸을 옆으로 돌리며 뒤에 있는 소달을 가리켰다.

    “소 장군이 어르신을 뵙고 싶어 합니다.”

    정국공이 뒤를 돌아보더니 소달에게 인사했다.

    “소 장군, 오랜만일세.”

    정국공은 난처한 상황에 빠진 소달의 모습을 보면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그를 대했다. 소달은 내심 탄복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제가 지금 처지가 곤궁하여 국공 어르신께 웃음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소달은 지난날 정국공과 마찰이 많았고 심지어 자녀들과 관련해 소송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곤경에 빠져서 도리어 상대방에게 의지해야 한다니 참으로 인생무상이 아니겠는가. 

    정국공이 차분히 말했다.

    “소 장군, 무슨 말이 그런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매 순간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오늘은 무사해도 내일은 머리가 잘릴 수도 있지. 길흉화복은 실로 예측하기 어렵다네.”

    온종일 이어진 고난에 처량함을 느끼고 있던 소달은 정국공의 말을 듣자 마음이 쓰렸다.

    ‘전쟁터에서 죽는 거야 그렇다 치겠지만, 이건 다 뭐란 말인가? 그저 억울한 죽음에 불과하지 않은가!’

    루안은 소달의 침울한 표정을 보고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경 백부님, 소 장군은 본인이 죽은 뒤에 남겨질 처자식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백부께 맡기고 싶어 합니다.”

    정국공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소 장군, 자네나 나나 모두 군대를 이끄는 사람이니 동병상련이라 할 수 있지. 자네가 이리 부탁을 하는데 이 늙은이가 거절할 방법이 있겠나. 우리 정국공부가 있는 한 자네 처자식이 남에게 괴롭힘당하지 않도록 지켜줌세.”

    소달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지난 4년 동안 소달은 늘 정국공이 쥐고 있는 병권을 염려했다. 그래서 제 아들이 쓸모 있어지면 그들에게 모략을 꾸며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궁지에 몰려 지난날 원수였던 가문에 제 가족을 부탁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소달은 얼떨결에 감사의 말을 몇 마디하고는 혼미한 정신으로 다시 정당(正堂)으로 압송되었다.

    소달이 다시 옥으로 돌아온 후에 루안이 돌아왔다.

    루안은 재촉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가 차 한 잔을 다 마실 때쯤 소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붓을 가져오게.”

    * * *

    강왕부.

    굳게 닫힌 서재의 문 앞에서 참모 몇 명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하루 정도 지났는데 세자 전하의 화가 아직 안 풀렸겠지?”

    다른 사람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글쎄. 이게 작은 일은 아니지 않나. 한번 생각해보게. 자네라면 참을 수 있겠나?”

    앞에 있던 사람이 잠시 자신을 대입해서 생각해보다 제 뺨을 스스로 때렸다. 부인이 바람피우는 괜한 상상이나 해서 뭐 하겠는가?

    “그게 꼭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나?”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세자비의 머리가 깨져서 피가 흐른 걸 보면 어떻게 봐도 누군가와 밀회를 즐긴 것 같지는 않던데.” 

    그의 동료가 비웃었다.

    “물론 그날의 상황 하나만 놓고 보면 밀회라고 보기 어렵겠지. 하지만 며칠 전 영원의 일까지 더하면 아주 의심스러워지네.”

    누군가 영원에 몰래 들어가 소현주를 데리고 갔는데 세자비는 분명히 이 일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히려 감췄다.

    그리고 어제 만약 소현주가 납치당한 거라면 왜 세자비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혼자서 불탑에 들어간 것일까?

    이건 세자비와 세자비가 만나기로 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일이 왜 그렇게 엉망이 되었는지까지는 그들이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소 장군은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좀 전의 그 참모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소 장군이 그런 짓을 했다고 믿는 건 아니네. 조금 기다려보게. 주씨가 불탑에 갔으니 그가 돌아오면 알게 될 걸세.”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밀정 주씨가 정말로 돌아왔다.

    참모들이 그를 맞이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주씨, 드디어 돌아왔군. 어떤가, 뭘 좀 알아냈나?”

    0